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아이 비문학책 읽기
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12 _간식이 되는 지식책 읽기
"책 읽을 때는 음악 듣지 마라."
"집중해서 읽어라."
"딴짓하거나 읽다 멈추지 말고 끝까지 읽어라."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쿡- 찔리고야 마는 말들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 같다. 80년 대 생들에게 책은 수행평가와 내신, 수능시험, 논술의 초석이자 동시에 엄격하고 신성한 매체였다. 조용하고 엄숙하게 엉덩이를 의자 깊숙하게 밀어 넣고 앉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책과의 거리 30센티를 유지하며 읽어 마땅한 것.
이 세뇌 아닌 세뇌 덕분인지 가끔 아이들의 책 읽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른 자세로 읽자."는 말이 입안 가득 차오를 때도 있다. 사실 꽤 자주. 하지만 오로지 책에 집중한 아이의 뒷모습에만 집중해 보면서 꾹 참아본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책은 신성하고 엄격한 게 아니라는 걸. 자주 펼치고, 밑줄 긋고, 책 귀퉁이도 접어가면서 온몸으로 부대끼며 읽을 때 비로소 오래도록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책을 읽던 아이들이 유독 말이 많아질 때가 있다. "엄마! 이것 봐, 이것 좀 봐 봐.", "엄마! 일로와 봐! 신기한 거 있어." 하면서 목청 높여 엄마를 외치게 하는 책들. 이런 책들은 대부분 '과학'을 주제로 한 '지식책'들이다. (비문학 책이라 불리기도 한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이나 '재미'를 위해 학습만화만 찾는 아이들, 책과 친해져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손 위에 살포시 올려주고 싶은 책은 언제나 '호기심'으로 중무장된 '지식책'일 때가 많다.
이런 책들은 한 장만 읽고나면 뒷장이 궁금해서 무조건 뒤적뒤적 읽게 되고, 생생한 사진이나 그림들을 들여다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서사적 흐름과 플롯으로 구성된 이야기 책들은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야 책의 내용을 따라갈 수 있지만, 지식책들은 조금 다르다. 책을 후루룩 넘겨 보다가 구미가 당기는 페이지에 멈춰 읽어도 되고, 사진과 사진에 대한 설명만 살펴보아도 문제가 없다. 심심한 날, 과자 한 봉을 푹- 열어 아작아작 먹을 때의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좋은 책이랄까!
사실 요즘은 스마트폰 속 초록창을 열어 검색어 하나만 입력해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고, 유튜브 음성 검색 한 번이면 각종 휘황찬란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호기심 충전은 물론이고 사람을 홀리는 재미에도 쉽게 닿을 수 있는 환경. 이런 아이들에게 육하원칙에 입각한 논리적 전개란 어찌보면 당연한 '곤혹스러움' 같기도 하다. 우리같은(?) 80년 대 생들에게는 육하원칙이나 기승전결의 구조가 익숙하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환경 자체가 달라졌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더더욱 과학이나 사회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담은 '지식책' 종류들은 각잡고 정자세로 정독하는 게 아닌, 틈과 틈 사이 휴식을 위한 간식시간처럼 읽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었으니 내용에 맞는 퀴즈 풀이를 해 본다거나, 책 속 과학적 지식을 외워 본다는 '수능형' 책 읽기가 아닌 인간 본연의 '호기심'을 위한 책 읽기!
이런 이야기에 '인류'까지 등장 시키는 건 조금 지나친 거창함 같긴 하지만, 그래도 원래 하려던 말을 이어 보자면, 인류가 발전해 온 과정에 가장 큰 에너지가 '호기심'이었다는 걸 우린 안다. '사과는 왜 땅으로 떨어질까?', '밤 하늘의 별은 왜 빛날까?', '달이 모양은 왜 달라질까?', '먹구름이 멀려오면 왜 비가 올까?' 인류가 품어 온 수많은 물음표의 근원에는 '호기심'이 있고, 이 호기심이 과학을 과학답게, 수학을 수학답게 발전시켜 왔다. 그러니까 호기심이란 결국 우리 DNA 깊숙한 곳에 아로새겨진 본능과도 같은 에너지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은가.
아이들과 서점에 가보면 느낄 수 있다. 가장 먼저 손을 뻗는 책 역시 이렇게 통통 튀는 호기심을 낚아챈 책들이다. '펭귄이 뒤뚱뒤뚱 걷는 이유', '비행기가 날 수 있는 이유'처럼 한 번 쯤 떠올려 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책들. 화려한 사진에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진 책들이 아이들 시선을 잡곤 한다.
엄마들의 레이더는 항상 아이를 향해 있기에 아이들의 반응을 접하고 나면 이때가 기회이다! 싶어서 과학 전집이나 과학 동화를 찾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럴 때다. 무슨 책이 좋을까 지극 정성을 기울여 책을 준비하고나면, 나의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의 반응이 냉담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이 되면 엄마라는 존재들은 언제나 자책모드가 되어선 '내가 너무 아이들이 눈높이를 못 맞춰주는 건가?' 고민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엄마들은 어쩌면 좀 더 자주 해보았을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이건 엄마인 나의 부족도, 마음이 달라진 아이의 문제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에게 내재된 호기심이란 에너지는 '즉각적으로 해결'해야 충만한 만족이 차오른다는 속성이 있고, 30권 전집보다는 한 권으로 직관적인 답을 얻는 게 더 즐겁고 기쁘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와 마음의 부침을 겪고서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지식책 고르는 눈이 생겼는데 요약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글이 길거나 글밥이 많은 책 보다는 과학적인 질문, 내용, 정보 등이 짧고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 생생한 사진과 그림이 글의 이해도를 돕는 책. 아이의 '나이'를 고려해 책을 고르기 보다는 아이가 갖고 있는 지식의 수준에 맞게 고른 책.
아무래도 지식책들은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필요로해서인지 이런 관점으로 책에 다가갔을 때 아이들도 편안해 하곤 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오면서 주변이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 늘 가장 큰 오해에 휩싸여 있던 책이 '지식책'이었다. 한 권을 다 읽었으니까 그 책 안에서 다루었던 과학 이론이나 사회 개념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는 편견 아닌 편견. 사실 이건 '엄마'이기에 갖는 사랑이 결정체 같은 셈이지만 이 결정체가 아이들에게 오롯이 닿기 위해선 조금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서 '지식책'에 대해 확고해진 나만의 결론이 있다. 지식책 읽기를 '다양한 지식의 습득'을 목적하면서 읽지 말고 '간식처럼' 읽어보자고. 이리저리 뒤적이면서 아이들의 호기심이 어디에 머무는지 마주해 볼 수 있는 기회 정도로 접근해 보자고. 그렇게 책의 언덕에서 뒹굴며 즐거워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자고. 학습과 성적을 떠나 내재된 호기심을 마음껏 탐색할 수 있는 순수한 순간들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자고.
이런 아이러니를 자주 생각한다. 주부, 엄마, 살림, 육아. '나'라는 사람이 타자를 위해 무언가를 행하며 누리는 기쁨이나 행복이 아닌 오롯한 주체, 완벽한 '자기다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내게 이런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인데 이 글쓰기 안에서 다시 육아로 되돌아 오는 아이러니가 참 재미있다. 한 여자의 삶에 엄마가 되는 경험은 이처럼 눅진하다. 이것들을 제하고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내 존재 너머의 존재가 나를 장악하는 여정인 육아. 그래서 나는 '나의 책육아'라고 불리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책육아 비법'이나 '책육아 정보'가 아닌 '삶'으로 읽혔으면 좋겠다. 한 여자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책'이라는 물성 안에서 겪은 12년의 기록.
어쩌면 육아란 평생 도착점이 없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에 시어머니가 "40넘은 아들 육아가 끝이 없구나."라고 토로했고, 나의 친정엄마는 아직도 딸의 육아를 위해 딸을 육아하니까. 소름돋지만 이것이 천륜의 굴레 아닌가.
이 모습들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볼 때면 나는, 더더욱 책을 생각하게 된다. 저 먼 인생의 여정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쉽고, 가장 단순하며, 가장 효율적인 것인 책 읽기이니까.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많은 시행착오가 상처가 아닌 내적 자산으로 여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건 역시 책 읽기라는 믿음이다.
사람에게 빛깔이 있다면 나는 투명을 택해 아이들이 내뿜는 예쁜 색들을 온전히 투영하고 싶다. 가만히 숨죽이고 따뜻한 눈빛만 보내면서, 차가운 바람들을 걱정하기 보단 조용히 옆을 지키는 것. 그러다 문득 성장을 발견할 때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내게 수많은 이유를 증명하지 않아도 모두 괜찮을 수 있다면, 흐르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도 언제나 함께 존재하는 순간들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깊은 바람을 오래도록 묶어 두고 싶다.
글 쓰는 엄마, 글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