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22
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22 _ 그저 그렇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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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만이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밤하늘에 또렷이 빛나는 별이 더 아름답습니다.
__<삶은 작은 것들로> p.67
"안녕하세요.
음료는 시그니처 초콜릿 따뜻하게 숏 사이즈
결제는 버디패스 적용해서
스타벅스 카드로 할게요."
잠시 정적이 흐르고
하얀 마스크 위로 눈을 몇 번 껌뻑이던 그가
불쑥 건넨 건 전자 메모패드 였어요.
'우리 매장에는 청각장애인 파트너가 근무하고 있습니다'라는
알림 카드도 함께.
그때야 그와 제대로 눈을 맞추며
'아'하고 패드를 건네 받았죠.
사각사각 적어 보여주니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오케이 사인을 만들더니
다시 제게 메모패드를 보여줬어요.
"주차 필요 하신가요?"
이번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고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여 주었어요.
자동차 번호판의 숫자들도 메모패드에 적었죠.
완성된 음료를 들고 자리에 앉으며
솔직히 이렇게 생각했어요.
'오래 근무할 수 있을까?' 라고.
사실 조금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오래 근무하긴 힘들겠지?'라고.
스타벅스는 고객들을 버디라고 칭하며
음료가 완성되면 버디가 설정한 별칭을 큰 목소리로
불러주는 것이 주요한 포인트인데
그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바쁘게 음료를 만드는 동료들 사이에서
과연 그가 필담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이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뒤에 매장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근무중이었고
다시 또 며칠 뒤에도 카운터를 지키고 있더라구요.
하루는 주문이 밀렸는지 음료가 천천히 나와
자리에 앉아 멍하니 쉬고 있는데
문득, 청각장애인 파트너가 눈에 들어왔어요.
필담을 통해 주문을 받고,
샌드위치를 데우고, 주차 서비스를 해주는 모습.
그러다 매장이 잠잠해지자
리턴 테이블을 치우고,
매장을 돌아다니며 테이블을 정돈하는 모습도.
전형적인 스타벅스 파트너의 모습 그 자체였죠.
단지 나만, 그를 '청각장애인' 파트너라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서야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타인과 소통하는 도구에 '말과 글'이 있다면
그에게는 단지 '글과 수화'가 있는 것일 뿐
우린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고.
단지 나만, 그를 '청각장애인' 파트너이기에
'오래 하지 못할 거야'라고 섣불리 판단했을 뿐이라고요.
그간 스타벅스를 이용하면서 단 한 번도
'저 사람은 오래 근무 할거야'라던지
'곧 그만두겠군'같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왜 유독, '청각장애인' 파트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우린 그저 조금 다른 색깔의 모자,
다른 모양의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는데.
나의 그 판단은 얼마나 섣부른 속단이었던지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갖고 있는지
스스로가 선뜩해졌어요.
그는 여전히 우리동네 스타벅스에서
근무 중입니다.
저 역시
시그니처 초콜릿 따뜻하게 숏 사이즈
버디패스 적용해 스타벅스 카드로 결제라고
메모패드에 적어 건네고,
그는 오케이 사인으로 답해줍니다.
우린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테죠.
꽤 오래도록 이 모양들이 그대로이길
바라게 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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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__<삶은 작은 것들로> p.170
오늘도 나답게 나아가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리추얼 필사, 글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