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부디 이런 남자를 만나라
20대, 대학교에서 동기들 사이에서 나의 별명은 '마성의 후로게이'였다. 여자 동기들은 "쟤 앞에 여자는 보여줘도 남자친구는 보여주면 안 된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일단 나는 동생애자는 아니다. 다만 캠퍼스에서 남자인 친구와 나란히 누워서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노래를 듣고 있고 동성 친구들이랑만 너무 가깝게 어울려 다니다 보니 그런 별명이 붙었다. 별명은 그 특성을 끌어당기기도 하는 거 같다. 동기들 모임을 가다가 동성애자가 다가와서 나에게 적극적인 대시를 하는 모습을 동기들이 보게 되었다. 더더욱 나의 별명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시작했냐 하면, 나는 나 스스로를 나름 '남자 전문가'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취미 생활이 굉장히 다양했기 때문에 숱한 남자들을 겪어(!?) 보고 만나보았다.
아내와 나는 티브이를 볼 때, 아직 두 살도 되지 않은 딸을 두고 나중에 이런 사위가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자주 했다. 그러다 문득, '아 정말 나중에 우리 딸이 만났으면 좋겠다.' 싶은 남자를 '남자 전문가'(?)의 입장에서 써보기로 했다. 물론 딸이 단순히 연애를 한다면 몸이 좋은 운동선수를 만나든, 뭔가에 심취해 있는 예술인을 만나든, 아니면 얼굴만 엄청 잘생긴 남자를 만나든 취향 것 할 일이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남자를 만나겠다'하는 시점에서 딸이 나에게 ‘정말 좋은 남자’를 묻는다면 하고 싶은 얘기이다.(아직 멀었지만..)
1. 꾸준히 운동하는 남자
아내와 내가 공통적으로 뽑은 가장 우선순위이다. 어떤 운동이든 장르는 상관없다. 헬스, 테니스, 러닝, 수영, 배드민턴, 등산, 축구, 격투기 무엇이든 상관없다. 운동 한 가지는 꼭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남자였으면 좋겠다. 몸까지 좋으면 더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몸이 좋다는 건 일반적으로 여자분들이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여자분들이 생각하는 '패션 근육' 상태가 생각보다 어렵다. 그냥 골격이 엄청 잘 타고나서, 살만 안 쪄도 어느 정도 보기 좋은 형태가 나오는 '몸금수저'들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남자의 체형은, 배가 없으면 몸이 왜소해 보이고, 체격이 좀 있어 보인다 하면 배가 있다. 근육만으로 몸의 크기를 키우는 것은 헬스로만 몇 년이 걸릴 정도로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꾸준히 '러닝'을 하는 남자라면, 가산점을 20점 이상 줄 것 같다.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특성이 그렇긴 하지만, 항상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 먼저 운동하러 가기 싫은 자신의 마음을 이겨야 한다. 거기에 운동이란 건, 결국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몸에 부하를 주고 그 무리함에 대한 상처가 회복되면서 전보다 더 강해지는 원리를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러닝은 하는 내내 계속 힘들고 외롭다. 동호회에 들어 크루와 함께 뛴다고 해도 결국 그 모든 한계의 순간들을 이겨내는 것은 자신이다. 이런 숱한 고비들을 넘기고 그 외로움 속에서 자기 스스로와 끊임없이 대화했을 그 남자라면, 딸에게 추천할 것이다. 아마 그는 가끔 딸이 토라져 까칠하게 굴어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까지 있을 것이다.
*다만 헬스를 꾸준히 해서 몸이 좋은 남자의 경우에는 신경 쓸 부분은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몇 년 동안 자기 스스로 제한하고 꾸준하게 노력하여 뭔가를 이뤄낸 사람이다. 멋진 남자일 테지만, 그 매력을 너무 여기저기 발산하여 바람을 피우는 경우를 많이 봤다.
2. 말을 예쁘게 하는 남자
사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1번에서 이미 남자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다. 그럼에도 "꾸준히 운동만 한 사람이면 다 괜찮아"라고 말할 수는 없기에 좀 더 나아가보려 한다. 내 성격 탓일 수도 있는데, 나는 연애의 관계에서 과하게 소모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싫다. 아주 어린 나이에야, "나이 들면 다시 오지 않을 감정일 수도 있으니 관계에서 얼마든지 힘들어하고 속상해 봐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 같긴 한데, 감정이 소모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이성 친구와 싸우고 나면, 그 상처를 곱씹어 보다 다시 한번 내 마음에 상처를 내고, 그 아픔에 집중하느라 어렵게 형성된 일상의 루틴도 깨져버리곤 한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보통 진짜 그 마음보다 전달하는 형식에서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특히 많은 남자들은 상대가 오해하지 않게 부드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다. 남자들끼리는 '서로 오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서로를 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남자 대 남자'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서 연애를 하면 보통 전쟁터가 된다. 남자는 '아니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지?' 하며 나름대로 속상하고, 여자는 '어떻게 저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지?' 하며 속상해진다. 말을 예쁘게 하는 남자를 만난다면 이런 갈등 상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3. 나한테만 잘하는 사람 말고, 인류애가 있는 사람
이미 1, 2번에 해당한다면 그 남자는 극소수의 남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부분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인류애'라고 일단 표현하긴 했다. 잘못 표현하면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쉴 틈 없이 들이대는 남자가 감히 3번 유형에 비교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살아보고 나니, 3년 정도의 연애 기간을 지나고 나서 그때부터 시작되는 관계를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전에는 그냥 거센 호르몬의 명령이 아닐까 싶다. 열애 후 약 3년이 지난 후에는 호르몬의 작용은 점차 줄어들고 그 사람의 진짜 인격이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평상시에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사람은 그즈음 됐을 때 자신의 진짜 거친 민낯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쉽게 들 수 있는 예로는, 식당 같은 데서 종업원에게 함부로 하는 남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저에게는 잘해주는데요?'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아까 말한 대로 그건 호르몬의 영향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있는 사람이 '호르몬이 지배하는 시기'가 지나서도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서 기본적인 배려와 존중의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4. 자기 삶에 책임감이 있는 사람
1,2,3번 모두가 해당하는 남자라면 이미 나는 딸아이를 적극 밀어줬을 것 같다. 4번은 말로 표현하긴 모호한데 대화 몇 번만 해보면 구분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 스스로가 아니라 다른 원인을 핑계로 대면 자기 삶에 책임감이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정부가 무슨 정책을 시작해서, 내 투자가 실패했어.", "일자리가 이렇게 없는데 내가 한다고 해서 뭐가 되겠어, 일단 기다려 보려고."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일어난 일은 나의 책임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멋지다. 충분히 상황 탓, 나라 탓, 상대 탓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내가 더 ~~ 했었다면 좋았을 텐데, " 하며 스스로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남자라면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정말 좋은 남자일 것이다.
이 정도가 내가 딸아이가 "아빠,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야?"하고 물어보면 대답해 줄 얘기들이다. 위에 모든 것을 다 지키는 남자라면, 그 남자가 어떤 상황에 있든 교제를 반대하진 않을 것 같다. 나와 아내가 한 가지 의견이 갈린 부분은 '학벌'이다. 최근에 와서는 나는 학벌이 크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는 학벌이 어쨌든 학창 시절에 '성실함의 증명'이라며 학벌을 중요하게 본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본다. 운동을 잘하는 것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물론 학벌까지 좋다면 더 좋겠지만, 조건을 하나 더 보면 볼수록 해당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벌은 순위에 넣지 않았다. 그 외에도 돈이 많다는 점은 자본주의 세상인 만큼 거의 최고 가치로 여기긴 한다. 하지만 그저 상속을 많이 받았다거나 위에 해당하는 요소 없이 돈을 우연히 많이 얻은 사람은 그 돈을 지킬 그릇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 주변에 아버지에게 받은 사업을 괜히 팔아먹고 가끔 관리만 하면 충분한 돈이 나오는 사업을 전혀 관리하지 못해 망하게 하는 남자들이 있다.
에리히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라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충분히 공감하며 읽은 구절이지만, 그럼에도 '사랑할만한' 조건들을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위와 같은 남자를 만나려면 내 딸아이도 비슷한 가치들을 가지고 성장해야 할 것이다. 내 딸아이도 충분히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나 스스로도 멋진 롤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