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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씨 Sep 14. 2021

소중한 사람 승주에게

숲과 산과 풀에게

어제 승주와 통화를 마치고

손과 머리로는 일을 하면서

마음으로는 계속 편지를 썼습니다.


지오와의 짧은 통화는 봄햇살 같았습니다.

"지오는 몇 학년 몇 반?"

"4학년 1반이요."

"몇 반까지 있어요?"

"1반이요."

아하하, 시원하고 맑은 마음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어요.


승주가 지오에게

"이모에게 사랑한다고 해줘요."라고 하고

"이모 사랑해요."라고 지오가 말해줬을 때

기쁨으로 가슴이 꽉 차올랐습니다.


세상에나! 아무리 엄마의 요청이라 할지라도

4학년 어린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게 되는 영광이라니요.

저에게 이런 황송하기까지 한 기쁨을 주셔서

고마워요. 


요즘처럼 유난히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럴 시절이 도래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덜 바빠서 일까 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데.

돌아본다는 게 나쁘지도 않고

이게 앞으로의 시작일 거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를 눈부시게 했던 반짝이들 사이에서

우리가 괴로워했던 것들.

그것을 부수고 나오며 성장했어요.

그것들이 거짓이라거나 쓸모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은 그것대로 반짝였고 탐이 나서 견딜 수 없던 날도 있었어요.

그것들을 보며 달렸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는 동안에도

우리의 참 열매들은 조물조물 익어가고 여물어갔어요.

우리가 돌보는 줄도 모르고 돌보고

우리가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성장하던

여름 열매들.


내 것이라 할만한 것도

내 것이 아니라 할만한 것도 없는 그런 열매들.

우리처럼 살아갈 열매들. 

우리보다 나은 삶을 기도하게 되는 열매들.

더없이 가없이 아름다운 삶을 만나라고 기도하게 되는 열매들.


반짝이가 나쁜 것은 아니어서

그 반짝이들 덕분에 어리석어지고 바빠지고

부끄러워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 반짝이들의 늪에서

연꽃 같은 마음이 피어나길 바라며


특별하고 특별했던 우리 각자의 여름 한편을 

편지에 적어봅니다.


승주가 있어주어서 

너무나 다행하고 고맙습니다.

승주를 생각하면

언제나 히말라야가 떠오르고

비가 오던 깊은 숲과 아름다운 선유동 계곡이 떠오릅니다.

함께 삶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 고맙고

사소하거나 때로는 큰 실망을 던져주게 되더라도

서로를 붙들어 주며

우리의 앞날에 서로가 있어주길 기도합니다.


2021년 9월 14일 

승주의 언니 지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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