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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Nov 22. 2021

부다페스트 03

헝가리의 역사에 호기심이 생기다

앞서 걸었던 '겔레르트 언덕' 그리고 '자유의 다리'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합스부르크 왕가'다. 

구글 지도 편집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 세계사 성적이 엉망이었던 (결국 나를 재수하게 만들었던) 나에겐 좀 생소했지만, 구글 등을 찾아보니 대번에 엄청난 가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특정 국가를 지배했던 왕가(예를 들면 이씨 왕가가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좀 다양하고 복잡하단 점인데, 일단 이번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배경지식이 있으면 될 것 같다.


-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를 지배하였다.

- 19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헝가리 혁명, 독립운동이 거칠게 일어났다.

- 그 와중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헝가리 유화정책을 펼쳤다.(안 그래도 어려운데, 헝가리 시민들이 계속 독립하려고 들고일어나니)

- 그리하여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체계가 시작되었고, '외견상 독립'을 이루었다.


아무튼, 겔레르트 언덕 위 명소인 '시타델라 요새'는 19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왕가가 헝가리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뒤 헝가리 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건설하였다고 한다. 언뜻, 저런 언덕 요새에서 제대로 감시가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강 너머 페스트 일대가 완전한 평지이기 때문에, 실제로 언덕 위에 오르면 페스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구글 지도 지형으로도 쉽게 확인 가능하다.)  

출처 : 구글 지도

앞으로도 이 겔레르트 언덕에 얽힌 헝가리의 비극사를 심심찮게 언급할 예정이지만, 이번 글에서 언급한 김에 조금 더 설명을 붙이자면 '겔레르트'는 헝가리 건국 초기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선교자이다. 일반적인 종교사, 특히 기독교사를 그러하듯 기존 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기독교 사상은 어느 나라에서나 환영받지 못했다. 헝가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겔레르트는 순교 활동 중 다른 믿음을 갖은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못이 촘촘하게 박힌 통속에 갇힌 채) 이 언덕 절벽에서 다뉴브 강가로 낙사당했다고 한다. 끔찍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사실 그리 낯설지도 않다. 조선시대 합정동 절두산 언덕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머리가 잘린 채 한강으로 버려졌으니 말이다.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길래 산 이름이 아예 절두(切頭), '머리가 잘리는 산'이다. 

겔레르트 동상은 아쉽게도 보수 공사 중이었다.


언덕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다리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시타델라 요새 남동 측에 자리한 '자유의 다리'는 1984년에 완공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건설되었고, 당시 합스부르크가 군주의 이름을 따 '프란츠 요제프 다리'로 불리다가 이후 부다페스트 시민들에 의해 '자유의 다리'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은, 헝가리 사람들에겐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일본-조선 제국'정도의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왕가 중심으로 돌아가는 유럽 제국의 특성상 조선과 일본과의 관계와는 사정이 좀 달랐겠지만, 어쨌거나 마자르 민족(헝가리 사람들은 스스로를 마자르 민족이라 칭한다)에겐 느낌 상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그랬으니 형식적으로나마 독립국가 대우를 받았을지언정, 헝가리 시민들은 그들만의 진정한 독립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댜뉴브강을 가로지르는 멋진 다리의 이름이 '프란츠 요제프'로 지어짐이 그리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헝가리의 민족의식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분명하다고 (어디선가) 들은 바가 있는데 '마자르족' 그리고 '민족주의'에 대해선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다시 다루고 싶다.


역사 이야기는 잠시 접고, 다리의 구조 이야기를 해보자. 비록 나는 구조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아는 척을 좀 하자면, 다리의 구조 형식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주로 '아치교' '트러스교' '라멘교' '사장교' '현수교'로 구분할 수 있다. 교량 구조의 형식은 결국 사람, 자동차 등이 지나다니는 데크(deck)의 하중을 어떻게 분산시켜 최종적으로 교량의 기둥으로 집중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표적인 교량 형식인 '현수교'와 '사장교'의 힘의 흐름을 아주 거칠고 단순화하여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즉 사장교는 데크의 하중을 강선 등의 케이블을 기둥(또는 타워)에 바로 전달하는 방식이라면 현수교는 각각의 케이블이 다시 타워와 타워를 연결하는 주케이블에 걸려서 간접적으로 힘들 전달하는 방식이다.

부다페스트 중심부 다뉴브강 교량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자유의 다리, 엘리자베스 다리, 세체니 다리(가장 유명한데 현재 공사 중이라 접근할 수 없다), 마가렡 다리 순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마가렡 다리를 제외하고 모두 현수교이며, 다리가 지어진 시기에 따라 공법과 재료, 장식 등은 상당히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마가렡 다리는 아치와 트러스가 뒤섞여 있는 교량이다.)   

자유의 다리
엘리자베스 다리
세체니 다리 (현재 공사 중이라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다. 어부의 요새를 찍으려다 우연히 찍혔다.)
마가렡 다리
구글 지도 수정

참고로 부다페스트 교량 중 가장 유명한 세체니 다리는 3년째 보수공사를 진행 중이라 한다. 준공 목표가 올해까지 였는데 1~2년 지연될 것이라 한다. 공사 중임을 알리는 펜스 곁을 지나며 후배와 나는 "한국 시공사에게 맡겼으면, 낮엔 운영을 하고 야간에만 보수 공사를 하여도 1년 만에 끝낼 수 있을 것"이라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오해하지 말자. 이 말은 한국 시공기술의 우수함을 자랑함이 아닌, 그만큼 '여유 없이, 쫓기듯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안타까워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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