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콩나물국을 시원하게 끓여 먹으려고 했는데 소태가 되어버렸다. 톡톡 순하게 쏟아져야 할 소금이 덩어리째 뛰어 들어가 버린 것이다. 간만 잘 맞추면 깔끔한 맛을 들이켤 수 있는 간단한 국이었다. 더없이 쉽고 지극히 기본인 국을 소금 하나로 한순간에 망쳐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돌이킬 수 없게 된 국솥을 망연자실 들여다보고 있는 아침, 그렇지 않아도 찌뿌듯한 몸이 아예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 같다.
부모님이 바라던 순탄한 인생을 살아가면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직장생활 하다가 적령기에 결혼하여 오붓한 가정을 꾸리는 것, 모든 부모의 일반적인 소망일 것이다. 무슨 까닭에서였는지 나는 부모님이 세워놓은 삶의 기본 틀을 어떻게든 벗어나려고만 발버둥 쳤다. 엉뚱한 길을 쫓는 유별난 딸이었다. 또래들이 가정에 착실히 안주해 있을 때, 직장에서 야근과 주말을 마다치 않고 일 속에 파묻혀 있었다. 더구나 결혼 적령기의 마지선에 도달해 있던 서른 후반 무렵엔 돌연 직장이라는 테두리마저 이탈해 버렸다.
한 사람도 찬성하지 않고 모두 뜯어말렸던 요식업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취급을 받는 게 싫어서 인정받을 결과를 얻을 때까지 견뎌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망할 때까지 6년이라는 시간을 버티게 되었다. 결국, 그 시간이 내게 준 결론은 음식점 일이라는 게 나만의 장밋빛미래였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변명하지만 기필코 치기 어린 반항은 아니었다. 그저 때에 맞춰 찾아온, 절박한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전의 기회였을 뿐이었다. 잡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고 미련으로 남을지도 모르는, 어쩌면 내 삶에 올까 말까 한 전환의 기회로 기꺼이 맞이했던 것이다. 세상살이에 열심히만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며 호기롭던 시절이었다. 안타깝게도 용기만 가상했을 뿐 내 처세는 지극히 서툴렀고 온전히 미숙했다.
지나온 날을 돌아보면 부모님의 소박한 바람이 내게 꼭 맞는 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힘든 길로 에둘러 돌아간다고 안쓰러워했던 고집스러운 내 선택 또한 탁월하지만은않았다. 선택 가능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것 또한 지극히 평범한 재능과 내 능력의 테두리 안이었기에 늘 한계가 그어져 있었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초라한 나를 좀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줄 거창한 선택을 하고 싶었다. 고만고만한 삶과 보잘것없는 현실 너머를 꿈꾸던 뜬구름 같은 허세 탓이었다.
덕분에 마흔이라는 삶의 중반에 파산의 시간을 겪으며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인생이란 게 애초에 의도했던 대로 가지지 않는 만만찮은 길이라는 걸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온몸으로 배운 셈이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그 이후는 내 소관이 아니었다. 안 되는 데에는 그만한 연유(緣由)가 뒤따랐기에, 6년이 지나서는 그 포기 또한 속전속결로 내렸다. 미련을 두고 있기보다는 마음 저 밑바닥에서 놓지 못하는 간절한 것이 아니라면 빨리 내려놓고 다른 우물을 파 내려가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모든 상황이 무너지듯이 한순간에 닫혀버렸다. 꿈처럼 아득해져 버린 거짓말 같은 시간. 그 속에서 부대끼며 터득한 지혜를 주워 모으는 시간은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만큼 순식간에 닥친 실패였고 갑작스럽게 막이 내린 내 삶의 일단락이었다.
개운하고 깔끔한 속풀이 용으로 끓이려 했던, 나름 야심 찬 해장국이었다. 한 숟갈도 삼키지 못하게 짜디짠 콩나물국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웠다. 물을 한가득 들이부어 멀거니 흐리멍덩한 국물로 마시고 싶지도 않았다. 한순간에 저질러버린 어이없는 황망함을 애써 진정시키고 저절로 짜디짠 소금물에 절인 콩나물을 건져 냈다.
없는 참기름 대신 눈에 띄는 들기름을 넣고 바락바락 무쳤다. 소태가 된 콩나물국은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의도치 않은 들기름까지 덧입혀지면서 그럴듯한 나물무침으로 탈바꿈되었다. 뜻하지 않은 콩나물국의 실패 앞에서 자연스럽게 콩나물무침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킨 자신에게 대견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또한 서투름 투성이었던 지난한 경험 속에서 터득한 뿌듯한 지혜가 아니냐면서.
망해버린 애초의 콩나물국보다 더 맛있는, 예기치 못한 콩나물무침이 차려진 아침상 앞에 섰다. 문득 그동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패자부활의 가닥을 발견해 낸 내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 콩나물이 뭐라고 이렇게나 믿음직한 희망의 씨앗으로 피어올랐던지. 애초에 원했던 게 과연 콩나물국이었던가 싶게 환골탈태한 무침이라는 신세계를 찾아낸 환호를 속으로 외쳐대고 있는 아침이었다. 어느새 실패의 원흉이었던 소금 덩어리에 감사하고 있을 만큼이나.
이제야 억울하기만 했던 지난 시간을 실패로 타박하지 않고 감싸 안을 수 있는 내가 된 것인가. 시행착오의 시간이 다른 한 편의 새로운 것을 얻어가는 과정일 수 있다는 의외의 맛을 진정으로 즐기게 된 것이었다. 속 시원한 콩나물국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콩나물무침이어도 크게 낭패스러운 게 아니었다. 굳이 한 가지만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처세를 터득해 내었다.
“맛있으면 되지, 뭐.” 참기름이 없어도 괜찮았다. 입안에 들기름의 여운이 도는 씁쓸한 맛이긴 하지만 약간 들떠 있는 듯 가볍고 낯선 달콤함을 품은 들기름의 영양으로도 족했다. 아직 남아있는 콩나물이 넉넉하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다음번에는 덤벙대지 않고 조심스럽게 소금을 살살 뿌려서 맛있는 콩나물국을 완성해 내어야지.
실패의 시간이 온전히 실수와 허튼 경험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 아삭아삭한 콩나물무침의 식감을 만끽한다. 깨소금도 톡톡 뿌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