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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Jan 19. 2022

기획에서 출판까지 3

원고 수정과 출판,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8. 원고를 수정하다


힘든 일이 있으면 나는 일찍 잠이 든다. 스트레스로 시달린 뇌가, 아무래도 서둘러 휴식을 원하게 때문인 듯싶다. 당분간 출간이 어려워짐이 명확해진 이후, 나는 10시 반 아들을 재우고 나면 나 역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 4시 반 즈음 잠에서 깼다. 온기가 사라진 거실로 나와, 노트북의 깜박이는 커서만 바라보다 출근을 하곤 했다. 물론 출간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다. 나에겐 마지막 희망 같은 (M사에서 알려준) '우수 출판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이 있었다. 매해 100여 점의 원고를 선정해, 출판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M사의 편집장 말로는 나의 원고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다.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한 원고를 수정 없이 '출간 지원 사업 공모'에 제출할 순 없었다. 어떻게든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제출해야 한다는 강박이 들었다. 그리하여 새벽마다, 세상 모두가 잠든 시간에서 홀로 앉아, 명상을 하듯  종이 한 장을 펼쳐놓고, 알 수 없는 방향을 찾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내가 선택한 원고 수정 방향은 상당히 단순한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내가 이 길을 걷데 된 이유, 그 사연을 조금 더 설득적으로 설명을 하자. 그리고 명확한 특성이 각각의 코스에 담겨야 한다. 그리하여, 각각의 경로에 대해 정말로 내가 감동을 했던 내용들만 추려내기 시작했다. 각각의 코스에 대해 개연성 없는 정보 나열식의 구성과 불필요한 사족들은 걷어내고, 처음 그 길을 걸었을 때 나의 눈에 들어왔던 가장 감동적인, 인상적인 사연들을 골라내어 그것들의 공통 분모를 찾아냈다. 결국 그런 사연들을 엮을 수 있는 공통 분모는 시대성이었고, 그러한 시대성은 서울 곳곳에 복잡하게 깔려있는 수많은 시간의 켜들을 조금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11월 말부터 세상 모두가 잠든 새벽에, 그리고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그리고 주말에 짬짬이 시간을 내어 (책에서 언급된) 세 개의 시대성에 맞게 구성을 조정하고 불필요한 내용을 쳐냈다. 그 와중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고, 어느새 3월, 우수 출판 콘텐츠 공모 시점이 다가왔다.  


9. 재 투고와 뜨인돌을 만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나의 원고를 보낸 후, 결과 발표까지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수정된 원고로 또다시 여러 출판사에 재 투고를 해볼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수십 번 경험한 출간 거절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그리하여 부족한 나의 원고를 그나마 가장 높게 평가해준 뜨인돌 J팀장에게 4개월 만에 연락을 하며 수정된 원고를 보냈다. 해가 바꿔 연락을 했음에도 금세 답을 주며 무척이나 나를 반겼다. 사실 J팀장에게 직접 메일을 보낸 이유는 뜨인돌에 정식으로 재 투고하기 위함보다는 수정된 원고가 지난 원고보다 나아졌음을 확인받기 위해, 그리하여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였는데, J팀장은 대뜸 사장님께 원고 풀세트를 출력하여 재 보고를 드렸다는 답을 주었다. 게다가 며칠 후 사장님께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다는 좋은 소식까지 전해주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정말 나의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정작 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높아지자 즐거움보다는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앞섰다.

5월, J팀장이 회사 근처로 찾아왔다. 저녁 업무 중에 나가서, 회사에서 멀지 않은 카페에서 만났다. 뜨인돌에서 만든 우수 도서들을 선물로 받고, 원고의 수정 방향, 인세, 계약, 출간 일정 등등에 대해 협의했다. 원고 수정 방향과 출간의 가능성 정도만 파악하기 위해 온 줄 알았는데, 계약서와 인세 이야기를 꺼내니 그제야 "정말 내 책이 출간되는구나" 실감이 났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 익숙하던 길과 건물, 사무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지독히 현실적이던 공간이 비현실적 연극의 무대 세트장처럼 느껴졌다.  


10. 출판을 위한 준비를 하다


출간은 이번 생애 처음이었기에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만, J팀장이 수시로 연락을 해서 앞으로의 계획과, 코스의 수정 및 보완, 원고의 보완 방향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또한 처음 내가 두리뭉실하게 잡았던 코스를 거리, 원고의 글량 등을 따져 명확하게 구분하고 객관적 관점에서 원고의 의도와 어긋난 몇몇 코스는 과감하게 삭제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촌각을 다투어 출판해야 하는 성격의 책은 아니라서, 출판사에서 책의 사이즈 그리고 170여 장이 넘는 그림이 각 코스별 적정하게 배치되는지, 글과는 균등하게 배분되어 판본에 얹히는지 여부 등을 따지는 동안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원고를 다시금 읽으며, 어색한 문장과 부적절한 단어 등을 골라냈다. 이 과정 중에 또한 적지 않은 내용이 수정, 삭제되었다. 그림 역시, 나의 스케치 역사의 초창기 작품들(2016년 작) 중 그 수준이 눈에 띄게 엉성한 것들을 골라내어 다시금 그렸다. 채색이 필요한 것들은 수채화로 추가 채색을 하기도 했다.

J팀장의 제안으로 각각의 코스에서 눈여겨볼 걷기의 팁을 추가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밥벌이가 건축이기에 조금은 아는 척을 할 수 있는 건축물 위주로 내용을 추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글을 추가적으로 쓰게 되었고 덩달아 적지 않은 그림들을 별도로 다시 그렸다. 이렇게 추가 원고 작업과 새로운 그림을 그리느라 주말의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러한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아들내미는 "아빠는 7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책을 못썼어?" 하며 놀렸다.

그리고 8월 말, 처음으로 책의 시안 PDF 초안이 나왔다. 아직은 글과 그림이 매칭이 안되어 완성된 책의 판본이라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향후 현실화될 책의 일부를 펼쳐보는 것처럼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시안 PDF를 보면서 책을 이루고 있는 것 중, 글과 삽화(스케치), 지도의 일부를 제외한 그 모든 것들, 의식적으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 세세하고 디테일한 모든 것들을 출판사의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담당하여 고민하고 청취하며 결정함을, 부단한 노고의 결과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제목을 정하는 일도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였다. 책의 제목을 정하는 일조차 저자의 몫이라 생각했던 나는, 처음 투고 당시 '서울 습작' '시간과 경관을 담아, 서울' '서울, 그림과 함께 걷다' 등과 같은 세련되지 못한 제목으로 적어 보냈었다. 하지만 실제로 책의 제목은 책의 판매와 직결되는 부분으로 저자의 의견보다는 출판사의 의견이 더욱 중요했다. 그리하여 출판사 자체적으로 책의 제목 여러 개를 뽑아내었고 그중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이 출판사 직원 내에서 가장 많은 지지표를 얻어, 최종 제목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J팀장에게 건네어 들었다. 표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표지에 쓰일 그림을 몇 개 추천해달라고 해서, 나의 그림 중 애정이 많이 가는 그림 몇 개를 보내주었지만, 실제로는 출판사의 디자이너에 의해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표지로 결정되었다. 역시나 출판사 내부의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는데, 내가 예상했던 표지보다 훨씬 아담하고 예쁜 표지로 작성되어, 역시나 제목이나 표지는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책 표지 안쪽에 들어가는 작가의 소개글을 쓰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세울 것 없는(?) 삶을 살아서였을까? 회사 들어가서 열심히 일했다는 말 밖에는 나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런 내가 조금은 한심(?)하여 조금은 자조적으로 글을 썼더니 출판사 사장님께서 대번에 나의 그런 쪼다스러움을 간파하고는 조금 더 담담한 소개글을 쓰라는 요청을 하기도 하셨다.  

이렇게 책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협의와 의사결정을 하고 나면 이후 어김없이 검토용 시안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또한 동시에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교정 작업이 병행되었다. 이는 내가 건축도면을 출도함과 유사하면서도 또한 달랐다. 보통 도면의 노트나 몇몇 주석은 오탈자나 오류가 있음에도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여러 장치로 인하여 슬쩍 눈감아 줄 수 있는 반면, 도서에서 오탈자와 오류 등은 치명적(?) 문제로 발견되므로 초판 인쇄를 앞둔 책의 판본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수정된 시안은 11월이 돼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11. 내 책이 세상에 나오다


11월 중순, 나는 수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의 기본설계를 건축물이 실제로 지어질 나라, 헝가리의 현지 설계사와 협의하고 설계안을 발전시키기 위해 부다페스트로 한 달 가량 출장 가게 되었다. 마침 헝가리로 출국하기 직전 주 목요일, 나의 (아니 우리의) 원고는 최종 판본이 완성되어 인쇄소로 넘어 가고 있었다. J팀장은 내가 행여 인쇄 과정이 궁금할까 봐 아직 책으로 제본되지 않은 여러 장의 인쇄물들을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이제 정말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느낌이었다. 내가 좋건 싫건 이제 서점에는 나의 이름이 적힌 책이 지나가는 고객들에게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전시되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나의 책을 들고 서울 곳곳을 걷거나, 아님 누군가는 방 구석에서 라면 받침대로 쓸 것이었다. 

11월 말 책의 판매가 개시되던 날, 아내는 처음으로 나의 책을 끝까지 완독했다고 카톡을 보냈다. (참고로 아내는 단 한번도 내 원고를 읽은 적이 없었다) 한 친구는 집 근처 교보문고 신간서적 코너에 전시된 내 책의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줬다. 어떻게 알았는지 대학 동기들, 회사 사람들 역시 나의 출간 소식에 축하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주말, 부다페스트 시내를 걷다가 어머니께서 카톡으로 보낸 사진 한 장을 받았다. 그 사진 속에는 아버지 산소의 제단과 그 위에 놓인 나의 책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무척 좋아하신다는 어머니의 문자에, 나는 낯선 타국의 길 한복판에서 바보처럼 찔찔 흐르는 눈물을 참느라 고생을 해야했다. 


내가 출간된 책의 저자가 된들, 그림이 잔뜩 그려진 여행 에세지의 작가가 된 들 나의 삶 자체가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인세는 나의 삶의 경제적 풍요로움을 주기엔 부족했으며, 나의 책을 구매한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사인을 해달라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여전히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덕분에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던 사람들과 안부를 묻게 되었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났으며, 형식적인 회의 시간 전후로 가벼운 잡담 거리가 늘었다. 그리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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