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괜찮은 남자일 수 있을까?
얼마 전 아내가 아내 후배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사연을 얼마 전 오랜 친구들과의 송년회 자리에서 풀었다가 아주 전쟁 같은 논쟁이 오갔다. 30대 중후반, 대부분 유부남인 남자들이 7명 모여있었는데, 무심코 꺼낸 말이 이토록 긴 시간동안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그 후배의 사연인즉 이렇다. 아내의 후배가 최근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후배긴 하지만 나이대가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나이이다. 그런 그녀가 그와 헤어진 이유는 남자 친구가 무심코 자신의 과거 소개팅 얘기를 했는데 거기서 그의 행동에 너무 크게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일단 그 남자분은 외모도 조건도 전부 상당히 괜찮고 그 여자 친구에게 연락도 잘하고 배려도 많이 해주는 남자라고 한다.
그런 그가 과거에 소개팅을 하기로 했고 소개팅 장소에 미리 나가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멀리서 다가오는 소개팅 상대를 알아보고 첫눈에 소개팅 상대가 맘에 들지 않았고 맘에 들지도 않는 이성을 위해 돈과 시간을 낭비하기가 싫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여성 분을 만나고 가볍게 인사만 한 뒤 바쁜 일이 생겼다며 집으로 귀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선자를 차단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무심코 여자친구, 즉 아내의 후배에게 했다가 결국 그 여성 분은 남친과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내와 나부터 일단 의견이 갈렸다. '입이 방정이지 뭘 잘했다고 그런 소리를 굳이 해가지고는..' 이라는 점에는 둘 다 동의했다. 아내는 다른 조건은 다 괜찮은 남자이고, 여자친구에게는 잘하고, 아직까지 밝혀진 게 그 정도 흠 밖에 없는데 헤어지는 것은 성급한 결정 같다고 했다. 나는 다른 조건이 다 괜찮아도 인성이 좋지 않으면 평생 행복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인성 중에서도, 나에게 별 다른 이익이 되지 않을 때, 내가 당장의 작은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을 때 사람과 사람으로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내가 정말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다.
친구들에게 이 말을 꺼냈을 때는 4:3으로 갈려서 치열하게 논쟁을 했다. '그 남자분과 헤어진 것은 잘못한 결정이다'라고 주장한 3명 중 한 명은 '남자분의 인성에는 분명 문제가 있으나 다른 조건이 괜찮은데 그 정도 이유로 헤어진 것은 잘못한 결정 같다'라고 생각했고 나머지 둘은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더라도 여자친구한테는 잘하니 문제가 없다', '그리고 오히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 잘해주는 사람들이 바람난다'라고 주장했다.
치열하게 논쟁을 했으나 결과는 누구 하나도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이제는 다들 이런 논쟁으로 의견을 바꾸기에는 나이가 많이 들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다들 자신의 성격에 따라서 의견을 내고 있었다. 즉, 남자분과 헤어지는 것을 지지한 나를 포함한 네 명은 전혀 관심이 없는 이성이라도 기본적인 매너는 다 하는 성격이다. 이성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 관계를 보는 것이다. 나머지 세 명은 관심이 없는 이성에게는 태도가 굉장히 단호했다. 적절한 단어를 고르기 어려워 '단호'하다고 표현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무례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행동했다.
그 7명을 가지고 통계를 내 보기에는 표본이 너무 적었다. 거기에 나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으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거 같지도 않았다. 다만 헤어진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주장한 친구들도 전혀 관심이 없는 이성에게도 기본적인 매너는 다 하는 나머지 네 사람이 좀 더 가정적이고 아내에게 잘하는 편 같다고 동의하긴 했다.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보면, 요새 사람들은 '사랑받는 것',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을 하나의 엄청난 능력처럼 여기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연결 지으면 '사랑할만한 사람이라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충분히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의 호르몬은 오래갈 수 없다. 나와 잘 맞지 않는 상대의 단점도 아찔한 반전 매력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랑의 호르몬은 사랑이 시작되고 3년쯤 지나면 사라진다. 그 후에 남는 것은 호르몬 작용에 의해 찬란히 빛나고 있는 상대가 아니라 날 것 그대로 드러난 상대이다. 늘어진 뱃살도 갑자기 눈에 띄게 보이고, 생각보다 튀어나온 입, 고르지 않은 치열, 매끈하지 않은 피부. 외모뿐만이 아니다.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던 상대의 성격은 이제 온통 날을 세워 싸워야 할 상성이 최악인 성격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사랑하는 게, 그때부터가 진짜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나와 잘 맞지 않든, 이익이 되지 않든 상관없이 상대에게 밑바닥은 보여주지 않으려는 인성. 상대를 위한 행동들이 나의 즐거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내가 가진 자원을 소모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은 하는 인성. 이런 인성의 힘이 사랑 호르몬이 떠난 사막 같은 메마른 시기를 이겨나가는 중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 남자분의 조건을 아쉬워하는 거 같지만, 나는 그 여성 분의 최종 선택을 지지한다. 완벽할리가 없는 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