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캐릭터는 회차에 아니 흔들리므로

리뷰 <오자크 Ozark> 시즌 1(2017, Netflix)

by 레트너

"I'm hooked on OZARK. There's an undercurrent of black humor running through it that makes it special."


스티븐 킹의 말이다. 이미 볼 사람들은 거의 보았을 <오자크> 시즌 1을 최근에 주행했다. IMDB 평점도 높고 로튼토마토 스코어도 꽤 준수한데다(대단한 것은 시즌1보다 2, 3으로 갈 수록 평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무려 '스티븐 킹'이 이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여러 차례 트위터에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 만으로 언젠가 꼭 봐야지 하며 침 발라놨던 시리즈다.


시즌 1은 여러모로 대단했다. 조금 견뎌야 하는 부분도 있던 게 사실이지만 그 보다는 황홀한 순간들이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 탄탄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제작부터 연기, 일부 회차의 연출을 맡아서 진행한 제이슨 베이트먼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곳에 쓰는 리뷰는 정말이지 생각나는 것들을 자유롭게 털어내고 퇴고도 많이 하지 않는, 그야말로 단상(斷想)이므로 제법 두서가 없을 예정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오자크> 시즌 1을 보며 좋았던 네 가지 지점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


1. 세련된 정보 전달.

이야기 글을 쓰다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 물론 작가 마다 기준점은 천차만별이다 - 주인공인데, 이 주인공의 필요/약점/결함 등을 세팅하는 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래야 세계를 구축할 수 있고, 욕망을 짤 수 있으며 결말에 어떤 발견을 하게 되는지 구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주인공은 주인공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갈등이 생겨난다. 창작자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 갈등에 관객들이 빨려들어가서 동기화가 되거나 세계관을 받아들여서 신나게 즐길 준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 사실 당연하지만 - 주인공을 빚어내고 인물을 둘러싼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은 몹시 어려운 작업이다. 이 작업이 서툴게 되면 개연성이 무너지거나 작위성이 생겨 오히려 관객들이 튕겨져 나가고, 클라이맥스 부분을 쓰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극의 초반부를 쓸 때 창작자들은 대개 불안하고 조급하다. 자신이 없어지고 의심을 하며 누군가 확신을 주기를 갈구하며 기도하게 된다.


<오자크>는 이런 부분에서 대범한 진행을 보여준다. 주인공 마틴 버드(제이슨 베이트먼 분)에 대한 묘사는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인물 내면의 공허를 먼저 파고 드는데 집중되어 있다. 이 사람의 직업이나 가족, 그를 둘러싼 세계관-역사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얼마나 인생이 무료한 남자 인지는 아주 확실하게 전달하고 시작하는 것이다.(첫 에피소드에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그 안에서 마스터베이션 하는 묘사를 보라)


때문에 인물과 관련된 몇몇 사항들은 미스테리로 채워져 있다. 씨줄날줄로 엮인 인물 간 히스토리와 지난한 가족문제가 있을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어쨌든 주인공은 시작과 동시에 시한폭탄을 등에 업고 달리게 되므로 생존을 위한 레이스를 따라가는 동안 스릴러 장르 특유의 서스펜스에 먼저 매료되어 버리는 것이다. 인물과 그 외의 꼭 필요한 정보들은 레이스의 과정에서 퍼즐이 맞춰지듯 서서히 드러난다. 능숙하고 여유 있으면서도 효과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 세련된 구성이 아닐 수 없다.


가장 놀라운 점은 시리즈의 거의 후반부인 8화에서 마틴 버드와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의 히스토리를 - 완전히 과거로 돌아가서 -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은 이런 플래시백은 시리즈의 초중반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아니면 주인공이 행동하는 사이사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도록 구성을 하게 마련이다. <오자크>는 극이 거의 끝나갈 때 쯤, 거의 한 회차를 할애하여 현재 진행된 세계의 과거를 보여주는데, 이 '전략'은 이야기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선택이고 무엇보다 캐릭터의 흐름이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진행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즉, 시즌1 전체 플롯의 구조가 제대로 구성된 인과율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8화는 주인공 가족의 지난 10년을 풀어내는 내용인데, 이야기의 흐름상 7화의 마지막이 인물이 내부적으로 가장 큰 갈등(가족과 관련된)을 겪는 순간이 그려지기 때문에 당위적인 해설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7화에 이르기까지 히스토리를 보여주지 않고 - 게다가 이 히스토리에 마틴 버드가 주인공인 이유가 정확히 드러난다! - 관객들을 끌고 오는 것도 대단한 부분이다.



2. 은밀한 적수

최근 국내 화제가 되었던 몇몇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 답답했던 것 중 하나는 적수/안타고니스트의 묘사가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주인공의 적수라는 포지션에 맞지 않는 (쉬운)방향을 잡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적수는 그냥 말초적 분노를 조장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과 같은 가치를 두고 싸우는 인물이어야 한다.(존 트루비의 <이야기의 해부> 인용) 적수가 제대로 세팅이 되어 있어야 주인공의 계획-자기발견이 완성된다.


적수가 그냥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결합물로만 스케치 되는 경우를 근래 많이 보았는데, 이 경우 적수는 결코 주인공의 발견을 보여주는 장애물이 될 수 없다. 자신을 드러내고 노출하고 악행을 전시하기 바쁜 적수는 공격을 해야 할 이유와 목표지점이 너무 명확해 지기 때문에 잡는 행동을 액션으로 채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지는 것이다. 곧 이야기가 단순해진다.


진정한 적수는 게임을 한다. 그래서 대개 은밀하다. <오자크>의 악역들은 그런 면에서 아주 매력있고, 시리즈 전체를 이끌어갈 퍼즐을 세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며 장르적 긴장감을 충분히 자아낸다. 그리고 상대를 이기려면 주인공은 그에 못지 않게 은밀해져야 하기 때문에 인물의 성찰-변화양상을 잘 담아낼 수 있다. 새로운 지점들은 아니지만 이러한 악역 및 가짜 악역(알고보니 동료였던)의 촘촘한 설계가 <오자크>의 주인공 가족을 좀 더 빛나게 만들어 주는 건 확실하다.

* 사족으로 최근 국내 드라마에서 적대 세력 캐릭터의 묘사가 가장 빼어난 작품은 단연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다. 논픽션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묘사에 강점이 있었다고 본다.



3. 연결망

개인적으로 주인공, 동료, 적수, 그 외 인물들은 직접적으로 혹은 의미망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연결망이 잘 구성되어 있으면 어떤 상징을 담아내기 수월해진다고 본다. 억지로 설교하는 것처럼 대사를 쓰거나 작위적인 설정을 하지 않아도 테마가 잘 전달된다고 할까.


<오자크>의 주인공 가족은 붕괴되어 가는 미국의 평범한 가정의 초상이다. 그리고 그 붕괴의 원인이 무엇이냐면 자본주의의 부작용이다. 이 상징은 명확하다. 아래로 흐르는 깔때기에 빠져서 추락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인간군상들이 모인, 어쩌면 가상 세계처럼 보이기도 하는 무대가 바로 '오자크' 마을이다. 여기에 미국의 문제가 있고 붕괴의 양상을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사태가 담기는 것이다.


관계의 균열이 심각하고 윤리 의식이 결여된 주인공 가족 - 가난한 콩가루 집안이지만 결속력은 끈끈한 범죄자 가족 - 사회적 소수자이자 너무나도 폭력적인 악질 FBI 요원 - 멕시코를 주름잡는 마약 조직 - 오자크 마을에서 가장 무섭고 비밀스러운 사업을 하고 있는 터줏대감 가문 - 이 곳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도착한 신실한 목사. 대략적인 <오자크> 시즌1의 인물 세팅이다. 하나의 상식적인 이유만 대면 이들이 사건으로 서로 연결되기 쉽고 무엇보다 윤리적으로 배치되어 갈등-딜레마를 겪기 너무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 상징이나 테마는 대사 한 두 마디에서 오는게 아니라 구조에서 온다는 말이 떠오른다. 잘 짜여진 연결망이 곧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나타내고 극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문제 의식과 주제를 살아 숨쉬게 만든다.



4. 힘을 가진 보조 캐릭터

<오자크> 시즌1에서 주인공 가족이 급히 이사를 가게 되고 이사간 집에서 불청객 아닌 불청객을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 참으로 감탄하면서 봤던 부분이다. 직접 보거나 듣지 않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기발한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테일이 꽉 채워진 보조 캐릭터들이 시즌1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모두의 역할이 분명하고 특히 모두에게 갈등의 라인이 존재한다는 점이 좋다. 결국 주인공의 행동에 이유를 만들어주고 이야기 전체 테마를 살려주는 역할을 잘 수행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여러 작품들에서, 보조 캐릭터는 고사하고 시리즈의 주인공임에도 작동 원리가 엉망으로 세팅되어 '왜 저런 짓을 하지?'라는 의구심만 자아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오자크>에서 보여주는 캐릭터 설계의 세심함은 이토록 어둡고 진절머리 나는 이야기 임에도 아이템이 프로덕션으로 이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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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적 요소만 두고 중언부언 했지만, 스릴러-느와르 색채를 잘 담아낸 로우키 조명과 그린(Green)이 도는 색보정(혹은 필터) 전략,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 등 그 밖의 요소들을 놓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시리즈다. 세 시즌을 더 봐야 하지만 이미 시즌 1은 나로 하여금 모종의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시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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