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에 새알심이 들어간다고요?

# 새알수제비

by 일상 여행자

평상시에도 들에서 밭에서 일을 하다가 밥을 짓고 집안일을 거두는 그녀의 일상이었다. 밭에서 일하는 중인가 싶으면 어느새 부엌에 들어와 고구마나 감자, 국수를 삶아 커다란 다라에 담아 논밭으로 내어 갔다. 당시엔 전형이었던 시골 촌부의 살림살이였다.

맏딸은 시키지 않아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루를 걸레질하거나 저녁밥을 안쳐 놓거나 하는 것으로 바쁜 엄마의 집안일을 거들었다. 본격적인 모내기 철이나 수확기가 되면 그녀의 노동은 밤낮 구분이 없어졌다. 자다가 깨어보면 그녀가 부엌에 쟁반 여러 개를 펼쳐놓고 앉아서 새알심을 낳고 있었다. 모내기 품앗이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낮의 노동이 밤에도 계속 이어졌다. 고단한 몸을 쉴 새도 없이 다음날 새참을 준비하고 있는 나날이었다.


“엄마, 이거 언제 끝나?”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뚝뚝 떼어낸 반죽 알을 수도 없이 손바닥 위에서 굴려대는 부지런한 손놀림에도 불구하고 아득한 지평선처럼 도대체가 요원한 끝이었다. 동글동글 새알심이 둥그런 양은 쟁반을 새하얗게 채워가고 늘어가는 쟁반이 부엌 바닥을 메꾸고 있었지만,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반죽 덩어리는 굳건한 바윗덩이처럼 꿋꿋이 제 몸체를 고집하고 있었다.

작은 손바닥 위에서 한 알의 새알심이 어설프게 굴려지고 있는 동안 그녀의 손에서는 메추리 알처럼 매끈한 새알심이 쉴 새 없이 툭툭 쏟아졌다. 딸아이가 한 개의 알을 꾸역꾸역 낳는 동안 엄마의 바지런한 손은 한꺼번에 두 알을 빚어내기도 하고, 서너 알의 새알심이 동글동글 태어났다.

미역 수제비는 당시 이 지역에서 인기몰이하고 있던 새참 메뉴였던 것 같다. 이른 아침부터 들에서 일하던 반나절 일꾼들의 중참으로 자리 잡은 국수도 있었다. 그러나 허기를 급히 채우던 국수는 한입에 ‘후루룩, 뚝딱’ 비워지는 점심 전 잠깐 쉬면서 먹는 요깃거리에 불과했다. 끼니에 버금가는 든든함과 먹기에 번잡하지 않은, 두 마리 토끼를 한 그릇에 담은 음식이 필요했던 듯했다. 그래서 찹쌀 경단을 넣은 국과 국수의 중간쯤 되는 일품 메뉴로 미역 수제비가 탄생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도 미역국에 새알심을 넣는 수제비라니. 가히 창의적인 이색 메뉴가 아닐 수가 없다.

좌우간 바쁜 농번기 커다란 함지박에 여러 인분의 식사를 논으로 내 가야 하는 새참은 오롯이 안사람의 몫이었다. 미역 수제비는 일꾼들에게 ‘먹기 편하고 든든한’ 수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만큼 준비하는 손품이 많이 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을 어느 집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메뉴였을 것이다. 봄 모내기와 가을 추수 들판에서 미역국 수제비는 맛과 재료의 호불호를 뛰어넘어 별식의 자리를 차지했음에 틀림없다.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잠들지 못하는 자정이나 새벽녘이면 겨운 눈꺼풀을 버티고 꼬이는 몸을 틀어가며 빚던 오래전 그 밤들이 떠오른다. 별처럼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가며 빚었던 수고로운 눈송이 같은, 이미 녹아 사라졌을 새알심의 행방을 추적해 보는 것이다. 동지 팥죽도 아니고 미역 속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구슬 같은 수제비를. 흙 묻은 손과 발을 대충 털어가며 먹던 들판 한가운데서 수저 위에 동그랗게 얹혀 삼켜지던 우황청심원 같은 근기가 되었을 새알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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