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는 잘못이 없다

# 떡볶이

by 일상 여행자

“엄마, 이게 아닌데요.”

우리가 알고 있던 떡볶이가 아니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이마를 맞대고 먹었던 것과는 때깔부터가 달랐다. 새빨간 양념을 뒤집어쓴 쫄깃한 떡과 통통하게 불은 어묵이 국물 속에 자작하게 빠져 있던 고추장 떡볶이. 삼 남매의 머릿속에 떠올라 있던 떡볶이 그림과는 판이하게 다른 희멀건 떡볶이가 놓여있었다. 우리의 시큰둥한 반응에 당황스러워하기는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남매의 초지일관 ‘엄지 척’ 메뉴인 된장찌개부터 멸치볶음, 나물 반찬은 물론이고 추어탕과 다슬기국까지 다양한 재료의 국들을 거침없이 차려내는 엄마였다. 육해공을 망라하는 식재료를 능수능란하게 요리해 내는 엄마의 음식 맛은 자자한 칭송을 받고 있던 터였다. 웬만한 한식당 저리 가랄 정도의 반찬들을 척척 해내는 집밥 덕분에 우리 가족은 이미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엄마는 분식에서도 예외 없이 한 솜씨를 발휘했다. 어묵과 달걀, 단무지만으로도 간이 똑 떨어졌고, 한 번 맛본 김밥 꼬다리는 집어먹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값비싼 속 재료 없이도 모두의 입맛을 단단히 붙들어 맸던 김밥이었다. 그런 엄마의 떡볶이기에 어린 우리의 기대는 솜사탕처럼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요리의 보증수표 같았던 엄마표 음식이 한 접시 떡볶이로 인해 오점이 찍히는 사태가 벌어진 거였다. 삼 남매로부터 외면받은 문제의 떡볶이는 빨간 고춧가루 한 톨 들어있지 않은 간장떡볶이였다. 게다가 표고버섯과 당근까지 어른의 입맛을 갖추지 못한 우리가 살짝살짝 골라내놓던 ‘건강한’ 채소들이 즐비했다. 나름 야심 차게 내놓은 엄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원하던 떡볶이와는 한참 먼 비주얼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의 간장떡볶이는 궁중요리 레시피였다. 고급 일품요리가 학교 앞 분식에 밀리다 못해 케첩 범벅이 되어 그나마 어린이용 구색을 겨우 맞추었던 날이었다.


“고모, 이 떡볶이가 아니에요. 로제 떡볶이라고요.”

“로제 떡볶이, 그게 뭔데?”

김치를 물에 씻어 먹던 어린 조카가 어느덧 떡볶이 마니아로 성장했다. 호환 마마보다 무섭고 갱년기만큼이나 감당이 안 된다는 사춘기가 요즘 어른의 매운맛에 흠뻑 빠졌단다. 라면과 라볶이는 시시하고 매운 떡볶이와 불닭볶음면 정도는 돼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나.

일 년에 두 번 돌아오는 명절과 방학 때나 겨우 볼 수 있는 조카였다. 올 때마다 훌쩍훌쩍 자라더니 키만 크는 게 아니었는지 조카의 세계는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지 한참인 듯했다. 거실에는 나오지도 않았고 방 한구석에 콕 박혀서 스마트폰 삼매경이었다. 또래 친구가 더 좋을 때고,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에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어느덧 조카의 뒷전으로 밀려난 식구들의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명절에는 얼굴이나 볼 수 있으려나, 싶은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줄곧 내놓아도 질리지 않던 할머니의 보들보들 달걀찜 미끼는 그나마 유효했다. 8시 전 아침밥은 꿈나라 얘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눈 비비고 나와 옹달샘 같은 밥상에 둘러앉았다. 이렇듯 귀한 상전이 된 조카가 호기롭게 주문한 떡볶이가 하필이면 이름도 생소한 ‘로제 떡볶이’였다.


“매운 떡볶이에 크림소스를 넣어 만든 거예요.”

평소 치즈 마니아인 조카에게 걸맞은 맛인 듯했다. 어른들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느끼한 맛의 예감이 왔다. 떡볶이 떡을 적당히 배분해서 두 개의 팬에 나누어 담았다. 하나는 어른을 위한 매운 떡볶이, 다른 하나는 조카의 ‘최애’인 로제 떡볶이.

양념도 두 가지 버전으로 따로 만들었다. 이젠 혼자서 요리도 곧잘 한다는 조카와 대결하듯이 팬을 하나씩 떠맡았다. 떡과 채소를 넣고 볶다가 물을 부어 재료를 익히고 고추장 양념을 넣어 기본 맛을 조절했다. 두 개의 화덕에 다른 버전의 떡볶이가 고유한 빛깔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고추장 양념과 생크림이 섞이면서 조카의 로제 떡볶이가 저녁노을처럼 물들어갔다.

“고모, 색깔 보이죠? 이렇게 색을 봐가면서 맵기를 맞춰야 돼요.”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팬을 다루는 손놀림도 능숙하고 소스를 척척 넣어가며 뒤적이는 동작도 거침이 없었다. 물과 기름을 끼얹은 재료들이 익어가고 주방에서 풍겨 나온 매운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여섯 살 작은 조카가 부엌 문턱이 닳도록 들락이며 익은 재료를 새모이 마냥 집어먹고, 할머니가 생전 처음 보는 로제 소스를 맛보았다. 조카만 아는 미지의 떡볶이를 향한 식구들의 궁금증도 무르익어갔다.

마침내 요란한 냄새만 풍기던 두 가지 떡볶이가 식탁 가운데에 그득하게 차려졌다. 조카의 말로만 들었던 신세계 떡볶이에 대한 시식평이 쏟아지고 각자 취향에 따라 덜어가며 먹기 시작했다. 맛에 대한 저마다의 호불호는 냉정했지만, 할아버지부터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삼대가 모인 떡볶이 잔치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 저녁이었다.


가쁜 트렌드 속에서 매번 새롭게 변신하는 떡볶이는 잘못이 없었다. 입맛은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 달라졌고 궁중떡볶이에서 분식집 떡볶이로, 로제 떡볶이를 거쳐 또 어떤 떡볶이가 탄생할지 모를 미래를 맞이할 뿐이었다. 그러나 삼대의 가족이 함께 먹은 그 저녁 떡볶이에 대한 기억이 온기를 품고 오래도록 이어질 거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