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성 난청 발생 1달째
저는 지금 한국에 있습니다. 돌발성 난청 치료를 위해 급하게 귀국을 하였고,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내슈빌에서 만난 이비인후과 의사는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며, 나름의 친절을 베풀어 2차 소견을 원하면 다른 의사를 소개해준다고 했지만 그렇다 해도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서 한국에서의 치료를 결정하게 되었지요. 돌발성 난청 전문 병원이라는 말만 믿고-뭐라도 미국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미리 예약을 했고, 입국한 다음날 바로 병원에 갔어요. 처음 2주간은 두번씩, 최근에는 매주 한번씩 다니면서 왼쪽귀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이미 집중치료 시기는 놓쳤지만, 최선을 다해주고 있는 의사 선생님 덕분에 감각도, 소리도 거의 느낄 수 없는 초 기의 상태보다는 나아졌어요. 그래도 심한 정도의 청력상실에 속하지만, 완전히 잃을 뻔했던 것을 조금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어서, 완전하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기도 해요. 몸이 마음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힘겹게 확인할 뿐이지만요. 보통 세 달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해요. 세 달 안에는 회복할 확률이 그나마 있다고요. 1년이 지나서 회복한 사람도 있고, 영영 청각을 잃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그중에 어떤 사례가 될지는 알 수 없어요.
완전히 들을 수 없는 세상에 적응이 쉽지는 않습니다. 오른쪽 귀는 다행히 정상청력을 유지하고 있어요. 의사선생님 말로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해도 되고, 사람들을 만나도 괜찮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이 많은 식당과 시끄러운 거리와 같이 여러 사람의 말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일은 상당히 곤란합니다. 이런 귀에 적응을 하면서, 일을 지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예전에 했던 일들을 고스란히 해낼 수는 없겠죠, 아마도. 그 문이 닫히고 나면 다른 문이 열릴 거라고 믿고 있습니 다. 정말로,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고 싶어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원인을 찾다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가장 건조한 시점으로 본다면, 100명 중에 하나의 확률로 걸린 병이라고 말할 수 있고, 가장 자책하는 시점으로 보면 면역력이 안 좋아질 만큼 몸도, 마음도 스스로 보살피지 못한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분명 행복한 순간도 있었는데, 힘든 일들이 그 순간 만으로는 견뎌내지 못할 만큼 무거웠던 걸 테지요. 어디에 있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결단을 내릴 순간이 바로 앞에 놓여있어요.
이 와중에도 우습게도 로또 5등이 연속으로 세 번이나 당첨되었습니다. 하하. 꽝이면 그만 사려고 하는데, 자꾸 5등이라서 5천원씩 매주 복권을 사고 있죠. 그리고 이 와중에 마음을 주었던 강아지 두 마리가 파보바이러스에 걸려 죽었어요. 동물병원도 데려가서 수액도 맞게 하고, 약도 챙겨주었는데 결국 생을 다하였습니다. 누렁이는 죽기 전 날에도 제 옆에 가만히 앉아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어요. 조용히 쓰다듬으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었을 텐데, 옆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지고 가슴이 아립니다. 흰둥이는 누렁이처럼 보내지 않으려고 일요일에 동물병원 원장님께 응급으로 전화를 드려 새벽에 시내에 나가 두 번째 수액도 놔주고, 약도 먹였어요. 그러고 나서 3일 뒤에 생을 마쳤습니다.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병이었다는 걸 아마도 알았을 텐데, 얇은 끈이라도 놓지 않으려던 저의 욕심이 흰둥이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후회가 컸습니다. 그렇게 어린 강아지들의 죽음 앞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시골개의 삶이 안타까워서이기도 했고, 각자 다르게 타고난 삶의 시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어찌할 수 없다는 체념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 와중에도 다 큰 자식이 별안간 집에 와서 병원에 다니는데도, 하나도 귀찮지 않다고 말하는 엄마, 어미의 자식 사랑에 뭉클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 컸는데도 아이 같아 보이는 걸까요.
어제의 나를 오늘로 이끌어 가야 하는 매일매일입니다. 하루는 웃고 또 다른 하루는 울고 또 다음날도 울기도 합니다만, 누구의 동정을 받을 것도 없이 살아있는 누구라도 그렇듯 다른 눈물로 웃음으로 만들어가는 날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 또한 나이 들어가는 과정일지 모르지만, 그 자리에 있어보지 않은 이상 어떤 말도 쉽게 건넬 수 없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섣부른 판단과 얕은 위로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말은 점점 어려워지고, 무거워집니다. 어쨌든 힘든 시간은 힘겹게 통과할 수밖에 없지요.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병이 주는 유일한 장점은, 주어진 생을 더 낮은 자리에서 대면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또 내일이 옵니다. 아, 그리고 이 와중에도 잘 먹고 잘 자고 있어요. 아직 만날 약속을 하지 못했지만, 문득문득 생각 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무사하게, 안심하며.
-2017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