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증가'는 뜨겁네
요즘 한국 포털을 켜면
연일 메인은 '의대 정원 증가'에 관한 기사다.
기초과학을 하는 입장에선 부럽기도 하고,
암 환자의 보호자 입장에선 조마조마하고.
댓글이며 기사며
의대생 특혜(?)에 관한 비판적 의견이랍시고
기초과학이 살아야 나라가 사는 것 아니냐 이제야 말씀들 하신다.
정작 몇 달 전 기초연구 지원 삭감 발표땐 미지근한 감자로 스스슥 지나갔는데 말이지.
의사가 해야 감자도 뜨겁구나..
아픈 사람들을 앞에 두고
이빨을 드러내며 싸워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여간 속이 뒤틀리는 게 아니네.
환자도 보호자도 그동안 의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몰라서 무식해서 가만히만 있던 건 아닌데.
다들 본인 가족들의 생사가 인질로 잡혀 있으니
말할 줄 아는 사람들도 벙어리로,
화낼 줄 아는 사람들도 호구로,
그렇게 굽신굽신 숙였던 거지.
어차피 많은 사람들 읽는 브런치도 아닌데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 속이라도 시원하게 적어보지 뭐.
1. 의대정원 증가해도 필수과는 안 갑니다?
사실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를 비비 꼬고 있다.
탁상공론을 해서 그런 건지.
무식한 나도 알겠는 해결방법은 2가지 정도?
A. 필수과만 전공으로 하는 의대신설.
과학은 일찌감치 KIST, UNIST, GIST, POSTEC처럼 분야 나눠서 전공대학원 신설하고 관리했으면서.
의대는 왜 꼭 통합으로 신설하나?
B. 어설픈 증원이 아닌 확실한 증원으로 가던지.
자유시장 경쟁논리에 따라 피부과가 너무 많아서 망하는 시기가 당겨지면, 열심히 한 공부가 아까워서라도 다른 과 선택은 하게 되어 있다.
2. 지방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있다?
지방의료 붕괴 문제를 왜 서울로 가려는 환자와 보호자 책임인 것처럼 묘하게 꼬지?
일부 어떤 의사들은 '환자에게 지나친 자율 선택권을 줘서'라고도 하던데..
그 논리라면, 생명을 믿고 맡기는 사람을.. 그럼 아무에게나 뺑뺑이로 배정받아야 하나?
솔직히 보호자끼리 얘기하다 보면 다들 안다 우리도.
지방병원 갔다가 오진 때문에 시기 놓친 사람도 많고, 불친절함과 엉망인 시스템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뿐인가? 기본적인 병원 시설 청결도도 낙후되어 있고. 그런 곳에 누가 내 사랑하는 사람 목숨을 내 맡기고 싶나? 하물며 밥집도! 깨끗하고 친절한 곳 간다.
자체적으로 그런 개선은 하지도 않으면서 서울로 가려는 환자들이나 보호자들만 탓하다니.
지방 환자들도 서울까지 오며 가며 힘들다.
3. 의료수가?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직원할인 혜택 제도가 있다.
물론! 이게 나중에 연말정산 때 소득이 잡혀서 고생하기도 하고, 혜택이 있다고 해도 바빠서 자주 가지도 못하긴 한다. 그래도 보통 70% 전후의 할인혜택을 받으니 의외로 병원비에 대한 걱정은 좀 덜하지.
게다가 의료진 분들은 연봉도 상위권에 해당하니 실비가 없어도, 암 보험이 없어도, 의료수가가 높더라도 치료받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고통이 없으시겠지.
그런데 환자는? 보호자는?
병실에서 만났던 환자분들, 보호자분들 중 돈 걱정 안 하시는 분을 못 봤다.
산정특례니 뭐니 해도 입원비에, 수술비에, 특진비에, 항암제도 비급여로 하는 부분들도 상당하다.
그뿐인가?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된다.‘
‘수치가 너무 낮아서 안된다.'
그럼 또 아픈 환자 데리고 수액이라도 맞추고 뭐라도 해야 다음이 있을 것 같은데,
'어휴, 요양병원에서 해주는 건 과잉진료예요'라고.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선생님들?
그뿐인가?
보호자는 병가도 못 내니, 간병인도 써야한다.
결국 환자의 수명은 돈으로 연장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 수 밖에.
근데 거기에다 대고
'의료수가'가 낮아서 보람도 없고,
'의료수가'가 낮으면, 경증질환으로도 병원에 자주 와서 의료체계가 붕괴될 거예요. 라니...
그럼 높은 의료수가로
그 치료 금액이 감당 가능한 사람들만 치료받을 수 있게 되어 보험재정이 안정화되는 건
붕괴가 아닌 건가요?
경증에 해당하는 질환에 대한 것만 비급여로 해서 수가를 높였더니 다 그리로 인재들이 쏠린다면서요.
그럼 이건 나머지도 수가를 높일게 아니라, 아예 고려 조건에 해당 안 되야 하는 문제 아닌가?
4. 인구수는 주는데 의사만 증원되는 문제?
이건.. 비단 의사라는 직업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지 않나? 교사도, 학원도, 교수도.
더 나아가 다른 모든 직업군들 모두 겪고 감당하며 시대에 흐름에 맞게 변화해 나가고 있는 문제를 의사들에겐 이제야 도달했을 뿐이다.
내가 속한 기초과학만 봐도 그렇다. 이미 예~전에, 우리나라에 한해 쏟아져 나오는 박사 수만 17,000명이 됐다. 그러다 보니 교수라는 타이틀을 받기 위해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높은 실적과 실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래서 고작 10명 내외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다수는 아무리 오래, 열심히 공부했어도 계약직으로 한해 한해 살아간다. 이 사태가 되는 초기에, 기초 과학 교수님들도 우려를 심히 표하며 대응책 마련을 촉구해 주셨었지.
근데 그때 사람들은 말했다. 인력 풀이 넓어지고 기회가 제한되어야 좋은 인재만 살아남고, 그래야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우수해져서 좋다고. 그리고 그래야 과학기술의 발전이 있다고. 그래서 구워지지도 않은 감자로 조용히 끝났었다.
공부 열심히 한 게 너무 안타까운 것만큼 모든 직업들이 본인의 직업에 맞게 많은 노력들을 하며 살아간다. 노력의 종류에 가치를 부여해 차별을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 와서 놀란 점은 대부분의 직업군들의 시급이 비슷하다.
의사의 경우 다른 직업에 비해 시급은 딱 2배다. 월급으로 비교해 보면 훨씬 많아 보이지만, 그건 그만큼 일하는 시간이 많아서 이지 시급자체의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각자가 각자의 직업에 대한 존중이 있다. 그리고 본인의 취향과 재능, 성향등을 고려해 직업을 구한다. 의대쏠림 현상이 심하지 않단 얘기다.
의대 쏠림 현상이며, 30대 수능이니 40대 수능이니 나오는 말만 봐도 의사가 가진 직업에 대한 우리 사회가 주는 혜택과 권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걸 반증한다고 본다.
물론 다른 직업군들의 처우개선이 다 같이 좋아지는 쪽이 훨씬 좋지.
굳이 처우 좋은 직업을 끌어내릴 필요가 뭐 있나.
글을 쓰고 보니 정부 쪽 같지만, 난 사실 정부도 시스템 개선은 뒷전이고 대에- 충 쉬운 방편으로 해결하려고 만 하는 것 같아 영 불편하긴 매 한 가지다.
나는 그냥 다만.. 진짜 그냥..
어차피 1년 휴학하고 복귀하고, 잠깐 사직했다 복직하고, 선거 지나면 스스슥 묻힐 이런 일에
가뜩이나 약자인 환자와 보호자들만 휘말리는 게 너무 화가 날 뿐이다.
왜 맘고생은 매번 약자만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