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립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그대는 잠들었을 밤입니다. 산제비 넘나들던 그 길에도 인적은 끊기고, 올빼미 한 마리 허기진 배를 달래며 눈을 번뜩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잠들어 고요한 시간이 좋아서 나 홀로 깨었구나 하는 서운한 마음은 없습니다. 상상을 넘어 공상의 시간을 헤맬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시리게 푸른 하늘에 점점이 하얀 구름으로 떠돌다가 이내 소낙비로 내려도 좋았습니다. 질투로 투덜대며 갠 하늘에 무지개로 빛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한적한 숲 맑은 웅덩이에 혼인색 화려하게 아양 떠는 원앙이어도 좋았습니다. 봄날의 짧은 볕에 순간으로 터지는 불꽃이라면 타다 재로 남아도 좋았습니다.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한다지만 사랑하면 늘어나는 것 중 제일은 궁금해서 묻게 되는 말들입니다.
오늘은 어땠어? 춥지는 않았고? 그랬구나! 맞장구도 섞어가며 묻게 됩니다. 많은 질문의 끝에는 결국 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제일 궁금하고 확인받고 싶은 말이겠죠. 어쩌면 이 아니라 그게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안달복달 네가 좋은데 너는 어떤지 묻게 되고,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입술은 근질근질 애가 타지요.
"사랑해 자기야! 자기도 나 사랑해?"
묻게 되는 거죠. 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백하고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사랑입니다.
더는 묻지 않아요. '사랑해요, 그대!' 고백의 말은 귀가 따갑도록 하겠지만 더는 확인받고 싶어서 안달하지는 않을 게요.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는 말을 듣고 싶어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애가 탔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더는 물을 이유가 없습니다. 묻는 말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떨굴 판입니다.
얘기 끝에 그대가 그랬습니다.
"분명 내 맘인데, 네가 흔들어서 이젠, 니 맘인 듯 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더 흥분되고 떨리는 고백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더는 황홀한 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을 얻은 기분입니다. 아니, 짧은 그 말이 세상이었습니다. 온통 핑크빛 세상이 펼쳐졌지요. 분홍 빛 복숭아꽃이 피고, 바람결엔 연분홍 치마가 나부꼈습니다.
나뭇잎 하나 주웠습니다. 이리 쓸리고 저리 날리던 나뭇잎입니다. 먼지 뽀얗게 앉아 신작로 옆 작은 꽃마당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박태기나무 이파립니다. 4월이 되면 보라색 꽃들이 가지마다 무리 지어 피는 꽃인데 밥 티기를 닮았다고 해서 박태기나무라고 합니다. 꽃말이 우정이라고 했습니다. 우정이란 말에 백아와 종자기가 떠올랐습니다. 백아의 거문고는 종자기의 지음으로 꽃을 피우고, 때로 폭풍우로 휘몰아치다가 결국은 종자기와 함께 잠들었다지요. 백아를 백아로 만든 건 종자기의 마음입니다. 백아를 알아본 종자기의 귀가 거문고의 현을 춤추게 했습니다.
"분명 내 맘인데, 네가 흔들어서 이젠, 니 맘인 듯 해"
나는 네 마음을 보고, 너는 내 마음을 보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마른 나뭇잎에 하트 하나 선명하게 뚫렸습니다. 너와 나 한데 묶여 이파리 하나로 남았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