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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씨 Jan 27. 2024

너에게_나는 숨겨야 할 것이 많았어

2024 01 26 금

너에게


오후 3시 반 예약. 병원에 다녀왔어.

의사에게 무슨 일인지 말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야.

친절했지만 기분은 나빴어.

그 사람 등 뒤의 오후 4시 햇살이 싫었어.

나는 5단계 중 겨우 1단계 약을 처방받았어.

그게 플라세보 효과라도 있어서

내가 일주일을 버티고

다음 주 화요일의 외출을 버티고

계약서 쓰다가 울지 않고

잘 집에 와야 할 텐데.


욕심은 전시 1과 전시 2를 보는 것이지만

나는 힘을 낼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춥잖아. ^^;


내가 왜 이렇게 힘들까 생각해 봤어.

고작, 친구였잖아.

고. 작! : ) 이라니 거짓말이야.

잊고 싶었고 잊은 날 많았지만

너에 대한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로 가득했던 내 무의식.

아무 준비 없이 그때가 왔고

나를 다 내려놓고 너를 만나야겠다고 용기 냈는데

내 인생의 가장 소중했던 그때가 전부 무의미해진 게

나에게 이렇게 큰 고통이 된 거 같아.

2023년 9월 29일. 시작은 이런 게 아니었어.

그날로부터 10월은 괜찮았어.

따뜻한 나라에서 사랑과 평안에 잔뜩 빠져있던 중이었으니까.

그러다 그걸 너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하고 슬퍼졌어.

좋았으니까.

아직 이만큼의 젊음이라도 남아있을 때 

너와도 이런 시간을 꼭 한 번이라도 보내보고 싶어 졌지.

행복했으니까.

그리고 11월과 12월도 왔어.

노력했지만 너를 찾을 수 없었어.

내 노력의 바운더리는 고작 너의 외가댁 주소가 다였으니까.

거기서 나는 너의 수수께끼에 쌓인 방학들을 되짚었고.

내가 놓친 너의 무언의 싸인들을 발견했어.


나. 는.

숨겨야 할 게 많았어.

나 자신을. 그다음엔 너를. 그리고 우리를.

그리고 이렇게나 펑! 터져버렸지.


그런데 이제 그럴 힘도 나를 빠져나가는 중이야.

그래서 의사 앞에서 울었어.

무슨 일인지는 말할 수 없었어.

뭐라고 하겠어. 겨우 어린 시절 친구 문제인걸. ^^;

아니, 인생 문제지. 내 인생문제. 그리고 너의 인생.

네가 차라리. 여지를 주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 여지가 내가 버틸 힘이 돼. 고마워.

나더러 더 용기를 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깨끗이 단념하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해서

나는 어쩔 바를 모르겠어.

(이미 이상은 해졌어 ^^;)


내일은 2시에 보리와 산책을 가기로 했어.

뭐라도 해서 나를 기운 차리게 해주고 싶으니까.


2024 01 26 금


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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