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금 우리 학교는>(2022, Netflix)
(이 글에는 <지금 우리 학교는>의 스포가 있습니다.)
01.
존 트루비의 저서 <이야기의 해부 The Anatomy of Story>중 호러의 상징 연결망이라는 챕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호러 장르는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의 공포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것은 문명화된 생활-삶과 죽음, 이성과 비이성,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를 넘는 것과 그로 인해 찾아오는 파멸에 대해 다룬다.'
좀비-크리처물이라 부르는 이야기도 호러의 한 갈래로서, 크리처의 출현과 관련된 컨텍스트가 테마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크리처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그 기원이 어떠한지, 크리처와 관련된 사태에 대응하는 인간들은 어떤 행태를 보이는지 등을 통해 문명화된 사회의 그림자나 시스템-인간사회 구조의 허점들, 인간 이성의 불완전함, 정치 이데올로기 같은 것들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장르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보거나 들어 보았을(아니면 관련 전공을 할 경우 수업 때 숙제처럼 접하게 되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1968)이나 <지구 최후의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1951)등을 보면 좀비-크리처물로 대두되는 호러 장르의 특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02.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크리처-호러물이다. 유명한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12회, 러닝타임은 총 709분이다. 요즘 OTT에서 서비스되는 시리즈물로는 약간 길이가 긴 편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크리처의 탄생은 사회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악질적이고 사라지지 않는 학교 폭력과 피해자들의 후유증에 대한 것으로 잔인한 폭력이 곧 얼마나 거대한 재앙인가에 대한 물음이나 마찬가지다. 정서적 효과도 크고 장르의 결도 잘 살리는, 드라마의 작동원리로 무난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없는 어른들과 권력층을 스케치하며,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적 전망도 적당히 배치되어 있다. 전형적이지만 캐주얼하게 보기 좋은 일종의 오락물이기 때문에 필요한 접근이었을 것이가 본다.
그런데 12화를 모두 본 뒤 가장 머리 속에 남는 감상은 가족 신파의 두께가 조금만 얇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원작은 일부만 보았고, 워낙 오래전의 일이기 때문에 오롯이 넷플리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텍스트만 놓고 생각한 것이다.)
03.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 집단은 효산고 2학년 5반과 양궁그룹을 합쳐 약 13~14명 가량 된다. 모두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해당 상황에서 심리적/도덕적 약점을 노출하거나 변화의 곡선을 나타내는 캐릭터는 매우 일부이다. 물론 이들은 모두 무고한 피해자이며 미성년자인 학생이기 때문에 설정을 부여하는데 한계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야기에서 주요 인물들이 겪는 딜레마와 고민의 절정-해결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가 전달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갈등의 깊이가 얕은 주요 캐릭터들은 조금 심심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영화의 제1주연인 남온조(박지후 분)는 어떻게 보면 흠결 없는 인물이다. 선함과 정의의 영역 안에서만 고민하고 전반적으로 바른 학생이다. 여러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중심 축이 되는 인물이 무난한 정의를 표방하는 것은 익숙하다. 그러나 남온조의 세계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것, 일종의 목표-지켜야 하는 가치-가 되는 것은 가족이며, 특히 구조대원인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이어나가는 것과 아버지의 정신을 지켜내는 일이다. 다른 것들은 참아도 아버지를 비난하는 것만큼은 절대 못참을 것 같은 인물로 세팅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온조의 가치가 위협받는 시퀀스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11화에서 남온조의 아버지인 남소주가 사망하는데 이 때 아버지의 희생은 그 기회비용이 크지 않다. 아니, 솔직히 초라한 수준이다. 이렇게 남온조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지만 그로 인한 성장이나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아 의미망은 희미한 편이다.
또 다른 주인공 이청산(윤찬영 분)도 마찬가지이다. 남온조와 이청산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필요와 욕망을 보여주는 씬을 가장 먼저, 자세하게 설정했기 때문인데(이를 테면 청산치킨에 가서 함께 치킨 시식을 하는 장면) 여기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가치는 가족, 이청산의 경우는 특히 어머니이다. 하지만 이청산은 남온조의 경우보다 더욱 가족과의 연결고리가 약하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동원리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청산의 작동 원리는 사실 남온조에 대한 애정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후반부 이청산을 둘러싼 이야기와 정서에 가족-어머니와 관련된 부분이 뭔가 결정적인 느낌처럼 존재한다.
어쩌면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 내의 각종 싸움,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하는 여러 문제들, 그 속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포지션과 관련한 설정들이 주가 되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보다 더 서브 플롯화 되어 진행되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캐릭터에게 가장 절대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가 가족에게 있는 것은 맞다.(모두는 가족이나 집단으로부터 탄생하므로) 글을 쓰다보면 왜 수많은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을 다루거나 부모 자식간의 갈등, 돌아가신 어머니나 아버지가 남긴 감정적 유산을 다루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보다 더 확실하게 인물을 세팅할 수 있는 요소가 없을 뿐더러 그것을 떠나서 다른 설정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직업 윤리 측면에서 명분을 주어 인물에게 결함을 주거나 행동 원리를 만들어주곤 한다. 주인공의 직업 중에 형사나 기자가 많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공간에 갇혀 있는 학생들의 생존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주요 인물들의 정서적 아킬레스를 가족에만 주는(게다가 극적 작동 원리로 잘 활용하지 않는)것은 가족 중심의 이데올로기, 가족-신파, 유사 유교적 전통에 지나치게 사로 잡혀 있는 우리나라의 몇몇 플롯들을 떠올리게 하는 게 사실이고 소모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피할 수 없다.
04.
가장 좋았던 점은 액션의 유려한 구현이다. 좀비화된 크리처가 떼로 등장한다는 설정이고 K-좀비다운 속도와 기괴한 움직임을 자랑하기 때문에 액션 쇼트 하나 하나를 찍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몹씬은 액션이 별로 없어도 신경쓸 게 많은 씬인데 제각기 움직이는 좀비 캐릭터가 수십명이 나와야 하니 모든 스탭들의 할 일이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보통 정성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셋 업(카메라의 위치)으로 역동적인 편집을 만들어냈고, 감염자 역할을 했던 분들의 액션 디렉팅도 상당히 꼼꼼하게 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가상 재난이 발생한 이야기 속 세계에 환경을 그럴싸하게 만들어주고 몰입도도 높여준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기획하고 연출하면서 모든 제작진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게 이 크리처와 관련된 설계일 것이다. 전 세계가 이 작품에, 더 나아가 K-좀비물에 열광하는 것도 완벽한 크리처의 구현 때문이다. 작업하신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호러는 영역이 명확한 장르이기 때문에 관객의 기대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져 있다. 대개 좀비가 떼로 달려올 때는 크리처 자체의 공포, 아슬아슬하게 도망가는 캐릭터들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희열과 스릴, 서스펜스등을 바랄 것이다. 그 부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면, <지금 우리 학교는>이 이루어낸 성과는 명확하다 할 것이다.
05.
순수-선을 표방하는 캐릭터 보다 결함 있는 캐릭터가 테마 전달에 유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지금 우리 학교는>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캐릭터는 이나연(이유미 분)과 박미진(이은샘 분) 그리고 최남라(조이현 분)였다. 특히 이나연 캐릭터를 맡은 이유미 배우는 연기가 매우 디테일하여 표정도 잘 살아있고, 전반적인 캐릭터 표현 능력이 정말 훌륭하다. <박화영>(2017)이나 <어른들은 몰라요>(2021), <인질>(2021) 등에서도 호연을 보여주셨는데,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도 참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다. 지금까지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신만큼, 앞으로도 더 기대해보게 된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워낙 많은 배우분들이 출연하시기 때문에 연기력의 편차가 살짝 드러난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감정적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에서 오직 한 가지의 표정만으로 대사를 소화하는 경우를 보면 조금 더 다양한 표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간만에 긴 호흡의 드라마를 몰아보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두서없이 뻗어나간다. 분명한 건 이렇게 특정 장르를 표방한 대작이 완성되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이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작품들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작품 창작과 관람 문화 풍토에 여러 순작용이 깃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