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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n 05. 2024

사기 떨어질 때, 드셔보세요

ㅅㄹㅁ 과 ㅇㄱㄹㅌ

  사기가 곤두박질칠 때,  사기가 끌어올려지는 제법 귀엽다 여겨지는 방법 하나를 찾았다. 그동안은 한 번도 써먹지 않았다.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면발이 얇고, 맵지 않은 라면이 좋다. 라면 봉지 째 손바닥에 놓고 몇 번 꾹꾹 누른다. 한두 번 하다 보면 적당한 힘 조절이 가능해져서 마음에 드는 크기의 생라면 조각을 입에 넣을 수 있다. 생라면 조각이 반드시 일률적일 필요는 없다. 조금 큰 조각의 생라면은 그것대로 입 안에서 부수는 쾌감을 주기도 한다. 

  

  생라면이 적당히 쪼개졌으면 봉지를 완전히 펼친다. 스프를 샤샤삭 뿌린다. 스프가 너무 많이 뿌려진 조각은 덜 뿌려진 조각에 대고 탈탈탈 두드린다. 쉽게 스프 양의 균형이 맞춰진다. 스프 역시 균일하게 뿌릴 필요는 없다. 많이 뿌려진 부분에서 강한 스프맛을 느끼고 스프가 없는 부분에서는 순수한 생라면의 바삭한 맛을 즐기면 된다. 


  오독오독 씹는 식감은 사기를 올리는데 큰 몫한다. 씹을 때 나는 경쾌한 소리가 듣기 좋다. 생라면이 푸딩이나 젤리를 먹을 때와 같은 식감이라면 이렇게까지 신이 날까. 생라면 조각이 입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스프가 떨어질까 봐 조심조심 긴장을 놓지 못하는 상태였다가... 입 안에 무사히 안착하면 안도하며 긴장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 푸는 맛도 즐겁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생라면은 괜히 생라면이 아니다.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생라면, 이름과도 찰떡이다. 다소 눅눅한 생이라면, 바삭한 생라면을 기억하자! 


  생라면이 나를 살려낸다. 입가심으로 시원한 요구르트 한 병이면 더할 나위 없다. 어금니에 눌어붙은 생라면을 혀로 밀어 떼어먹으며 아직 하나 남아 있는 생라면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생라면을 먹기 전에는 사기가 떨어져서 흐뭇한 표정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생라면을 뽀개 먹고 나면 가능해진다. 


  참! 생라면을 부숴 먹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먹고 나면, 라면을 끓어 먹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는 것이다. 자... 살아나긴 살아났는데, 이제부터 뭘 할지는 고민해 봐야겠다. 라면 끓여 먹을까. 그것 말고 다른 건? 아... 다시 사기가 떨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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