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출석부를 때 꾀꼬리 같이 대답하고 싶다
"가.. 가보자 공주야.."
그나마 운이 좋았던 점은 아기가 10개월일 때, 아내는 운전을 하지 못했다.(지금은 아내가 차를 끌고 출근을 한다.) 그래서 나는 차를 이용해서 문화센터를 갈 수 있었다. 문화센터를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다사다난했으나 일단 아기를 카시트에 태우고 출발을 하면 기분은 좋았다. 나는 오후의 노란색 햇빛을 싫어해서, 문화센터도 10시 11시 이런 오전 시간대로만 잡았다. 평일 아침에 느긋하게 운전하며 백화점으로 향하고 있으니 '이것이 상팔자구나' 싶었다.
평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백화점 주차장에 진입하기 위해 차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었다. '우리나라가 엄청 부자라서 다 놀고 있는 것이거나, 다 육아휴직 중인 사람들인가 보다.' 육아휴직자 눈에는 육아휴직자만 보이니까. 그런데 후에 보니 문화센터에 오는 엄마들은 대체로 유모차를 끌고 아기를 데리고 왔다.
아무튼 아기를 품에 안고 문화센터로 향했다. 문화센터에 다가가자 아기들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라운지에 도착했을 때는 그 북적임에 상당히 놀랐다. 할머니, 엄마, 어린이, 아기 그리고 간혹 가다가 아빠들도 보였다. 어디 앉기도 애매해서 그냥 서성서성 기다리다가 시계를 보니 얼추 시간이 되었다. 몇몇 엄마들도 슬슬 강의실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자 가봅시다 엄마 아빠들!'
나는 씩씩하게 강의실로 향했다.
그런데 라운지에 있던 안 그래도 몇 없던 아빠들은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 아빠들 갑시다!..?? 잉!?'
그렇게 입실한 강의실에는 15명 정도 되는 인원 중에 나만 아빠였다.
강의실에 딱 들어서는데 엄마들이 시선이 잠시 나에게 왔다가 못 볼 걸 봤다는 듯 빠르게 시선을 자신의 아이에게로 다시 가져가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문화센터 오감놀이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자 엄마들 아기를 매트 위에 앉혀.."
(나를 힐끗 쳐다보시더니)
"엄마 아빠 아기를 매트 위에 앉혀 주세요" 하시곤 했다.
그 후로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엄마 ~~ 해주세요" 하며 얘기를 하시다가
어쩐지 힘쓰는 일들이 있을 때마다
"엄마 아! 빠! 이거 정리해 주세요~~" 하시는 거 같은 묘한 느낌도 들었다.
내가 정말 하기 어려웠던 것은 아기의 출석을 부를 때이다. 아기의 이름을 부르면 이 어린 아기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므로 엄마 아빠들이 "네!"하고 대신 대답을 한다. 그런데 엄마들은 어색하지 않게 아기 목소리처럼 "네~"하고 꾀꼬리처럼 대답들을 잘했다. 한 사람씩 순조롭게 꾀꼬리 같이 대답하고 서서히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소리를 내야한단 말인가?', '내 안에 저런 꾀꼬리가 있긴 있는가?' 여러모로 생각해 봤지만 내 안에는 저런 꾀꼬리가 없는 거 같았다. 내 목소리 치고는 꽤 부드럽게 "네~!" 하고 대답한다고 했는데 굵직한 목소리가 왕왕 퍼져나가자 강의실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기들 중에는 '흠칫!' 하며 나를 쳐다보는 아기도 있었다. 지금이야 락커들이 고음을 내지를 때처럼 씩씩하게 고음으로 "네엨엨!" 하고 대답하지만 여전히 꾀꼬리같이 예쁜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자주 당황하게 했던 것은 아기들의 반응이었다. 문화센터에 아빠는 나 혼자고 엄마들만 있다 보니 아기들은 신기한지 자꾸만 나에게 왔다. "압빠!!" 하면서 달려오는 아기들도 있었고 그 외에 여러 유형들이 있었는데,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유형은 '망부석 유형'이었다. 아기가 내 앞으로 걸어와서 아무 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나는 "우와아아! 아기 너무 예쁘게 생겼다! 공주야 친구인가 봐 인사해 안녕~~~" 하고 공주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는데 공주는 먼 산 보듯 딴 데만 쳐다보고 있었다.
"우와 너 되게 똑똑해 보인다. 어쩜 이렇게 눈망울이 초롱초롱하지!"
정적이 흘렀다. 아기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다.
"그.. 그렇지 공주야?"
공주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먼 산만 보고 있다.
내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쯤 그 아기의 엄마가 "어머 죄송해요" 하며 아기를 뒤에서 안고 데리고 갔다. 아기는 안겨서 끌려가는 와중에도 무표정하게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자.. 잘 가 애기야.."
망부석 유형의 아기들이 굳이 먼 곳에서 다가와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 앞에서 가만히 서있으면 나는 아기가 귀엽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할 말을 찾지 못해 방황했다.
일주일에 두 강의를 신청해서 일주일에 4회씩 문화센터를 한동안 다녔다. 어떤 날은 대체로 핑크색 톤의 옷을 입고 체격이 굉장히 좋은 아빠가 나타났다. 살짝은 위압적으로 보이는 체격과 외모와 다르게 아빠의 핸드폰에는 아기 사진으로 만든 앙증맞은 핸드그립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출석을 부를 때 아기목소리 그 자체로 꾀꼬리 같이 "네~~~" 하며 대답하는데 그때부터 나는 왜인지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옆자리에 앉았었는데 늦게 오신 다른 엄마가 옆자리에 들어오신 바람에 한걸음 옆에서 그를 종종 지켜보았다. 계속되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아기를 들었다 놨다 하는 그는 진정한 프로였다. '다음엔 꼭 저분 옆에 앉아서 말을 좀 걸어봐야겠다. 친해져 봐야지.' 하는 각오를 해보았으나 다음번부터 그분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내가 문화센터를 한동안 다니면서, 아빠가 한두 번 정도 이벤트성으로 강의실에 들어오는 경우는 있었으나 계속 아기와 함께 출석하는 아빠는 없었다. 아빠가 주양육자로, 더 많이 아기들 활동에 참여하면 좋겠다.
혹시라도 문화센터에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괜히 쓸데없는 말을 거는 이상한 아빠가 있으면 따뜻하게 받아주세요.. 외로워서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