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에
여름,
그날
나는 아침에 눈을 뜨고 "행복하다"라고 확실히 느꼈다.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침대에서 눈을 뜨는 동시에
행복하다고 느꼈다.
언제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었는데 말이다.
가을,
대학 후배를 만난 게 잘못이었을까.
이런저런 동기들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래 다들 잘 됐구나
훌륭하네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일을 하러 오는 길에는
어쩐지
나 자신에 대해
씁쓸해졌다.
아무것도 아니네.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쁜 시작도 아니었고
기회는 널려있던 그 시절에
나는 왜 나 좋을 대로만 하고 살아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지금에 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나를
한심하다고 해주었다.
그리고 그날 그 저녁
전화 한 통에 나는 울었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내가 되지 못한 것들의 까닭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축복이라는 것에도 감사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엔
눈을 뜨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행복해서.
나와 달리 무엇이 된 내 벗이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을지 모를 그것들을 가진 그가
그 무엇을 내게 나눠주겠다고 했다.
아, 나는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고
나는 그 무엇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머리가 나쁘니까.
그 마음의 푯대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거다.
내가 아무것도 되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내 푯대였고
내가 별것도 없는 이유는
그것이 내 허영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무엇이 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무엇도 되지 않으려고 했으니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갑자기 남들이 되려 했던 그것들이
엄청 부러웠던 반나절을 지나
나는 갑자기 굉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나의 선한 벗들이
이제 그들의 빛나는 열매를 나에게 나눠주겠다고 한다.
나는 신의 뜻을 그렇게 읽었다.
교만한 내가 무엇을 가지면 안 되는지
알게 하시려고
교만한 내게 감사를 배우게 하시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욕망했던 것들을 이루게 하셨다고
나는 내 마음대로 확신했다.
그리고 기뻐졌다.
감사했다.
충분해졌다.
그래서 나는 며칠째 울고 있고
매일 기쁘고 감사하다.
모르겠다. 이것이 맞는 건지
소설을 쓰고 있는 건지.
바뀌지 않을 것은
지금은 이것이 진실이고
지금 내가 행복하고 기쁘다는 사실이다.
신께서 그들을 더 축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의 축복, 그 크기는 모두에게 동일하다고 믿는다.
2021년 내 나이 오십.
내가 느껴야 할 강렬한 감정 모두가 한꺼번에 덮쳐온 것 같다.
2021년을 시작하며
나는 내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고
다 이상 화를 누르는 게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동생이, 친구가, 동료가
건져주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감정들이
나를 덮친 한 해였다.
그게 나의 오십이었다.
이다음에도 뭔가 있겠지.
이다음도 뭔가 있어야 하겠지.
살면서 가장 미칠 것 같았고
살면서 가장 기뻤던 한 해를
오십에 주신 신께 감사한다.
2021 11 06 지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