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
초등학교 때, 겨울이 되면 들판에서 마른풀가지를 꺾어서 강가에 불을 피우며 놀았다. 껑껑 얼어붙은 강가에서 슬라이딩하면서 놀다가 추워지면 불을 피우곤 했다. 나와 친구 둘. 셋이서 불을 피우고 있으면 따로따로 놀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불장난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불을 가운데 놓고 모인 모두는 제법 진지했다. 그때 이미 불멍의 맛을 알아버렸다.
라이터는 어쩐지 어른들의 전유물, 불량스러운 느낌이 있어서 성냥을 선호했다. 성냥은 가련한 성냥팔이 소녀의 불씨 하나. 희망이기도 했으니까. 라이터 보다 성냥을 쥐고 탁 쳐서 불을 보는 손맛이 더 좋았기 때문일까. 무튼 우리는 성냥으로 불을 피웠다.
옷에 밴 불냄새가 빠지도록 2시간은 밖에서 덜덜 떨며 배회했다. 타탁 타닥 불에 타는 마른풀가지의 소리와 냄새가 좋았다. 유독 좋아했던 그 마른풀이 달맞이꽃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긴 줄기 옆에 삐쭉 작은 원통형 주머니가 다닥다닥 달려있고 줄기 속이 텅 비어 있었다. 불에 잘 타고 냄새가 무척 고소했다. 빵 구울 때 나는 냄새처럼.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다. 달맞이꽃대를 불 속에 넣어두었다가 불기운을 먹은 꽃대를 흡. 흡입하면 고소한 불맛이 났다. 흡입했다가 후~ 하고 불면 재미있게도 작은 원통형 씨앗 주머니로 연기가 피식피식 새나갔다. 우리는 말없이 흡입했다가 내뱉으며 만족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리가 스스로 차려 먹는 간식 같은 것이었다. 우리 셋은 달맞이꽃대와 함께 쑥쑥 성장해서 중학생이 되었다. 한 친구가 전학 가고 다른 반이 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더 이상 달맞이꽃대 간식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
달맞이꽃은 잎사귀가 재미있게 생겼다. 아주 아주 작은 파도가 치는 모양이랄까. 잎맥 가운데는 붉은색이다. 꽃은 시들면 꽃대에서 부러지듯 지는데 그 원통형 주머니에 씨앗이 맺힌다.
수채 초보라 실제와 닮은 색을 내는 게 쉽지 않다. 달맞이꽃 노랑은 형광 레몬빛이라고 해야 할까. 이 색이 아닌데... 하면서 꽃잎을 칠한다. 내가 찍은 사진에 늘 지는 그림을 그리지만 꽃을 바라보며 그리는 순간이 좋아서 계속 그리고 있다.
어둑한 새벽, 길가에 핀 유독 환한 달맞이꽃. 이름 그대로 나를 맞이해 주는 듯했다. 환한 노랑 꽃잎 위,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아주 작은 메뚜기 한 마리가 붙어 있다. 연노랑과 연연두.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풍경. 메뚜기는 설핏 잠이 든 건지 꼼짝 않는다. 혹시라도 나의 부석거림에 달맞이꽃 싱그러운 잠을 망칠까 봐 조심스레 뒤로 물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