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잎 절임
“너는 콤콤해서 싫어하지? 콩잎 말고 깻잎절임 줄까?”
여느 때처럼 그녀는 택배로 보낼 반찬을 챙기기 위해 딸의 냉장고에 남아있는 반찬의 재고 현황을 파악하는 동시에 갓 만들어낸 제철 반찬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콩이 싹을 틔우기도 전이지만 그녀의 냉장고에는 계절을 잊은 콩잎이 사시사철 떨어지지 않고 비축되어 있었다. 가을 단풍 든 콩잎을 하나하나 개어 소금에 절여 삭혔다가 짠기를 뺀 뒤 다시 새 양념을 찹찹하게 끼얹어 냉동실에 넣기 전이었다. 콩잎과 깻잎을 구분한 이름표를 붙여 딸에게 보낸 게 몇 달 전이니 이제 어지간히 먹었겠다 싶어 타진해보고 있는 참이었다.
특별한 육류와 제철에 나는 생선이 없는 평범한 날이나 싱싱한 나물과 신선 반찬이 마땅치가 않을 때면 그녀는 허전한 밥상을 채우기 위해 냉동실에 잠들어있는 콩잎 봉지를 구원병처럼 꺼냈다. 그런 구색 맞추기 찬에 불과한 콩잎이 특별한 재료로 대접받는다는 건 사회초년생으로 상경한 딸의 경험담을 통해서였다.
“식당에서 콩잎 반찬이 나왔는데 사람들이 이건 경상도 사람들만 먹는다지?”라며 딴 지방에서는 소나 먹는 여물 같은 거라고. 그러면서도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서 호기심에 입맛 당기는 별미로 먹어보더란다. 그랬다. 그녀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일상의 찬이었던 콩잎이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식재료였다.
솔직히 딸은 콩잎 절임을 좋아하지 않았다. 콩잎과 깻잎은 같은 양념으로 버무려졌는데 부드러운 깻잎과는 달리 잎사귀가 두껍고 질겼다. 목 안으로 넘어가려면 입안에서 그 거친 나뭇잎 같은 질감을 한참 동안 짓이겨야 했다. 겉절이보다는 김장김치의 묵은 맛을 즐기는 딸에게도 삭힌 잎사귀에 배인 군덕내는 선뜻하지 않았다. 특유의 맛과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고수처럼 발효와 부패의 선을 아슬하게 넘나드는 삭힌 이파리의 묵힌 맛은 어거지로 감당하는 맛이었다. 딸에게 콩잎 절임은 그나마 ‘음식 간은 입에 착착 붙어야 한다’는 그녀의 짭조름한 양념 맛으로 묻어가는 밑반찬이었다.
그 콩잎 절임이 특별해지던 어느 날이었다. 독일에서 음악공부하고 귀국했다는 꽤 유명한 작곡가라고 했다. 장어구이 전문점에서 곁들이 찬으로 나온 콩잎 절임을 환한 낯으로 반기더니 한 잎을 집어 먹고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 맛이에요, 우리 엄마도 꼭 이런 콩잎 반찬을 해줬어요.”
고향이 마산이라는 그는 오랜 해외생활 접고 십 년 강산처럼 변한 고국에 막 돌아온 참이었다. 접대를 받던 장어집에서 만난 콩잎 절임은 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돌아가신 엄마와 타지보다 낯설어진 고향을 곧바로 소환했다. 콩잎 절임을 앞에 두고 식사 시간 내내 어린 시절 추억담을 그리던 그는 식당 주인이 챙겨주는 콩잎 봉지를 고이 받아 들고 몇 번이나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하며 돌아섰다. 그때의 장면은 딸에게 음식이 품고 있는 미지의 힘에 대해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했던 인상적인 각인이었다.
김장을 끝내고도 그녀는 남편이 즐기는 백김치와 아들이 좋아하는 파김치를 담갔다. 남은 양념으로 한다지만 배추김치보다 결코 품이 적게 드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깻잎절임은 삭힌 시간 동안 배인 군덕내를 가셔 내기 위해 끓이고 물에 담가 우려낸 뒤 물기를 탈수하듯이 빼내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했다. 이 복잡한 깻잎절임에 대한 부담으로 며칠 내내 이어진 김장을 마친 홀가분함도 미루고 있던 참이었다.
“올해는 콩잎이 없네요?”
남의 콩밭에 들어가는 것도 눈치 봐야 하는 요즘이라 흔한 콩잎은 예전 말이 되었다. 성묫길에 환호하며 노랗게 물든 콩잎 밭으로 뛰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에 절레절레하던 것도 어느새 10여 년 전이었다. 김장을 돕지 못한 게 내심 미안한 딸은 혼자 해도 된다는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숟가락을 얹었다.
“너희는 나중에 엄마가 없으면 이 반찬을 해 먹을 수 있겠니?”
깻잎을 쟁반에 바지런히 펼치던 그녀가 뜬금없는 물음을 던졌다. 나란히 줄을 세우자마자 국자로 깻잎 위에 양념을 재빨리 떨어뜨리던 딸이 무심히 답했다.
“엄마가 있으니까 먹지, 뭐 굳이 이 번거로운 걸 만들어 먹겠어요? 그냥 딴 거 사 먹고 말지.”
펼쳐진 쟁반 위에서 실시간으로 양념을 끼얹고 있던 깻잎의 단풍들이기 작업이 일순 멈추었다. 순간 딸은 방심한 자신의 무성의한 답에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이렇듯 지난한 과정을 거쳐온, 그녀의 깻잎에 대한 예를 갖추지 못한 자신의 신속한 대답을 타박했다. 최소한 “엄마 맛을 기억하면서 더듬더듬 찾아보겠죠” 정도의 경솔함이었으면 무난했을 선이 다시 붙잡기에는 이미 멀어진 궤도 밖으로 이탈해 버렸다.
소금물에 삭혀서 군내를 빼내고 다시 새뜻한 양념을 덧입히고. 김장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조리과정을 거치는 이 낙엽 절임에 옛사람들이 어떤 지혜를 담았는지는 모를 내막이다. 그러나 멀고 먼 시공간을 훌쩍 거슬러 바로 이 순간을 소환해 내는 걸 간접적으로 경험한 딸은 이 콤콤한 시간의 맛에 덧입혀진 양념 맛을 회한과 눈물로 추억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가 엄마 없는 자식이 되어도 절대 불쌍해질 리가 없어요. 적어도 우린 이렇게 온갖 정성 들인 엄마 반찬 덕분에 철철이 원 없이 누린 호사로운 시절을 맛보았으니까요, 넘치게 호강했어, 안 측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