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능력이 제일 중요하냐구요?
최근에 주변을 둘러보면 확실히 전에 비해 아빠가 육아휴직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아빠가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 육아휴직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육아휴직을 시작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들은 육아휴직이 실제적으로 보장이 되는 상당히 운이 좋은 케이스들이었다. (나 또한 그런 점에 감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 주변 아빠들은 어차피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아빠는 육아휴직을 시작해도 보통, '주양육자' 보다는 육아의 '보조자'로서 역할을 했다.
아기가 어느 정도 컸을 때 육아휴직을 시작해서 아이를 등원 시켜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거나 엄마와 아빠가 함께 육아휴직을 하는 형태가 많았다.
주변에서 그렇게 육아휴직을 시작하거나 고민중인 아빠들이 종종 나에게 물어보곤 한다.
“육아휴직 하면 어떻냐”
저 질문을 너무 지겹게 많이 받아본 터라, 나는 별 고민 않고 간결하게 대답한다.
“힘들긴 힘든데, 행복하다.”
“누가 쓸 수 있는데 쓸지 말지 고민 중이라면 쓰라고 말할 거다.” 정도이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보면 아빠들이 주양육자가 되길 무서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통 아기밥 때문이었다.
“너는 니가 아기 밥도 다 해주고, 집 안일 거의 니가 다 하는 거 같던데.. 그럼 아빠가 육아휴직 할 때 제일 필요한 능력이 뭔 거 같냐? 요리 잘 해야되냐? 나 라면 밖에 못끓이는데“
보통의 아빠들은 육아휴직을 하려고 하면 덜컥 드는 걱정이 '아이의 밥은 어떡하지?'인 것 같다.
‘내 밥도 못 차려 먹는데 아이의 밥을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인 거 같다. 다행한 점은, 두 돌이 되지 않은 아기의 밥은 생각보단 요리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는 점이다.
처음엔 나도 도대체 뭘 해줘야 할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두 돌이 되지 않은 아기들은 간이 센 것이나 매운 것을 먹지 못한다. 그래서 어차피 대단한 요리를 한다기보단 그냥 좋은 재료를 적절하게 잘 익혀서 아이를 먹게 해 준다는 개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채소의 억센 부분이나 고기의 힘줄을 좀 제거해 준다는 정도의, 재료 손질할 때 성실함을 요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굉장한 요리 실력을 요하진 않는다.
물론 요리 실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 매일 세 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매일 메뉴를 고민해야 하고, 음식을 만들고 치워야 해서 번거롭고 힘든 일인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엄마가 육아를 해도 아기 밥을 처음 해줄 때 난감한 것은 아빠나 마찬가지이다. 아기의 밥은 엄마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요리는 어떻게든 의외로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앞에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아빠가 육아휴직 할 때 가장 필요한 능력이 뭐냐?"
에 답하자면, 일단 가장 먼저 생각 나는 단어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인내심”이다.
어쩌면 이건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들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너무 뻔한 대답이라 좀 심심한 감도 있지만, 나에게는 절박하게 다가왔다.
나는 살아오면서 거의 화를 내지 않는 편이고, 애당초에 ‘화가 나지만 화를 참는다’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화가 별로 안나는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다.
그런데 육아를 시작하면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기는 아기일 뿐이다. 그냥 아기가 하는 일은 울고 떼쓰고, 내가 공들여 세팅해놓은 아름다운 것들을 부수는 일이다.’라고 애써 내 감정을 누르려 하지만, 차오르는 분노는 계속된다.
나는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유리컵을 왜 굳이 잡아 당겨서 깨니..!"
....
"다치지 않았지? 다치지만 않으면 컵이야 깨진 거 치우면 그만이지 뭐"
"밖에 나가자면서 옷을 안 입고 떼쓰면 우리가 어떻게 밖에 나가니.. 기저귀만 입고 나갈 순 없잖니!"
...
"아 그래.. 열이 많은 아기인가 보구나.."
"이제 그만 좀 울어라 왜 이렇게 우는데 도대체"
...
"울어봐야 뭐 두 시간 넘게 울겠니.. 어쨌든 아빠가 공주 곁에 있을게"
"아빠가 한 시간 공들여 만든 음식을 한 번 씹어보지도 않냐!?"
...
"그래 아빠가 똥손이라 미안하다... 이건 내가 미안할 일이지.."
하지만 감정은 생각보다 항상 이성을 이기곤 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고충을 말로 표현하지도 못해서 그저 얼굴 벌겋게 하고 울며 서럽게 악다구니만 쓰고 있는 아기에게 버럭버럭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화를 낸다고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아기에게 그 상황들을 더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이후에 나만 더 힘들어질 거 같았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나의 분노는 갈 곳을 잃는다.
분명 화가 나긴 나는데 나를 화나게 한 대상은 없어진 모양새였다.
심지어 나는 이 문제로 가족들과 상담을 하기도 했었다.
“아니 내가 공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그런데 내가 봤을 때는 울 거리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공주가 막 악다구니를 쓰면서 계속 울고 보채면 정말 화가 난다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이게 화인지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뭔지도 정확히 모르겠어 아무튼 뭔가가 막 울컥울컥 솟아올라.”
나를 적극 지지해 주고 이해해 주려 노력하는 가족들도 뭐라 대꾸해야 할지를 몰라 그저 끄덕이며
"육아가 원래 힘들지.."
하며 잘 들어줄 뿐이었다.
나의 경우에 해결책은 없었다. 그저 인내할 밖에.
그냥 그렇게 투닥투닥 거리는 일상과 시간들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기 머리에서 나는 아기 특유의 냄새처럼 고소함과 달콤함만 가득한 추억들이 아니라 울고불고 악다구니 쓰며 벌개진 아기의 얼굴, 달래며 진땀 빼는 내 모습, 옷 안입는 다고 땡깡부리는 걸
보고 화를 삭히던 모습들 그 모든 순간들이 어울어져 아기와 전우애 같은 감정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아빠들이 아기 양육을 돕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주양육자로서 짧게라도 아기와 지내봤으면 좋겠다. 내가아기와 주양육자로 함께하면서 얻게된 이 진득진득하고 질척이게 뭉쳐진 끈끈한 감정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선 대답처럼 꽤 많은 '인내심'은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