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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n 10. 2024

마트에서 산딸기


  "딸기 씻어줘."

  잠이 묻은 얼굴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눈 뜨자마자 먹을 걸 달라고 보채는 아이 같았다. 그나저나 딸기가 있다고?

  "딸기? 딸기가 있나."

  나는 한 템포 늦게 엄마가 말한 딸기를 이해했다. 어제 아빠가 마트에서 사 온 산딸기였다. 딸기라고만 하니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어릴 때는 산딸기를 사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산천을 헤매다 보면 흔하디 흔한 게 산딸기였다. 사 먹는 산딸기와는 맛도 다르다. 일률적인 맛이 아니라 더 단 것도 있고 더 신 것도 있고 맛있는 것도 있고 맹맹하니 맛없는 것도 있고 산딸기마다 맛이 다 달랐다. 


  그런데, 이 딸기를 산딸기라 부르는 게 맞나... 맞네. 뫼산, 아니고 마트에서 산딸기!   

  내 몫으로도 산딸기를 씻었다. 오늘 아침은 산딸기를 추가해 먹었다. 바나나는 그다지 챙겨 먹지는 않지만 아침에 구운 식빵과 먹는 건 좋아한다. 구운 식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씹다가 바나나 한 조각을 우물거리면, 식빵에 바나나잼을 바른 맛이 난다. 달고 부드러워서 잘 넘어간다. 그런 다음 커피 한 모금. 견과류도 곁들여서 아작아작 씹어준다. 커피 한 모금. 기분 좋은 고소함이 입안에 확 퍼진다.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남아있는 건 파프리카와 방울토마토. 둘은 오며 가며 출출하거나 입이 심심할 때 하나씩 씹는다. 그렇게 하면, 과자나 간식 생각을 좀 멀리 둘 수 있다. 


  나는 야생 산딸기 따는 걸, 아주 좋아한다.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오래전에 친구 홍과 통영 여행을 간 적 있었다. 산딸기를 보자마자  "같이 따자."와 같은 말 한마디 말도 없이 혼자 풀숲을 확확 헤치고 가더니 필사적으로, 오로지 산딸기에만 몰두해서 따는 모습을 보고 친구 홍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단다. 저렇게까지 열심히 딸 일인가. 홍이 그만하면 됐다고 멈춤 신호를 보내준 덕분에 겨우 산딸기 따기가 마무리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고사리만 보면 길을 잃을 정도로 빠져든다고 한다. 고사리를 똑 딸 때의 손맛과 고사리가 속속 보일 때 재미있다고. 나는 고사리 흥은 없는 듯하다. 내 눈에 고사리는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바로 먹을 수도 없지 않나. 하지만, 고사리 생김은 진정 멋지다. 만약, 내 결혼식에 부캐를 들게 되는 날이 온다면 고사리를 한 줌 쥐고 싶다.   

  

  물론 내가 따기를 좋아하는 것은 산딸기뿐만은 아니었다. 버섯도 많이 땄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어떤 나무 근처에 버섯이 많이 나는지 봐 두었다가 땄다. 그런 다음에 놀면서도 버섯이 언제 다시 자라나 얼마큼 자랐나 체크해 두었다. 어른들을 따라 보리똥이나 머루, 달래 등 야생 과일을 따러 산에 갈 때는 나도 꼭 껴서 갔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키워내는 일은 별로 흥미가 없지만, 돌아다니면서 먹거리를 채집하는 일은 흥미롭다. 

  

  작년 봄, 뒷산, 직박구리들이 삐익삐익 유독 유난을 떨며 오가는 나무가 있었다. 다가가 보니 검보랏빛 작은 열매가 다글다글 새까맣게 붙어있었다. 처음엔 오디 아닌 다른 열매라고 생각했다. 내가 알던 오디 열매와 달랐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보니 오디가 맞았다. 맛을 보니, 우왓! 싱그러웠다. 오디가 작고 야무졌다. 당차고 옹골졌다. 이에 비하면 산 초입에 있는 오디나무는 열매는 큰데 맛은 싱겁고, 과육이 붙은 모양새가 좀 얼기설기 엉성했다.

  

  오디를 몇 개 따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오디부터 입에 홀짝 넣는다. "이게 참 맛있어. 야생 오디. 어디서 났어?" 야생 오디였다. 직박구리의 요란한 울음소리 덕분에 야생 오디를 발견하고 맛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버찌가 익고, 오디가 익으면 길 위는 흡사 잭슨 폴락의 그림과 유사한 치열한 생존 현장을 볼 수 있다. 살아 있어야 쌀 수 있지. 온통 검보랏빛과 연보랏빛의 향연으로 팡팡 팍팍 튀어 있는 새똥은 그야말로, 야생이 만들어낸 순도 100퍼센트 자연 예술이다. 물론, 그게 무슨 예술이냐 아니냐 따지고 든다면, 내 친구는 아니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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