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묵일 수만은 없는 정성

# 도토리묵

by 일상 여행자


“계속하는 거야

수없이 떨어지면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거야

땅속 깊이 묻어놓은 씨앗을 깨우기 위해서는

무한 반복해야 해”


묵은 주메뉴에 앞서 입맛을 돋우는 곁들이 찬이었다. 메인이 나오기 전 묵 한 점이나 묵무침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시골 정취를 맛보게 하는 별식이었다.

외딴 벽지에 자리한 음식점인 탓에 도시의 트렌디한 재료 대신에 제철 메뉴들을 선보이려고 애썼다. 텃밭에서 길러낸 푸성귀와 이웃의 농작물로 신토불이의 맛을 차려냈다. 달래와 냉이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머위나 호박잎을 쪄낸 쌈과 돌나물, 마늘종, 방풍나물 등의 제철 채소들과 여름 감자, 겨울 고구마 등으로 계절감을 더했다. 올방개묵과 도토리묵은 토속적인 식재료인 데다 ‘손수’의 건강함을 부각하며 직접 쑤어 낸 덕분에 인기 메뉴가 되었다.

마지막 차례인 죽과 함께 묵은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고, 유독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먹기에는 쉬운 간단식이었지만 만들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정성을 쏟아야 했다. 영업이 끝난 늦은 밤에 겨운 피곤을 안고 묵을 쑤었다. 묵가루와 물을 여섯 내지 일곱 배의 비율로 섞고 적당히(식은 죽처럼 성의 없는 듯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뭉긋한 불 위에서 인내의 주걱을 긴 강을 건너는 노처럼 한결같은 리듬으로 저어야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묵과 죽은 전문점이 아닌 이상 장사의 금기 메뉴이기도 했다. 유독 영업집에서는 행운과 불운의 기운에 예민했다. 장사의 마수걸이처럼 아침에 묵과 죽을 먼저 조리하면 ‘묵사발’이나 ‘죽을 쑤다’와 같은 속어의 의미가 뒤따른다고 믿었다. 특히 사업적인 접대를 하는 손님의 자리라면 더더욱 이런 메뉴들에 민감했다. 비싼 밥집에서 죽을 내준다며 화를 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럼에도 다수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나름의 기준을 고수해야 했다. 일의 효율을 고려해 손품과 시간이 가장 많이 드는 죽을 먼저 끓이는 것으로 영업을 시작하고, 묵을 쑤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상수리나무는 바람으로도 어떤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지 흉년이 들면 열매를 더 알차게 매단다고 한다. 늙은 소나무가 제 남은 여력을 끌어모아서 빼곡한 솔방울을 매달 듯 자연은 우리가 짐작도 할 수 없는 대처능력을 발휘해 제 나름의 생존 전쟁을 치른다.

그해엔 도토리가 풍년이었다. 상부상조 겸해서 마을에서 빻아온 도토리가루를 사서 쑤었는데 이웃마다 한 보따리씩 연거푸 안겨주었다. 거기에다 시골집에서는 넘쳐나는 도토리가루를 가라앉힌 덩어리 채로 보태주셨다. 유난히도 넉넉해진 도토리 인심을 푸지게 쓰려니 그야말로 묵 주걱으로 날마다 노를 저었다.

매일 전쟁을 치르는 듯한 하루는 초보 장사꾼의 예상을 뛰어넘어 널을 뛰었다. 들지 않아 애를 태우던 손님이 마침내 몰리면 직원들이 어깃장을 부리거나 속을 썩였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연신 방글방글한 영업 미소를 잃지 않아야 했다. 안팎으로 너덜 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던 시간은 비로소 홀로가 되어 묵을 쑤던 밤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하루는 저물었고, 나무주걱이 일으키는 파도에 휩쓸리던 소용돌이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던 물과 묵가루는 은근한 불과 지긋한 주걱질에 몽글몽글 뭉치기 시작했다. 지난한 반복으로 멀건 액체가 묵직해지면서 차츰 형태를 잡고 굳어졌다. 뜨거운 용암 같은 묵을 재빨리 부어 식히면 찰싹찰싹 때려도 제 몸체를 뭉그러뜨리지 않는 능글능글한 묵이 완성되었다.

탱탱하게 살아난 묵판을 층층이 덮어 놓고 나면 긴 하루의 숙제도 흐뭇하게 끝이 났다. 그렇게 무수한 동그라미를 묵묵히 쌓던 밤 한가운데서 잔뜩 날이 선 마음의 모서리를 뭉개고 바닥으로 기울어지려는 몸을 오뚝이처럼 일으켜 세웠다.

가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결국 실패로 끝난 내 장사의 마무리를 그렇게 날마다 쑤어대었던 묵과 죽 탓으로 미루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해지자.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나의 노 젓기 공력이 부족했던 까닭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