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7
단호박, 방울토마토, 복숭아로 점심 도시락을 싸서 이른 아침, 도서관으로 향했다.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일당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오늘 하루의 최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동안에도 얼굴에서 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얼굴도 갈아입고 싶을 만큼 굉장히 습했다.
읽으려고 꺼내 놓았던 김청귤 '해저도시 타코야키'를 가방에 넣었다. 타코야키. 그래 너. 설렁설렁 말고 오늘 제대로 읽어보자. 그런데 왜, 자꾸 침이 고이지.
도서관에 거의 다 왔을 때 횡단보도 앞 화단에서 파란 달개비와 눈이 딱 마주쳤다. 땀에 절어 온몸이 축축했다. 땀은 날마다 양을 불려 계속 태어난다. 얼른 시원한 도서관으로 피신하는 게 상책이나 얼마 전에 안면 튼 청초한 달개비를 모르는 척할 수 없어서 잠시 바라보다가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오늘따라 초점이 안 맞아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다. 땀은 이때다 싶었는지 마구마구 태어난다. 그래라. 땀몰라라.
파란 꽃잎과 꽃과 나비 모양의 노랑 수술. 한 줄기에 난 다양한 잎의 크기. 어릴 때 손톱에 물들일 용도로 사용할 때에는 달개비의 구체적 생김새를 알지 못했다. 세 종류의 수술들의 위치와 모양이 절묘하게 얼굴처럼 보인다. 웃기게 보자면 웃기기도 하다. (쌩뚱맞게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에서 "두깨 씨 두깨 씨" 부르던 분홍 입술 고은애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달개비도 몇 번 그리다 보면 감처럼 자꾸 그리고 싶어 질까.
자기 전에 달개비 사진을 보며 드로잉을 해 봤는데... 실물 느낌이 안 산다. 내가 그린 달개비는 궁핍하고 매가리가 없는 게 나이 들어 뵌다. 꽃잎 색도 얼룩얼룩 칠해져서 지저분하고, 잎도 단순한데 칠해 놓으니 볼품없다. 숱한 감 그리기로 그림 실력이 나아진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달개비는 좀 더 섬세한 손놀림을 요한다.
달개비 꽃 속에는 꽃과 나비가 다 있다. 수술 모양이 세 종류로 정교하고 독특했다. 꽃받침 같은 투명한 꽃잎이 한 장. 잎맥은 단순한 세로 직선. 잎의 크기도 비슷하지 않고 제각각. 두 장의 파란 꽃잎이 가운데에서 겹쳐 '교집합'을 이룬다. 달개비 벤다이어그램.
달개비를 '닭의장풀'이라고 부르지만, 입에서 선뜻 나오지 않는다. 아빠는 '달구개비'라고 부른다. 달개비 꽃말은 '순간의 즐거움' 수명이 하루라고 하여 'dayflower'라고도 한다. (정말 수명이 하루일까...) 그렇다면 나는 달개비의 단 하루를 기록한 셈이다.
달개비는 어쩐지 꽃이 아닌 인물 초상화를 그리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