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발견, 2012/11/06
10월의 마지막 날, 신당창작아케이드 가을축제 개막식 시간인 4시에 딱 맞춰간다는 것이 10분이나 늦고야 말았다. 신당동 중앙시장에는 처음 가보는 거였지만, 다행히도 길을 헤매지는 않았다. 급한 마음에 한 발짝씩 시장이 가까워올수록 흥겨운 음악소리가 점점점 더 가까워졌다. 어머니 아버지들이 부부동반여행을 갔다 오시면 한두개 씩 사오는 추억의 가요집테이프에 수록되어있던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신당창작아케이드의 가을축제 ‘황학동별곡 시장의 소리가 열린 날’은 그렇게 흥겨운 첫인상으로 사람들을 맞았다.
시장내부로 들어 가보니, 시장 상인 분들이 단체로 맞춘 티셔츠를 입고, 노래에 맞춰 간단한 율동을 하면서 공연을 즐기고 계셨다. 매주 황학동노래교실을 맡아 진행해오던 음악선생님의 지휘로 공연은 멋지게 마무리 되었다.
개막무대를 마지막까지 보고, 지상 시장과 지하상가, 창작공간을 고샅고샅 돌아다녀보았다.
지상 시장은 각 가게마다 노점 상인들의 얼굴이 새겨진 간판으로 눈길을 끌었다. 중앙시장 노점 상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자신의 얼굴을 걸어 질 좋은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기획한 재능기부 프로젝트 <얼굴걸고 판다>의 결과물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간판 앞에서 기꺼이 피사체가 되어주시던 상인부터, 끝까지 시크한 태도를 견지하시며 상가에 매진하시던 상인까지-간판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다양한 상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중앙시장 지하에는 횟집들이 많은데, 축제기념으로 회덮밥과 초밥을 할인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상가들과 입주한 작가들의 공간이 한데 어울러져있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횟집이 많은 특성을 살려, 곳곳에 위치한 기둥에 어류들의 그림들을 그려놓았고 상가별로 맞춤 메뉴판을 제작해주는 등, 작가들의 세심한 배려들이 눈에 띄었다.
지하상가를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며, 입주 작가인 도예가 이진희가 중구 및 인근 지역 다문화 가족을 대상으로 진행한 도자교육프로그램의 결과물도 볼 수 있었고, 입주한 작가들의 작품전시와 그들이 직접 들려주는 작품소개도 들을 수 있었다. 지상에 있던 ‘등’ 제작도 노래교실 회원들과 지역주민이 함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지역과 예술이 함께 호흡하게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여실히, 빛나게 드러나고 있었다.
한참 걷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해서, 킹수산이라는 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알타리 무김치를 하시기 전이라 파를 다듬고 계셨는데 앉아도 좋다고 쉬었다가라고 친절하게 말씀해주셨다.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보니, 예술가 양반들이 있어서 좋다고 오늘 사진을 얼마나 찍혔는지 모르겠다며 귀찮아하시는 말투에 뿌듯한 기색이 엿보였다. 짧은 대화가 어색하게 오가는 시간이 20분 남짓 흐르자 아주머니는 귤을 갖다 주시며 먹고 가라고 하셨다. 중앙시장 상인들은 인심도 후했다.
개막식 후 2시간이 지난 오후 6시에 펼쳐진 마지막 무대는 실로 감동이었다.
황학동 소리전수자인 윤매례 할머니의 소리공연이 ‘달’ 이라는 소재로 미디어영상, 무용가, 음악가들과 협업으로 진행된 것인데, 취재진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사진을 제대로 찍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 무대가 감동인 이유는, 시장에 있는 소리꾼 할머니를 찾아내고 할머니의 소리를 다른 예술작업들과 어울리게 만들려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50년 소리인생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잊지 못할 공연이 될 것 같다.
예술이 일상과 교집합이 순간은 의외로 흔치 않다. 특히, 밥벌이의 현장, 삶의 현장을 오롯하게 안고 있는 일터에서 예술을 만나는 건 생경한 일이다. 신당창작아케이드 가을축제는 중앙시장에 있는 그대로의 것을 지키며, 할머니만의 노래를, 상인들의 얼굴을 보다 잘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생활의 터전을 공유하며, 시나브로 쌓인 신뢰와 친밀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행사이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밥벌이 현장에, 누군가의 치열한 경쟁의 공간에 들어가 예술이라는 매개로 말을 거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단선적인 결과물일지언정, 지속적으로 이 작업이 이어진다면 예술과 상인이 함께 만들어낸 문화적 경험으로 축적되고,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예술이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필자는 아르코 소극장 앞에 있는 전광판에 있던 글귀로 답하려 한다.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흥미롭게 하는 것”
삶의 현장에 가깝게, 땀 냄새 풍기는 예술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 어디에나 있게끔 가능하게 하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필자_씨티약국
소개_ 도시에서 건강하게 잘 살기위해서 자가치료제 개발중인 과년한 시골처자. 무상 토익 운동을 진행 중에 있으며 세상을 원망하기 전에 나부터 잘하기위해 꾸준히 행동하고, 글을 쓸 예정임.
신당창작아케이드 홈페이지 바로가기 >>> cafe.naver.com/sdarcade
출처: https://indienbob.tistory.com/639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