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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Feb 17. 2024

아우성쳤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오색깃발이 몸부림쳤다. 동아줄에 꽁꽁 묶인 깃발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씨줄과 날줄이 풀려 찢기고 있었다. 끝없는 고원 그 황량한 성채에 알록달록 꽃으로 핀 말씀이었다. 간절하게 빌고 빌었던 티베트의 염원이었다.

바람 사나운 고원의 고갯마루 돌무더기엔 어김없이 타르초가 펄럭였다. 신에게 닿기를 염원하는 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토닥토닥 어깨를 토닥여주듯 붓다의 오색 경전이 펄럭거렸다. 그것은  만년설 쌓인 설산의 이정표였고 억 겁을 뛰어넘는 세상의 진리였다. 바람이 불면 잔뜩 드러누웠던 타르초가 벌떡 일어나 펄럭였다. 길을 잃지 마라 등대 불빛처럼 깜빡거렸다.

너에게 닿지 못한 나의 말들도 바람이 불 때마다 깃발처럼 일어나 아우성쳤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은 울먹울먹 울음이 됐고 서러워 발버둥 치며 소란을 떨는지도 모른다. 길을 잃은 말들이 천지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떤 놈은 아까시나무 뾰족한 가시에 찔려 벗어나지 못했고, 또 어떤 놈은 가시덤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목청만 높였다. 나무 꼭대기에 걸린 놈은 바지랑대에 매달린 빨래처럼 종일 바람에 펄럭였다.

날마다 찾아와 까악 까악 우는 까치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던 마음이 역시 그랬어로 끝을 맺는 허무함이었다. 귀 쫑긋 세웠다가도 가슴 쓸리어내리는 한숨과도 같았다. 그러면 그렇지 뭐.... 헛된 말들이 세상을 떠돌다 여기저기 깃발처럼 나부꼈다. 빨래터 흙무덤을 빠져나오는 수다였다. 간절함을 매달았고 소원의 마음 잔뜩 끼워 넣었지만 마침내 가 닿지 못하는 것들은 한낱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여기저기 매달린 말들이 한껏 아우성쳤다. 창가의 까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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