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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석 Sep 30. 2024

한 달 후 나에게 쓰는 편지

너는 오늘도 펜을 잡았을까?

 보통 나에게 쓰는 편지는 일 년 후 나에게가 가장 많다. 일 년이면 많은 것이 바뀔 테고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부푼 기대와 설렘을 안고 쓰는 편지는 꿈과 희망 그리고 당찬 포부가 담겨 있다. 원래 나 또한 일 년 후 나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나는 너무 많은 시간들을 지워버렸다. 더 이상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없었다. 그래서 일 년이 아닌 고작 단 한 달 후 나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To. 한 달 후 나에게.


 안녕, 이건 좀 어색하네. 지금 거기 날씨는 가을이니? 겨울이니? 아마 가을이겠지. 잎이 전부 바래진 그곳의 거리가 보고 싶다. 지금 여기는 해와 달로 계절이 나뉘어, 태어나서 이런 계절은 처음 보는 것 같아. 해가 뜨면 여름이었다 지면 가을이라니 어딘가 동화 속 같기도 해. 그래, 항상 나는 속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이렇게 말이 길어져.. 너에게 내가 묻고 싶은 건 음.. 그래.. 너는 아직도 쓰고 있니? 아니, 오늘도 쓰고 있었니?


 어때? 그때는 말이야.. 좀 나아졌을까. 쓰는 게 더 이상 쓴 일이 아니었으면 해. 오늘은 브런치의 첫 시작이야.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한 지 25일 차였는데, 이게 호재인지 악재인지 지금은 분간을 못하겠어. 그때 너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언제나 고팠잖아.


 쓰고 싶어서, 쓴 걸 뱉고 싶어서, 뱉은 걸 지나가는 사람들이 쓱 하고 봐줬으면 싶어서. 꿈은 포기를 못하겠는데 재능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니까 오히려 송곳니가 생기는 기분이야.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순간순간 스치는 작은 기회들이 전부 금동아줄 같다는 착각이 드는 거지.. 이것도 정신병일까. 모르겠네.


 쓰다 보니, 이건 편지가 아니라.. 뭐랄까? 매일 쓰는 일기 같아. 다른 게 있다면 쓰는 공간과 말투가 좀 다르지만 말이야. 몰라 나 오늘 진짜 힘들었어. 동인문학을 위해 카페를 만들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 솔직히 그럴 줄 알았는데.. 항상 내 상상은 너무 디테일해서 현실과 착각을 하게 된단 말이지. 내 상상 속에서는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꿈들이 넘치는 바다였는데, 이건 뭐 시작과 동시에 파산을 당한 기분이야.. 근데 한 달 후 나에게 쓰는 편지를 이렇게 써도 되나? 모르겠다.. 편지 원래 그런 거잖아. 나 힘든 거 쓰는 거. 아닌가? 아무튼. 이런 거 써도 되는 거잖아..  


  아무튼 더 이상 할 말이 없네..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 언제나 내 글쓰기는 이런 거야. 시작과 과정 그리고 그 끝이 전부 다 달라. 마치 오늘 날씨처럼.


 그래도 편지를 받았으면 답장을 해야겠지? 한 달 후에 엄청 쪽팔릴 것 같기는 한데 보고 다시 한 달 전에 나에게 편지를 써 줘 재밌겠다! 이렇게 보니까 참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기 좋아하는 것 같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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