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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peltina Feb 21. 2024

딸 같을 수 있을 줄 알았죠

반성의 탈을 쓴 변명

https://brunch.co.kr/@papeltina/58

어디다 속 풀 때가 없어 쓴 글이 난생처음 '다음' 메인에 걸렸다.

하필 고부간의 글이라 어디다 자랑도 못하고, 혼자만 조용히 즐겁다.

찝찌름한 기쁨이군.




"너희 둘이 나가서 커피라도 한잔하고 와"


결혼하고 첫 추석 때, 어머니가 서둘러 남편과 나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성질머리 보통 아닌 며느리가 자꾸만 살살 긁어대는 작은 어머니와 한바탕 할까 봐서 그러신 건지, 아님 설거지옥에서 내보내 주시려고 하셨던 건지 지금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몇 십 년 알고 지낸 작은 어머니가 아닌, 내 편을 들어주시는 듯 보이는 어머니의 행동에 내심 앞으로의 우리 사이가 기대 됐다.

딸 같은 며느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저기! 우리 애가 갈비를 좋아하네? 가서 이것 좀 더 갖다 줘 봐."

"친정이 **이라며? 집이 잘 사나 봐? 성격이 그래 보여"

"공부를 잘했으면 뭐 해, 어차피 결혼해서 왔으니까 내 밑인데, 시키면 해야지"

"연아, 너는 그런 거 하지 마. 저기한테 해달라 해"


어디서 사랑과 전쟁에서 나올법한 '저기'라는 호칭과 더불어, 입을 열어 내뱉는 문장들이 꽤나 거슬리던 작은 어머니는, 딱히 제사도 없고, 시댁이 넓지도 않은데, 굳이!! 새 식구가 왔다며 2박 3일을 함께 보내시겠다고 장성한(!!) 자녀분들까지 대동하고 오신 분이셨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20년을 넘게 고생한 엄마 밑에서 큰 눈치랄까?

처음부터 쎄- 한 느낌이 나랑 잘 지내기는 글렀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꼬박 하루를 참다가 사달이 났다.

나랑 꼴랑 5살 차이 나는 작은 어머니의 '갈비 좋아하는 우리 애' 때문이었다.


작은 어머니의 '갈비 좋아하는 우리 애' 연이가 한창 아침상 차리느라 바쁜 와중에 부엌에 와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저기요.. 저 숟가락 좀 바꾸고 싶은데?"


참아줬던 화는, 저 한 마디에 터졌다.


"너. 가, 바. 꿔. 가."


그냥 기분 좋게 줄 수... 는 없었겠지만, 대충 주고 끝낼 수는 있었을 텐데.

결혼 후 첫 명절아침이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착 깔린 단호한 내 목소리에, 내내 예민해있던 남편이 쪼르르 달려왔다. 눈치가 빠른 남편은 바로 상황파악을 하자마자 나보다 더 성을 냈고, 부엌에 있는 시어머니는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남편의 큰소리는 거실에 꼬박 하루를 드러누워 계시며 먹기만 하시던 작은 어머니까지 쪼르르 오시게 했고,

결국 추석 아침은, 냉랭한 기운이 휘몰아치는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치게 됐다.


그리고 나서, 식사가 끝나자마자 어머님이 저렇게 탈출시켜 주셨던 것이었다.


"있잖아, 그래도 어머니가 내 편 들어주셔서 좀 좋아."


한참을 스타벅스에 앉아 남편과 작은 어머니 욕을 하다가, 다시 점심시간이 되어 돌아가는 길에 내가 했던 말이었다.


"그래..? 다행이다"

"응, 왠지 진짜 딸 같은 며느리 할 수 있을 것 같아"

"음.. 있잖아, 무리하지는 마."

   

그때 남편의 반응이 미적지근한 게 이상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7년을 열심히 잘 가꾸고, 참고, 다듬어 나간 고부사이였다.

물론 중간중간 한 번씩 틀어질 뻔 한 사연도 있었고, 말실수로 서운하게도 하셨다.

하지만 그쯤이야, 서로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만나 벌어지는 일이니 우리만 특별했을까.

여기 그 정도 사연 없이 브런치 글을 쓰는 사람이 어딨겠나.


근데 남편이 중간에 걸리니, 마음이 금방 달라졌다.

어머님께 딸이 되어 드리고 싶었던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남편을 챙겨주지 않으시니, 영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본인이 다치신 발목이, 8시간 수술한 남편의 암 수술보다 더 '아구구구구' 하시는 모습도 전혀 안쓰럽지 느껴지지가 않는다.

'결국은 며느리였다'라는 문장으로 반성을 하는 모습만 봐도.. 나는 결단코 딸이 될 수가 없구나 싶다.


어젯밤에도 암에 좋다는 식이를 하느라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본인이 드시고 싶으신 초코파이를 사 오라고 하신 카톡을 보고 속상해 잠을 못 잤다.


남편이 친오빠고, 내가 어머니의 딸이었다면,

'그래, 엄마가 다리가 아파 어쩔 수 없었겠지'

하며 이해했으려나?


그건 모르겠지만, 하난 확실히 배웠다.


딸 같은 며느리는 없네요.

죄송해요, 결국 며느리는 며느리고 딸은 딸인가 봐요 어머니!

아무리 그러셔도, 저는 제 남편이 제일 걱정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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