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로 시작되는 첫 연에서 대나무의 처지를 설명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소외된 개체로서의 대나무다.
'곧기는 누가 시키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두 번째 연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곧은 성품과 스스로를 비워 욕심 없음을 이야기한다. 세상 풍파에 초연한 비현실성을 강조해 대나무의 강직함을 고조시키고 자연스레 결말을 완성한다.
'그리하고도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결론짓는다. 곤궁한 처지임에도 스스로 올곧아 청빈한 대나무의 변하지 않는 성품에 그를 좋아한다 선언을 한다. 그것은 중앙 정치에서 밀려난 자신의 처지에 빗댄 선언이기도 하다. 비록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처지가 되었지만 스스로 강직하고 四時에 푸르러 변함없음을 세상에 천명한다. 선비의 지조를 노래한 오우가는 그래서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윤선도 자신의 바람이다.
세간의 비아냥과 조롱을 뒤로하고 지국총지국총 노 저어 담을 쌓던 노년의 선비는 다섯 벗을 곁에 두고 스스로 외로운 산으로 남았다.
내가 두른 담장인지 세상이 두른 담장 밖으로 밀려난 것인지 때로 궁금했지만 고개 한 번 갸우뚱하는 것으로 그만이다. 따져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 하나도 없어 그렇다. 내 안에 머무는 것들 말고는 손 내밀어 잡을 손도 없다.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도 없으니 입만 아프다. 손목 뻐근하게 글을 써봤자 반갑게 받아 드는 손도 없다. 말은 끊기고 글은 뭉개져서 알아볼 수도 없다. 마음에 담은 것들과 무릎을 맞대고 놀 수밖에는 없다. 당장에 담장을 허물고 사립문을 열어젖힌다고 해서 끊긴 걸음이 우르르 이어질 것도 없다. 지나던 객은 또 이런 말을 툭 뱉을지도 모르겠다.
"어라? 여기 담장이 있었네. 근데, 멀쩡한 담장은 왜 허물었지?"
상처에 왕소금 한 줌 뿌리려는가. 염장을 지르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무심히 내뱉는 말이 돌팔매로 날아들어서 그렇다. 그것도 다 마음을 닦지 못한 탓이겠지만 날아드는 돌멩이는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