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눈처럼

# 들깨뭇국

by 일상 여행자

김장을 마치고 남은 가을 무 하나. 생채로 무쳐 먹을까, 하다 선득하게 휘도는 찬바람에 잔뜩 움츠러든 속을 뜨듯하게 데워줄 뭇국이 떠올랐다.

둥그런 무를 텀벙텀벙 얇게 썰고 무침용 생채보다는 조금 두껍게 채 썰어 들기름에 들들 볶는다. 하얀 무 가닥이 투명해지기 시작하면 물을 부어 뚜껑을 덮고는 잊어버리고 푹 익힌다. 무가 우러나와 국물이 뽀얘지면 들깻가루와 간을 추가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단한 들깨 뭇국이다. 뭘 더하거나 특별한 기술이 추가되는 것도 없는, 깔끔한 국이다. 고춧가루나 요란한 양념이 들어가지 않는 조리법이라고 해서 결코 쉬운 건 아니다. 오히려 간단한 조리과정만으로 맛을 내야 하기 때문에 나름의 필살기가 필요하다. 뭇국은 재료 본연의 맛을 잘 뽑아내는 게 비법이자 핵심이다. 더없이 단출한 국물의 주인공인 무가 맛이 없다면? 조미료 맛으로 덧칠하지 않으면 한마디로 망한 국이 탄생하는 거다.

덩그러니 놓인 가을 무를 보고 생각나 끓인 뭇국이었는데, 엄마보다 뜬금없이 막내가 먼저 떠올랐다. 이 뭇국은 분명히 엄마표인데, 원조를 제친 막내의 들깨 뭇국으로 그 겨울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나는 그냥 돈 벌어서 사 먹을 거예요.”

엄마는 조리 중에도 재료가 들어가는 순서나 주의할 것에 대해 지나가는 말로 틈틈이 알려주셨다. 그러나 귀한 비법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적당히 흘리면서 진심 귓등으로 지나쳤다. 일찌감치 엄마의 부엌일을 어깨너머로 거들었던 내 머릿속에는 ‘요리는 고생 문턱’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었다. 변변한 레시피도 없이 달랑 독립한 뒤늦게야 급급한 대로 만만한 메뉴들을 하나씩 받아 적으며 엄마의 음식들을 들쑥날쑥 쌓았다. 요리에 대한 의욕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생존의 차원에서였다. 반면 엄마의 손맛을 일찌감치 알아본 막내는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겠다는 열의를 내며 엄마의 전수자를 자처했다. 그저 그런 막내의 미약한 시작이 창대해졌던 어느 여름이었다.


제대 후 복학하기 전 막내가 노량진 수험생이 되면서 삼 남매가 다시 한 지붕 아래 지내게 되었다. 몇 년간의 자취 이력을 쌓아온 막내의 숨은 실력이 마침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된장국과 찌개의 중간쯤 되는 엄마의 된장찌개를 강된장이라는 이름으로 끓여놓는가 하면 우리들만의 중국집이었던 엄마의 옛날 짜장맛을 그대로 재현해 내놓았다. 아우와 나는 막내가 차려내는 엄마 맛을 초심자의 실수치고는 제법이라고 격하시켰지만, 이미 막내는 음식 하나로 객지에서 임시 엄마의 자리를 꿰찼으며 어느새 우리는 막내표 요리를 넙죽넙죽 받아먹는 아기새가 되어 있었다.


훗날 요식업에서 함께 일하던 시절, ‘가족같이 일하는’ 게 쉽지 않은 업장에서 막내와 나는 ‘가족 아닌 가족’으로 험난한 전쟁을 치렀다. 음식점 메뉴는 척척 해내는 찬모도 거부하는 직원 식사는 집밥 경력이 일천한 미혼에게는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는 삼시 세끼를 손님들 음식을 해내는 와중에 정성 들여 챙기기란 더더욱 쉽지 않았다. 매일이 시험대 같았던 뒤죽박죽 속에서 막내의 음식들은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눈 오는 날 귓불처럼 말랑말랑하고 아기 엉덩이처럼 찰랑찰랑하게 치대어 떠낸 수제비, 중국집 주방장의 두 눈을 번쩍 뜨게 한 춘장의 떫은맛을 제대로 잡아낸 자장면. 그리고 유난히도 춥고 견뎌내기 벅찼던 겨울 한기를 데워주었던 들깨 뭇국. 막내의 들깨 뭇국은 우리가 맨몸으로 치러낸 각개전투 같았던 그 겨울의 살벌한 기억들을 눈처럼 쏟아 낸다.

생색을 잔뜩 입힌 이벤트는 한 번씩 멋들어지게 치러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삶의 고수는 매일매일의 밥처럼 꾸준한 반복을 성실히 채워가는 사람이라는 걸. 그 혹독한 시간을 통해서 터득해 낸 인생의 한 수였다. 대개는 내리사랑인 엄마 음식을 소환해 떠올리는 삶의 이치를 이렇게 치사랑으로 깨닫기도 하는, 막내의 뭇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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