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부
항상 모자랐다. 한창 성장기에 접어든 세 아이를 포함해 다섯 식구의 한 끼 밥상에서 두부 한모는 매번 턱없이 부족했다.
가게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집이었던 우리 식구에게 두부는 장날에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식재료였다. 고기 찬도 아닌데 명절이나 지짐질을 하는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던 별식이었다. 젓가락이 한 번씩 오고 갔을 뿐인데도 제법 수북하다 싶은 두부 접시는 금방 하얀 바닥을 드러냈다. 한입 가득 베어 욕심껏 채웠건만 몽글몽글한 부드러움은 입안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쉬이 넘어가 버렸다. 더없이 깔끔한 이별처럼 담백한 기억만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져 아쉬움을 더했다. 달콤하나 성근 솜사탕처럼 두부는 애석하기 그지없는 뜬구름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두부 한모를 혼자서 온전히 다 먹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품기 시작했던 것이. 그렇게 싹튼 두부에 대한 애착을 풀 수 있게 된 것은 독립해 자취를 시작했을 때였다. 호기롭게도 1인 가구에게 적당한 용량으로 포장된 팩 두부가 아닌 판두부를 덥석 집었다. 4인 가족이 먹기에도 벅차다 싶은 두툼한 손두부를 한 끼에 먹어치울 기세였다. 작정한 날이었으니까.
그렇게 고대했던, 온전히 나만을 위한 두부는 곁들인 양념장에도 불구하고 심심했다. 원 없이 먹어보겠다는 의욕에 찬 식탐과 달리 식구들 틈에서 비집고 먹던 왁자한 맛은 어디로 가고 그저 심드렁할 뿐이었다. 속없는 만두처럼 찐 맛없었다.
두부요~ 두부~
이른 아침 희뿌연 안개를 가르고 우렁찬 고함이 울려 퍼졌다. 짙은 어둠을 건너온 새벽이 막 아침 문턱을 넘을 때였다. 할아버지(연세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던 어린 내게 어르신은 처음부터 할아버지였다)의 목청은 두부판을 실은 짐 자전거만큼 튼튼하고 커다랬다. 가끔 바람에 실려 오는 마이크와 기계 잡음이 뒤섞인 동네 안내방송과는 다른 차원의,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외침.
멀리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우렁찬 두부’를 담기 위해 엄마는 큰 그릇을 챙겨 들고 대문 밖으로 바삐 나가셨다. 나도 언제 마주칠지 기약 없는 이른 아침의 횡재를 놓칠세라 덩달아 설레발을 치며 뒤따랐다. 상쾌한 아침 공기 속에서 흰 김을 무럭무럭 피워 올리는 두부는 날마다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신선했다. 가공장에서 막 싣고 나온 말랑말랑한 덩어리는 뜨끈한 온기를 한껏 품고 있었고, 할아버지의 외침은 세상의 아침을 알리는 기상나팔처럼 기운이 넘쳤다. 덜 깬 잠을 묻히고 허둥거리며 반겼던 것이 두부였는지 할아버지였는지 아랑곳없이 두부 할아버지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어둠의 종착이자 빛의 출발역처럼 도착한 순백의 두부는 하루의 시작을 켜주는 스위치 같았다. 평상시의 찬에 두부 하나가 얹혔을 뿐인데 밥상이 푸짐해졌다. 고기나 거한 음식 없이도 순둥순둥 밝히던 두부는 특별함 없는 일상에 화색이 돌게 했다.
안개만큼이나 흐릿한 컨디션으로 이부자리에서 미적거리는 아침, 먼 기억 언저리를 누비는 두부 할아버지의 힘찬 목소리와 딸랑이는 종소리가 찌뿌듯한 몸을 일으킨다. 다시 주어지는 새로운 하루는 백지처럼 여전히 건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