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가 수십 개의 취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나
어릴 적 나의 꿈은 “킹카”였다. 요새는 사람들이 잘 쓰지도 않는 이 단어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킹카는 구체적인 조건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매우 매력적인 남자를 뜻한다.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킹카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빵 터져서 웃곤 했다.
사실 당시에 나도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몰랐다. 그냥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외모가 매력적이어야 하고, 키가 180cm 이상 되고, 운동을 아주 잘하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교를 다니고, 다양한 취미활동들을 가지고 있고, 독서를 많이 해서 지적이며, 인기는 굉장히 많지만 내가 사랑하는 여자 한 사람만 바라 보고, 동성 친구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인기가 많은, 이런 여러 가지 조건들이 떠올랐다. 그걸 한 단어로 표현하면 당시의 표현으로는 '킹카'였다.
킹카를 향한 나의 소소한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키를 키우기 위해서 우유를 마셨다. 중학교 이후로는 농구가 키 키우는 데 좋다기에 농구를 시작했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농구 코트를 가서 몇 번이라도 농구공을 튀겼다.
그리고 처음 마셨을 때는 냄새도 나는 거 같고 속도 더부룩 하던 우유는 너무 많이 마시다 보니 우유가 생활이 되어 물처럼 마시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우유에 밥을 말아먹을 정도였다.
우유를 매일 한 두통 마시고 농구를 하기 시작하자 몸에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갑자기 키가 급성장을 하며 넓은 어깨를 가진 남자로 변했다' 하면 매우 순탄했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나는 원래 굉장히 마르고 유약했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삼겹살을 구우시고 비계 부분을 다 자른 후에 “살코기 한 입만 먹자” 하시곤 했다. 그런데 우유를 억지로 우걱우걱 마시기 시작하자 몸이 점점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몸통 자체가 커지고 체형 자체가 달라졌다. 그리고 살이 부쩍부쩍 찌기 시작했다. 거기에 농구까지 하자 건강한 뚱뚱이가 되고 있었다.
처음엔 살이 조금씩 붙는 모습에 기뻐하던 가족들의 행복한 눈이 점차 우려의 눈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농구를 계속하고 우유를 아무리 먹어도 옆으로만 커질 뿐 위로는 도무지 뻗어나가질 않았다.
누나는 키가 작지 않아서 우리 가족들은 나의 키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차 가족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음..? 이게 아닌데..? 왜 키가 여기서 더 자라질 않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엄마는 나를 데리고 정형외과에 갔다. 무릎에 성장판 사진을 찍었고, 잠시 후에 의사 선생님이 결과지를 가지고 오셨다. 앞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며 눈을 반짝이고 있는 모자의 눈빛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까 의사 선생님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의사 선생님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응급실에서 막 나와서 다급하게 결과를 묻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 해 보았습니다만.." 하고 말할 때의 그 특유의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성장판이 거의 다 닫혔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멍하니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얼핏 엄마를 보니, 자식들 앞에서 항상 위엄 있고 대범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시던 엄마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약해지면 안 되겠다!’ 우리 모자는 말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왔다.
어느 날, 인터넷을 잠시 하다가 네이버 지식인에서 “여자들은 키가 작은 남자를 벌레로 보나요?”라는 질문이 보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누가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해?”하며 그 글을 클릭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댓글은 전쟁터였다.
나는 잠시 심각해졌다가 당시 대학생이던 누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누나 여자들이 키가 작은 남자를 벌레로 본다는 글 읽었다 웃기지?” 누나는 지나가다가 듣고는 “벌레로 본다는 건 말도 안 되지만, 매력이 좀 떨어지긴 하겠지?”라며 슥 말하고 지나갔다. 컴퓨터 앞 회전의자에 앉아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으며 말하던 나는 의자를 멈춰 세웠다. 나는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킹카가 되겠다며 선언하고 다니고 사실 우유 마시고 농구하는 것 말고는 별로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행복한 세상의 뽀로로나 쿼카처럼 그저 열심히 놀고 행복해하는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키만 작지’에서 ‘키까지 작지’하는 타이틀까지 얻을 수는 없었다. ‘다른 나머지 조건들은 다 달성해야겠다. 일단, 공부부터 해야겠다.’ 하고 스스로 아주 굳은 결심을 했다.
하지만 워낙 하지 않던 공부를 갑자기 하려니, 중학교 때 책부터 다시 공부해야 했다. 공부해도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자 밤에 울면서 바깥을 무작정 뛰어다니기도 했다. 한밤 중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바깥을 뛰어다니고 있는 뚱뚱한 남자 고등학생이라니. 정말 아찔한 광경이다. 아무리 해도 모르겠어서 벽을 주먹으로 팍 쳤다가 손이 너무 아프기도 하고 서럽기도 해서 줄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민망하긴 한데, 지금은 어떤 일에도 그런 열정이 생기질 않아서 이때가 그립기도 하다.
담임선생님은 상담 때 “너는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성적이 생각만큼 잘 안 나오냐?”하셨다. 그렇게 고3 때까지 계속 중위권 정도만 머물고 있다가 고3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드디어 원하는 정도의 성적이 나왔다. 온가족이 손잡고 "너 가고 싶은 학교 이 성적이면 충분히 가겠다! 마무리만 잘하자!"하며 행복해 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수능에서 받은 성적으로는 바라던 학교들을 가지 못해서 재수를 했다. 그리고 재수 끝에 소원하던 고대는 아니었지만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이제 대학은 해결이 되었으니, 나머지들을 완성하면 영락없는 킹카가 되겠군’ 남자들은 원래 거울을 보면 대부분 ‘얼굴은 이 정도면 평균은 되겠고’ 하며 끄덕인다고 하던데, 나 또한 그랬다. 사실 다른 남자들은 안 그럴 수도 있는데 아무튼 나는 그랬다. 그래서 그때부터 운동을 포함한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것저것 다양한 취미활동들을 발만 담그기도 하고, 꽤 오랜 시간 해오기도 했다. 아무튼 내가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