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과의 추억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節)’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한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 <여름과 루비> 중에서
초록빛 비로드 한복, 나의 영원한 막내 할머니는 오묘한 에메랄드 빛과 겹쳐졌다. 이어 옛사람들이 북적이던 종갓집 마당과 도래솔 아래 둘러앉아 성묘하던 선산에서의 모습들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꿈에서도 가끔 나오는 그 풍경 안에서 나는 항상 천진난만 아이가 되어 뛰어다니고 있었다. 더불어 먹음직스러운 약과가 보름달처럼 둥실 떠올랐다. 한 시절을 소환하는 유행가처럼 막내 할머니의 음식은 내 뿌리의 기억을 모아놓은 판도라 상자로 남았다.
할머니께서 언제부터 뛰어난 음식 솜씨를 보유하셨는지는 고사하고, 묘비명에서 뵌 밀양 박 씨라는 성씨만 보았을 뿐 여직 그 존함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조막손에서 쏟아져 나오던, 어린 눈을 매혹한 아름다운 먹거리의 자태는 선연히 남아 있다. 요즘 떡집에서도 볼 수 없는 고운 빛깔의 떡과 재료의 정체를 뒤덮어 꾸밈 한 다채로운 전들. 그리고 성묘 때만 먹을 수 있었던 통째로 튀긴 닭. 대개 장정들만 가는 게 관례인 벌초에 걸그적거리기만 하는 어린애가 굳이 따라나선 까닭도 실은 그날만 먹을 수 있는 할머니표 별미 때문이었다.
내 유년의 진귀한 음식의 발원지였던 할머니는 명절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에서도 남다른 실력을 발휘하셨다. 작은아버지 혼례를 앞두고 이바지 음식을 장만하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온 집안에 잔칫집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육전부터 이름도 모르겠는 생선과 채소 등 육해공을 망라하는 재료들을 마당 팬에서 끝도 없이 지져냈다. 작은 방에서는 눈처럼 새하얀 유과와 다식 등 각양각색의 한과들이 빚어지고 있었다. 평소에 보기 힘든 귀한 이바지 음식 중에서 유독 내 마음을 홀딱 뺏어간 것이 있었는데, 이름도 귀한 ‘약과’였다.
노르스름한 밀가루 반죽이 밀대에 뚝딱뚝딱 밀리고 접히기를 반복하다가 나무틀에 박힌 뒤 꼭꼭 눌러 뒤집으면 꽃 모양의 약과가 툭 피어났다. 그 판판한 꽃 반죽은 끓는 것도 아니고 끓지 않는 것도 아닌 미세한 온도의 기름 솥에 들어가 노릇하게 튀겨졌다. 그러고는 다시 열탕에서 나와 냉탕으로 들어가듯 윤기 나는 꿀탕에 퐁당 빠져 촉촉해질 때까지 푹 절여졌다. 꽃과자가 만들어지는 곁에서 어린 나는 질리지도 않는 약과의 탄생 과정을 턱 받치고 지켜보았다. 첩첩산중처럼 이어지는 겹겹이 정성 어린 반복만으로도 맛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차올랐다. 입으로 보는 맛에 앞서 눈으로 상상하는 맛의 세계에 눈 뜬 순간이었다.
할머니께서는 한시도 떼지 않고 끈덕지게 버티고 앉아 있는 나를 껄떡이 대표주자로 정하셨는지, 불쑥 약과 조각을 입속에 넣어 주셨다. 한입 베어 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알던 약과와는 비할 데가 아닌 맛이라는 걸.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차원이 다른 달콤함이었다.
이미 새로운 세계를 맛본 나는 이어질 다음을 목이 빠지게 고대했다. 그러나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다음 약과는 영영 도착하지 않았다. 종일 장만한 음식들이 각자의 함과 보자기를 찾아 바삐 꾸려지고, 시간을 다투는 어른들의 분주함 속에서 약과를 향한 나의 간절한 기다림은 무심히 잊혔다. 급기야 일사불란한 채비 속에서 훌쩍 떠나는 약과 보따리를 망연자실 바라보던 애절함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마당 한구석에서 뜬금없이 쏟아지는 나의 통곡은 그제야 돌아봐졌다.
“아이고, 내가 다음에 네 약과 꼭 해줄게.”
해 질 녘 모퉁이에서 그렇게 북받친 서러움은 다음을 기약하며 겨우 달래졌다.
여느 아이들처럼 좋고 싫은 것도 없고 그냥저냥 뚱한 애였다. 어지간한 호불호라는 게 없던 어린 과묵함으로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무던한 아이로 묻어가던 시절. 그날처럼 간절한 바라기였던 적도, 그처럼 꺼이꺼이 섧게 울었던 적도 손에 꼽을 일이었다.
막내 할머니께서는 갑작스러운 의료사고로 황망하게 돌아가셨다. 그리고 할머니의 꽃 같은 음식은 영영 볼 수도 맛볼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 저녁에 훌쩍 떠나버린 약과처럼 우두커니 맞이한 이별이었다. 그렇게 약과는 내 유년에 맞이한 크나큰 상실의 꽃무늬로 남았다.
다시 채워지지 않은 결핍은 그 시절의 마당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약과는 늘 애절했고 아련한 결핍을 떠올렸다. 가끔 생각한다. 채워지지 않은 그 한 조각의 상실이 지금의 결핍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나는 약과 앞에서 여전히 유년의 아이처럼 껄떡대고 안달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