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가시

(인간관계 편 : 마음의 가시를 박지 말자.)

by 파포

직장생활의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되고,

직장생활의 기쁨도 인간관계에서 온다.


오늘의 이야기는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분노와 미움의 감정을

나의 뇌에서 빼내자. 빼내는 방법은 용서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용서라도 하자. 일방적인 용서라도 하자. 도저히 안되면 꿈속에서라도 용서하자.


나는 주니어 시절에 나를 서운하게 했던 팀장님을 몇 년 후 꿈속에서 용서한 적이 있다.




“박 과장, 출장 가서 잘 놀다 왔어? 너 없는 동안 우리는 엄청 뺑이 쳤는데~ 잘 놀다 왔지?”


가벼운 대화의 한마디 문장은 가시가 되어, 내 마음을 찔렀고, 한동안 내 마음에 박혀 있었다. 몇 년 후 꿈속에서 그를 용서하고, 마음속의 가시를 빼어내기 전까지.


당시에 나는 애플에 납품할 신제품 양산 프로젝트의 HR업무 DRI였다. DRI란 Direct Responsible Individual의 줄임말로, 한마디로 애플 프로젝트의 해당 업무 책임자이다. 나는 3개월 단위로 장기 해외출장을 갔었다. 당시의 나의 업무목표는 중국 공장에서 엔지니어 200명, 현장직 3000명 신규채용 및 교육, 주어진 기간은 단 3개월. 당시 중국경제는 호황이었고, 인재들이 기업을 골라서 가는 상황이라 인재유치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애플과 같이 일해본 사람은 안다, 애플을 갑으로 만났을 때, 을로서 겪는 어려움을… 신형 아이폰에 들어갈 신제품을 단기간이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은 “사람이 없어서 공장이 안 돌아간다”는 상상하기 싫은 한 문장. 당시 밤낮없이, 주말 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사람을 뽑았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다른 중국회사 기숙사에 가서 채용 전단지를 돌리기까지 했으니…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글을 쓰며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건, 아직 마음에 가시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겠지. 참고로 당시 3개월 단위로 근 1년간 장기출장을 갔는데, 당시 첫째는 4살, 둘째는 2살이었고, 아내는 육아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는 내가 주재원으로 파견예정이었으나, 비용절감을 위해 주재원 포지션을 줄이면서 갑자기 집에 가족들을 남기고 홀로 장기출장을 간 상황.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다.


결론적으로 당시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성하고 난 복귀하였다. 그때 당시 팀장에게 들었던 첫마디가 내 마음에 가시가 된 바로 그 문장이었다. "출장 가서 잘 놀다 왔지? 너 없는 동안 우린 뺑이 쳤는데..."

……

한마디 말에서 나와 내 마음에 박힌 가시는 오랜 기간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이직을 결심하고, 합격하고, 고민 끝에 그냥 남기까지의 일련의 사건들도 있었다. 그로부터 일정기간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른 사업부로 부서를 옮겨서 근무 중인 어느 날 밤에, 꿈속에서 당시의 팀장을 만났다. 당시 팀장이 자신의 딸의 손을 잡고 길을 지나가다 나를 마주쳤고, 그날 그 팀장은 꿈속에서 나에게 사과를 하였다. “박 과장 미안해. 나도 그 당시에 너무 힘들어서 내가 박 과장을 잘 못 챙겼네.” 밤중에 꿈에서 깨어났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처량히 울며, 당시 팀장을 용서하기로 했다.


이후 회사의 분할로 그 팀장과 나는 다른 회사 직원이 되었고, 훗날 내가 주재원 파견 근무 중에 잠시 한국에 출장온 상황에서 우연히 당시 팀장과 석식자리가 있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지는 않았으나, 내 마음에 가시가 없음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다만 가시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점점 작아지고 있다.




[잠시 곁가지의 이야기_자화自话]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전하는 말.

“그래, 고생 많았다.”

가볍게 읊조리는 말이지만, 내가 띄운 이 말이 시공간을 건너 10여 년 전의 가엽은 나에게 닿길 바란다.

내 안에 아직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날의 나의 자아에게 닿길 바란다.


그리고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전하는 말.

“고마워, 지금 넌 잘 살고 있니?”

가볍게 화답한다. 시공간을 넘어, 10여 년이 지나 2036년을 살고 있을 미래의 나에게 닿길 바라며…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난 자화(自话)를 할 줄 안다.

과거의 나와, 또 미래의 나와의 대화.

그리고 내 안에 각인된 여러 목소리들과의 대화.

그리고 내 안에 인지된 신과의 대화




이 글을 읽는 그대여, 나의 스토리를 읽으며 떠오르는 얼굴은 누구인가? 그의 입에서 나와서 그대의 마음에 박혀 있는 가시와 같은 문장은 무어인가? 가시를 마음에 품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가시를 빼내어 본 사람으로서 그대에게 제안한다.


"용서하라.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용서하라. 일방적인, 이기적인 용서여도 좋다. 그만 마음에서 가시를 빼내자."




사람의 눈은 안보다는 바깥을 향한다. 그래서 우리의 관점은 대개 ‘내가 바라보는 상대방의 행동과 나의 반응’이다. 그래서 반대로 뒤집어서 ‘나의 행동과 상대방의 반응’으로의 관점의 전환은, 의지를 가지고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하더라도 쉽지가 않다.


위계서열이 명확한 직장에서, 특히 상하 간의 수직문화가 엄격한 한국의 직장에서, 대개 가해자는 상사이고, 피해자는 부하직원이다. Senior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나에게는 윗사람보다, 내 조직에 소속된 구성원이 많다. 이제는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문장이 가시가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박히지는 않았는지… 만약이라도 염려가 되는 상황이라면, 찾아가서 살펴보고 사과하자. 나처럼 오랜 기간 마음에 담아두고 혼자 해소하게 두지 말자.


이 글 초반부의 나의 이야기를 보면서 대부분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의식적으로 관점을 뒤집어야 한다. Senior로서 내가 가해자는 아닌지, 내가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 한다. Senior인 그대에게 제안한다. 늘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누군가의 마음에 가시를 박지 않도록 말을 조심하자."


오늘의 이야기는 두 가지 결론을 가지고 있다.

즐거운 직장인이 되기 위하여 모두 함께 마음을 살피자.

"마음의 가시를 빼내자"

그리고 "마음에 가시를 빼주자"


즐거운 직장인 2부는 Senior로 넘어가는 시각에서의 글이다. Junior 시각의 글은 아래 즐거운 직장인 1부에 담겨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paphorist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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