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로서 다니던 세 번째 회사는 어쩌면 제가 꿈꿔왔던 가장 회사다운 회사였을지 모릅니다.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제 전공에 맞는 업무를 할 수 있었고요.
사원이 많아서 물리적으로 주의가 분산되니, 자유도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디자인 업계는 원래 야근이 잦다는 사실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겠죠.
저 역시 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야근빈도가 잦아졌습니다.
이직 전에 다녔던 회사들에서도 야근은 늘 해왔기 때문에, 문제로 여기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야근이 항상 저에게 돌아오는 것을 이상하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다른 동료들도 종종 야근을 했죠.
제가 느낀 건 정시퇴근을 하는 동료들이 던지는 질문에서였습니다.
정시퇴근을 하게 되면, 보통 퇴근을 바로 안 하는 동료에게 괜한 미안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묻죠.
"어떤 업무 때문에 남으세요?"
라고 말입니다.
야근을 하는 이유를 묻는 것이죠.
저역시도 이 질문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료들이 남아있는 저에게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남으세요?"
어느 순간부터, 간혹 정시퇴근을 하면
많은 사람들과 회사밖으로 쏟아지듯 나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만큼 제가 정시퇴근을 못하는 것이 당연해져 갔죠.
매번 넓은 이 사무실에서 홀로 이 순간을 겪는 게 왜 나인지,
정시퇴근을 하는 동료들의
"오늘도.. 남으세요?"
라는 측은한 질문에 익숙해진 게 왜 나인지,
회사 2년 선배가 야근 신청을 올리는 법을 왜 나에게 묻는지,
담당자는 왜 내가 새벽까지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답이 없는 질문이 쌓여갈수록 저는 점점 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사원들도, 과장들도, 팀장들도, 대표도 모두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다층 건물에서 홀로 나와 문단속을 하는 일개 대리의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차갑게 꺼져있는 수많은 컴퓨터들 사이에서 제 컴퓨터만 홀로 윙윙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 디자인 사무실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저와 제 컴퓨터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작업 파일을 전송한 상태에서요.
퇴근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었습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단 말입니다.
누군가는 퇴근 후 약속을 잡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운동을 하고 있거나, 무언가를 배우고 있을 그 시간에
마냥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기약 없는 회신만 기다려야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시간이 얼마나 고문과도 같았는지 모릅니다.
기다림 끝에 수정요청이 오면 또 수정을 해서 다시 작업 파일을 전송하고,
또다시 회신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새벽에 회사에서 의미 없이 반복되는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포괄임금제였기 때문에 저에겐 정말로 의미가 없는 시간이었거든요.
담당자의 기약 없는 회신을 기다릴 때마다 가슴속 깊숙이에서 우러나오는 무거운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 마음속도 바짝 타들어갔고요.
정신이 병들어 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새벽 세시에 퇴근을 한 어느 날이었습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거리엔 길고양이조차 다니지 않았습니다.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불러서 탔는데, 도무지 현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 뒤에 이곳으로 또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저 무력감만 저를 짓누를 뿐이었죠.
저의 영혼이 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새벽 거리를 보며,
얼마 전 읽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은 월급에 중독되어 자신의 인생을 버리고 있다.'
가타부타 여부를 떠나, 지금 제 자신을 투영해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급을 받기 위해 이 시간까지 일하고, 지금 이 택시에 타고 있었고요.
월급을 받기 위해 또다시 이 짓을 하러 몇 시간 뒤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새벽 세시에, 택시에서 저는 결심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퇴사를 하기로요.
지금 회사만이 아니라, 아예 제 인생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