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되지 않을 결심이 필요해

by 파포

(이 글이 브런치 100번째 글이다. 2023년에 시작한 브런치, 한동한 소홀했다 다시 시작한 브런치, 쓰다 보니 100번째 글이다. 스스로 자축하며 글을 남긴다...)


40대 중반이 되며, 직장에서 어느덧 중간지점을 넘어 노땅을 향해 가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이란... 시간은 정말 날아가는 화살과 같이 빠르다. 꼰대를 비난하던 주니어에서, 꼰대가 되기 쉬운 시니어로 향해 가는 길목에 서서, 가끔씩 "내가 꼰대인가?"라는 자문을 던져보는 시점에서, 꼰대가 되지 않을 결심을 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우선, 꼰대가 그렇게 나쁜가? 꼰대라는 레토릭에 묻어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들여다보았다. 비슷한 위치와 역할이지만, 긍정적인 정서들이 담겨있는 용어로는 '멘토', '코치'들이 있을 듯하다. 그러면 꼰대와 멘토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간단하게 아래 표로 정리해 보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위 표에 모두 담겨 있으나, 글로써 가볍게 풀어보겠다.


1. 보는 방향 & 시선

꼰대와 청자는 마주 보고 있다. 꼰대는 청자를 바라본다. 정확히는 내려다본다. 그리고 청자를 거울삼아 자신을 본다. 찬란했던 그 시절의 자신을, 위대한 일화와 무용담 속의 자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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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멘토는 꼰대와 다르다. 마주 보는 방향과 그 시선 끝의 객체가 다르다. 멘토는 멘티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멘티가 바라보는 관심사를 함께 바라본다. 그리고 간혹은 멘티를 바라보지만, 현재의 모습 속에서 가능성의 씨앗을 본다. 상상력을 통해 감추인 꽃술과 피어날 꽃잎들을 본다.


2. 신분 & 대화내용

꼰대는 외부인 신분이다. Player가 아니다. 청자가 참가 중인 게임에 화자인 꼰대는 발을 들이지 않는다. 청자의 게임에 관심을 두는 듯하나, 사실 청자가 하고 있는 게임은, 꼰대가 과거에 참가했었던 영화와 같은 그 게임을 상기시키는 매개물에 불과하다. 과거의 향수에 취한 꼰대는 말한다. "라떼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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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멘토는 멘토링을 하는 순간 멘티의 게임에 함께 입장한다. 물론 비슷한 종류의 게임을 미리 더 많이 해본 입장에서 멘토 역시 본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멘토는 자신의 경험이 '참고의견'의 하나이며, 결정과 그에 대한 책임은 게임의 Main Player인 멘토에게 있음을 알고 있다.


3. 소통시기 & 방식

꼰대와 청자의 대화는 One way이다. 대화라기보다는, "정답"을 아는 자로부터의 일방적인 체험담 전수이다. 소통은 청자의 요청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귀를 닫을 수는 없으나, 머리와 마음은 이미 닫혀있는 청자를 향해, 꼰대는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신이자 지고한 인간이었던 예수께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셨는데, 꼰대는 누가 듣건 말건 개의치 않고 입을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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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멘토와 멘티의 대화는 쌍방향이다. 멘토는 멘티의 상황, 감정에 주목하고, 본인의 체험에 기반한 조언을 맞춤형으로 제시한다. 또한 정답으로서가 아니라, 멘티가 결정하기 위한 Option이자, 참고의견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고, 청자의 요청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시대와 상황, 그리고 사람이 다름을 멘토는 알고 있다. 멘토가 찾은 답이 유일한 정답이 아님을, 그리고 지혜는 말로써 온전히 전달될 수 없고, 체험을 통해 직접 깨달아야 함을 멘토는 알고 있다.


4. 대화의 목적

가장 근본적으로 꼰대와 멘토는 대화의 목적이 다르다. 꼰대는 상대방의 어깨를 밟고 본인이 올라서고, 멘토는 본인의 어깨를 내밀어 상대방이 올라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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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한 자아인식을 가진 꼰대가 일장연설을 하는 목적은, 겉으로는 조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만족이다. 인생의 풍파 속에서 살아남은 무용담이며, 여러 가지 선택의 순간에서 죽어버린 가능성들을 버리고 선택하여 다다른 오늘날의 모습의 합리화이다. 꼰대에게 자신이 겪은 경험과 자신은 매우 커 보이며, 청자가 직면한 문제와 청자는 한없이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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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올바른 멘토, 참 스승과 같은 이들의 대화는 멘티를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다. 자신이 헤쳐온 것과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멘티가 그만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근본적으로 내면이 단단해지고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바람, 그것이 멘토링의 목적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분들 중에, 생각나는 꼰대얼굴이 있을 것이다.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은 안 해 봤는가? "혹시 누군가 꼰대를 떠올릴 때, 내 얼굴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나는 가끔 한다. 그리고 "그럴 리가 없어!"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없게 만드는 순간들도 떠올린다.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은 며느리가, 나중에 구박하는 시어머니가 된다고 한다.(물론 다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꼰대질을 당한 청년이, 나중에 꼰대질을 하는 꼰대가 된다. 그리고 왕꼰대질을 하면서도 본인이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한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꼰대가 되지 않을 결심"이 필요하다.

[꼰대 Self Checklist]

후배를 보며, "라떼는 말이야..."로 이어지는 일장연설을 최근에 한 적이 있다.

후배와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내 얘기(주로 과거의 내 경험담)를 하고 있다.

리더로서, 나는 듣기보다 주로 말하는 편이다.

최근에 같이 식사한 후배를 떠올려볼 때, 후배가 한 이야기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제시한 의견을 후배가 선택하지 않았을 때, 화가 나거나, 답답하거나, 안타깝다.

나를 꼰대로 생각할 만한 후배가 있다.

[꼰대가 되지 않을 결심]

'과거 회상씬'을 상영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올 때, 잠시 멈추자. 그리고 두 가지만 물어보자.
"혹시 내가 전에 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나?", 그리고 또 물어보자. "나도 비슷한 경험 했었는데, 혹시 들어볼래?"

'내가 하고 싶은 말' 보다 '듣는 이가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에 주목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답변보다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우선 듣고, 같이 고민해 주자. 말은 줄이고 귀는 늘리자. '정답'을 알려주려 하지 말자.

스스로 자주 마음에 새기자. "꼰대가 되지 말자", "꼰대질 하지 말자."



쉬운 비교를 위해 모든 부정적인 내용은 "꼰대"에 담았고, 모든 긍정적인 내용은 "멘토"에 담아서 이분법적으로 비교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어떤 일이, 어떤 사람이 그리 단순하겠는가? 꼰대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몇 가지 꼰대요소만 치워버리면, 훌륭한 멘토가 될 사람들도 있다. 꼰대보다 존경받는 멘토가 많아질 때, 대한민국의 직장생활은 보다 즐거워질 것이다. 즐거운 직장인을 위하여,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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