내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일반적인 아버지들과는 조금 다르셨다. 내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아버지들은 딱 보기에 굉장히 냉철해 보이고 굳건해 보이며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위엄을 갖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아버지는 그런 모습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70대가 되신 지금도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고 얼굴에 그늘이 없다. 자주 웃으셨기 때문에 웃음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생긴 주름살이 웃고 계시지 않을 때도 웃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환한 분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창작멜로디에 "나는 마눌이 좋다~" 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삿말을 붙여 노래를 부르시기도 했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처음 만나면 세상 온갖 로맨틱한 행동들은 다 도맡아 하는, 세상 자상한 남자라고 상상하곤 했다. 자상하시긴 하셨으나 아주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신 덕에, 살아오시는 동안 온갖 힘든 일들은 하셨어도 주방과 관련된 일은 해보신 적이 없으시다. 평생 라면 하나 잘 끓이시지 못하셨다. 어쩌다 보니 은퇴도 아주 일찍 하셔서 집에 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일을 하시진 않으셨다.
내가 육아 휴직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와이프가 일 때문에 너무 바빠 보였다. 나와 아기가 집에 있어봐야 영혼이 나가서 퀭한 눈으로 우리를 보며 "어~ 왜..?"하고 답하는 껍데기만 남아 있는 와이프를 마주해야 했다.
와이프 스스로도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일과 나와 아이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힘들어했다.
"일 때문에 바쁜 건데 까짓 거 그럴게 뭐 있어?"
와이프에게 며칠 집에서 열심히 일을 다 끝내놓으라고 하고 아기와 부모님 집에 며칠 가 있기로 했다. 부모님은 아기를 데리고 며칠 가 있겠다고 말씀드리자 굉장히 반기며 기뻐하셨다.
부모님 댁에서 머물던 어느 날이었다. 아기가 거실에서 햇빛을 받으며 열심히 놀다가 갑자기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눈썹은 일자가 되었고 미간에 주름이 살짝 잡히며 눈가를 씰룩이기 시작했다. 볼에는 볼터치를 한 듯 핑크빛이 번졌다. 그 쪼그만 입을 옴쏙옴쏙하더니,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웅얼거림이 시작되었다.
“공주가 갑자기 잘 놀다가 왜 저러냐”
함께 손뼉 치고 웃으며 놀고 있던 아기를 지켜보던 아버지가 먼저 입을 떼셨다.
“똥 싸는 중이에요”
“똥 싸면 어떡하냐”
“씻겨줘야지 뭘 어떻게 해요”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기는 잠시 후 얼굴이 벌게진 채로 짧은 외마디 외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했다. “똥 다 쌌나 봐요.”
다가가서 기저귀를 살짝 열어보니 황금빛 똥이 번쩍번쩍, 존재감을 빛내고 있었다. 이미 성인이 먹는 것들을 슬슬 먹기 시작한 아기의 똥은 성인의 똥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꼬물거리는 저 작은 몸에서 이런 엄청난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기적적으로 느껴졌다.
“오 이번에도 황금똥이다! 잘했어 공주!”
얼마 전까지 변비로 고생하던 아기는 유산균을 (비싼 유산균...) 바꾸고 거기에 부모님 표 싱거운 백김치를 먹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아주 훌륭한 점도의 똥을 싸기 시작했다.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물컹하지도 않은 정도의 똥이었다.
똥 닦는 수건과 기저귀를 아기 옆에 깔아 놓고 아기의 바지와 기저귀를 벗긴 후에 화장실로 아기를 안고 갔다.
아기는 자신이 어렵지 않게 똥을 싼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는지 내 품에서 잠자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안겨 있었다. 똥을 처리하는 과정이 궁금하셨는지 지켜보시던 아버지도 화장실에 따라오셨다.
아기의 누운 자세를 지탱해 줄 똥 닦을 때 쓰는 판을 세면대에 단단히 고정하고
그 판 위에 아기를 눕힌 후 물이 따뜻해지게 물을 잠시 틀었다. 습기가 촉촉하게 있는 황금똥을 싼 덕분에 아기의 다리와 엉덩이 쪽에는 똥이 꽤 묻어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어쩔 거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계셨다.
흐르는 물을 손에 담아 엉덩이를 살살 닦아주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가족이 함께 모여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어머니께
“준이가 아빠가 다 되긴 했어 여보. 저 깔끔 떨던 녀석이 아까 공주가 싼 똥을 닦는데 똥을 손으로 박박 닦더라고.”
“아니 공주의 똥을 먹어야 한다면 먹기도 할판에 손으로 씻는 게 뭐 별 거인가요”
하고 대답하고 멋쩍게 앞을 보았는데, 아버지는 말없이 날 보며 환하게 웃고 계셨다.
사실 시대를 앞서가진 못하셔서 남자로서 뭘 해야 할지를 몰랐을 뿐, 내가 아기를 사랑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아버지는 나를 사랑해 주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이렇게 육아휴직을 하며 아기에게만 집중하고 다른 스트레스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에는 부모님 덕이 크다.
우리 부모님 역시 보수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셔서 내가 크는 동안 나는 주방에 한 번 들어가 본 일이 없었다.
결혼하고 아기가 생기더니, 10개월 아기를 데리고 갑자기 육아휴직을 시작해서는 허구한 날 주방에서 요리와 씨름하고 맨날 바닥 기어 다니며 청소만 하고 있는 아들을 보고 부모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해 주셨다.
“그래 몸 아껴서 뭐 할 거여. 우리 아들 이렇게 멋지게 변해주어서 자랑스럽다.”
부모님은 많이 배우시지 못하셨지만, 내가 아무리 지식을 배우더라도 부모님만큼 지혜로울 수 없을 거 같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경하는 분은 나의 부모님이고 나 또한 내 아이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