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쉰다섯 래춘 씨_03

by 이봄

새벽이 막 물러난 시간부터 책상에 앉아 남자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작은 화면에 의지해 지난 글들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은 따갑고, 침침했지만 노트북은 맛이 갔으므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괜찮은 노트북을 새로이 장만하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백수인 처지를 생각하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을 열어 글을 읽었다. 읽는다는 것보다는 훑어보고 있었다고 하는 게 정확한 말이었다. 이 년이 지나고 삼 년, 사 년도 훌쩍 지난 글들이었다. 개나리 피는 봄도 있었고, 낙엽 뒹구는 가을도 있었다. 팔자에도 없는 섬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갈매기를 부르기도 했고, 낙향의 쓰라림에다 왕소금을 치던 이별도 있었다. 아, 그때도 이별에 아파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구나! 새삼스레 지난날이 떠올라 싱겁게 웃었다. 어찌 보면 금전운만 없는 게 아니라 여자도 인생에 끼어들 복이 없었구나 생각하니 어쩐지 입맛이 씁쓸한 남자였다. 아니지, 많지는 않았지만 굽이마다 끼어들었던 인연은 몇이나 있었다.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하고 놓치고, 놓아버린 인연이라 아쉽고 씁쓸할 따름이었다. 곁눈질이야 본능처럼 돌아가는 사내들의 특성이라지만 사실 어떤 놈이 많은 인연을 꿈꿀까. 그저 주례사에 단골로 등장하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손 맞잡고 살았으면 하는 것도 본능일 터였다.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왁자지껄 소란스럽던 날들이 있었는가 하면 몇 날 며칠이고 다물었던 입에선 곰팡이가 피기도 했었다. 기억의 한계를 넘나드는 일들이 하나하나 저장된 공간이었다. 시간만 흘렀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계절의 바뀜에 감정을 싣고 있었다.

이별이 주는 아픔은 계절을 가리지도 않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렇게 옅어지지도 않았다. 다만 찢어진 상처에 새살이 돋고 깊은 옹이가 파였을 뿐,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아픔은 여전히 쓰리고 따가웠다. 개나리가 지천이던 봄날에 시작된 인연은 몇 번의 계절이 바뀌던 가을에 떠났다. 떠난 그와는 무관하게 계절은 돌고 돌았다. 개나리가 그때처럼 흐드러지게 피는 날에는 어김없이 가슴을 콕콕 찌르는 기억들이 노랗게 피었다. 부러 외면하며 지나치려던 시간이었지만 몸이 기억을 했고, 가슴이 요란스럽게 반응을 했다. 게다가 뭔 놈의 개나리는 없는 곳이 없었다. 마을 어귀에서 피기 시작한 개나리꽃은 온 마을이 노랗게 지쳐 잠이 들 때까지 지겹도록 피었다. 병아리 떼 삐약대며 나들이를 가는 유치원 통학버스에도 피었고, 재잘재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학교 담장마다 떼로 몰려들며 피기도 했다. 하늘은 노란 석양으로 물들었고 석양에 흠씬 두들겨 맞은 남자는 누렇게 얼굴이 떴다. 다시 돌아오는 계절은 진저리 치게 집요하고 무서웠다. 그렇지만 무섭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었다. 무방비로 노출된 마음만 퍼런 멍울이 맺혔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는 크기와 상관없이 몇 년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만 같이 온갖 삶의 질곡이 고개를 쳐들었다. 아픈 기억을 들춰내는 게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주는 치유는 아픔마저도 반갑게 맞이하게 했다. 그게 좋아서 남자는 가끔 오래된 글을 들춰보고는 했다.


키 큰 미루나무 몇 그루 군부대의 철조망을 따라 서 있었고, 신작로 양편으로는 하얀 은사시나무가 줄지어 자랐다. 정수리에 햇살 이글거리면 은사시나무 그림자는 어김없이 동그란 모양으로 바둑돌 놓이듯 점점이 놓였다. 그건 마치 개울에 놓여있던 징검다리와도 같았다. 하굣길의 꼬맹이들 서넛이 들어가 땀을 식히기에도 충분한 크기여서 손에 들려있던 가방을 내려놓고는 까르르까르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흙바닥에 그림도 그리고 아까시나무 이파리 줄기를 뜯어다가 마음에 두었던 계집애를 떠올리며, 이파리 하나씩 떼어내며 '좋아한다, 싫어한다' 이파리 점을 치기도 했다. 그것도 지겹다 싶으면 동그란 자갈 몇 개를 고르고 흙바닥에 변형된 장기판을 그렸다. 뭐라 부르던 이름이 분명 있었는데 이름은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는다. 장기처럼 상대방의 말을 잡는 놀이였다. 그렇게 놀이에 빠져 그늘 섬 하나를 옮겨가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중천에 떴던 해가 서산에 기울어서야 겨우 먼지 이는 개천을 벗어나고는 했었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뜸하기는 했지만 가끔 서울을 오가는 완행버스가 지나갔고, 군용 트럭이 줄지어서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숨을 참아가며 흙먼지가 날아가기를 기다려야만 했었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야 금방 사라졌지만, 바람이 없는 날이면 뽀얀 먼지를 꼬박 뒤집어써야만 했는데도 그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섬에서 섬은 멀기만 했고 해 걸음은 빠르기도 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겨우 그늘에서 벗어나 각자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굴뚝에선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을엔 밥 냄새가 구수하게 들어차는 시간이었다.

커피를 홀짝거리다 밖으로 나온 남자는 담배를 한 대 피우다 말고 그림자를 찍었다. 꼬맹이들 흙바닥에 주저앉아 웃고 있었다. 배가 고팠던지 옆에는 껍데기를 벗겨 반쯤 씹어먹던 무가 놓여있었다. 시퍼런 무청을 비틀어 잘라내고 입으로 무의 머리를 한 입 잘라내면 두꺼운 껍질은 잘도 벗겨졌다. 엄지손톱을 무의 속살과 껍데기 사이에 밀어 넣고 벗기는 재미가 있었다. 길바닥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집으로 걸음을 옮길 때쯤이면 출출하기도 했고, 목도 말랐다. 길옆에 있는 밭에서 잘 자란 무 하나를 뽑아 들면 출출하던 배도 달랠 수 있었고, 갈증으로 타던 목도 축일 수 있었다. 길옆에 심은 무 한 고랑은 그래서 늘 꼬맹이들의 차지였고, 무밭의 주인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각박하지 않던 시절에 참외며 수박 따위의 서리는 성장통 같은 과정이었고 놀이기도 했었다.

며칠 전 남자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남자가 아프기 전까지 자주 글을 올리고, 일 년에 한 번뿐이었지만 꾸던 꿈에 도전장을 내밀던, 글쓰기 플랫폼에서 온 공지의 글이었다. 내용을 되짚자면 이랬다. '작가의 꿈을 도와드리는 ○○입니다. 아직 작가 등록이 안 된 분이라면 심사에 며칠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작가 신청을 서두르시고, 이미 활동 중인 작가라면 미리미리 공모전을 대비해 작품을 준비할 것과 자세한 공모 일정은 9월 중으로 다시 안내를 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시상내역이며, 응모 조건 등 대략의 공모전에 대한 설명이 첨부된 문자였다. 남자는 이미 몇 번의 도전이 있었고, 그때마다 쓴 잔을 들어야만 했다. 꼭 될 거야 하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던 게 아니어서 낙선의 충격이 크지도 않았다. 낙선의 충격이란 말을 쓰고 보니 정말 대단한 뭐라도 기대한 듯한 뉘앙스가 들어서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다. 뭐랄까? 남자에게 글을 쓴다는 건 일종의 현실 도피처이기도 했고,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기도 했다. 꿈 하나 품지 않는다면 팍팍한 현실을 고개 들고 건널 자신이 없었고, 부끄러운 민낯을 백주대낮에 까발리는 것만 같아서이기도 했다. 그나마 비록 현실의 내가 이렇듯 초라하다만 그래도 난 꿈을 놓지 않고 살아!' 하는 일종의 자기변명이었다. 그렇지만 재주가 메주라서 그랬는지 번번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어쩌면 요번이 아니면 다음은 없어!' 하는 절박함이 없어서 일 수도 있었다. 설렁설렁하는 식으로 통과될 수 있는 공모전이라면 이미 도전할 의미도 없을 테고 말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며칠 전 받았던 공모전에 관한 안내 문자가 떠올라 전에 써두었던 글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몇 편의 글을 읽다가 얼굴이 화끈거려서 화면을 닫았다. 내용이나 형식에 아무런 제약도 없었고, 최소한의 작품 편 수만 채우면 된다고 했지만, 다시 꺼낸 글은 조악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조미료만 듬뿍 친 유치 짬뽕이 벌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재료는 오간데 없고 화학조미료를 아낌없이 투척한 국물에다 몇 년은 말라비틀어진 대파가 고명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먹거나 말거나는 손님의 자유지만 이미 주문은 했으므로 계산은 똑 부러지게 하셔야만 합니다 하는, 망해가는 중국집이 거기에 버티고 있었다. 할 말을 잃었다. 그렇지만 염치도 없이 다시 도전장을 내밀어 봐야지 하는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백인백색이라고 사람마다 각자의 기질이 있었고 좋아하는 게 따로 있었다. 누구는 새로운 모델의 차가 출시되면 타던 차를 바꿀 생각에 골몰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새 핸드폰이 나오면 바꾸지 못해 안달을 했다. 남자도 그렇게 좋아하고 집착하는 게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았다. 가끔 들르게 되는 문구점에 가면 볼펜이나 칼 같은 것에 시선을 빼앗겼고, 좋은 종이를 보면 촉감이며 재질이 어떤지 일일이 다 확인하고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오늘은 볼펜이나 하나 사야겠다며 들렀던 남자의 손에는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이 잔뜩 들려있게 마련이었다. 탐을 내는 게 문구류만은 아니었다. 꼭 읽고 싶은 책 한 권 사야지 했다가도 주머니 사정이 허락만 한다면 몇 권의 책을 기어코 더 집어 들어야만 서점을 나올 수 있었다. 글씨를 쓸 때 유독 필기감이 좋은 녀석들이 있었다. 종이 위에서 미끄러지듯 가볍고 깔끔하게 글씨가 써지는 그 순간이 좋았다. 밤을 꼴딱 새워가며 읽는 책은 그 어떤 노래보다도 더 감미로운 리듬이 숨어있었고, 숨은 리듬을 찾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남자는 꿈을 꿨다. 나도 책 한 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작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한 대 만으로도, 한동안 안개 낀 도로에 서 있는 것만 같았던 시절에도 좀처럼 떨쳐내지 못했던 그늘 섬이 있었듯, 늘그막에도 버리지 못하는 그늘 섬이 있게 마련이었고, 남자에게 글을 쓴다는 게 그랬다. 급하게 눈대중으로 골라 입은 세탁소의 양복처럼 들판에 팔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꼴일지언정 놓을 수 없는 꿈이라고, 바득바득 우격다짐을 하고, 회유도 하면서 몇 편의 글을 읽다가 반쯤 먹다 남은 꼬맹이의 무를 집어 들었다. 새파란 무청이 시들어 널브러져 있었다. 뿌리 쪽부터 베어 먹은 무는 한 뼘쯤 되는 대가리에 초록의 띠를 두르고 있었다.

"고 녀석 제법인데. 대가리 쪽이 맵다는 것도 알고 있었네."

초록 껍데기를 벗겨내고 크게 한 입 베어 물고는 게걸스럽게 씹어먹었다. 역시나 알싸하게 매웠지만 이가 시리게 차가운 냉수를 마시듯 청량하고, 씹는 소리는 또 얼마나 아삭하던지 막힌 귓구멍을 뚫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 떨어지면 또 어때? 어차피 쓰는 재미가 어딘데? 게다가 기다리는 재미는 또 어떻고?"

남자는 곱게 간 먹물을 잔뜩 먹이고 붓을 들었다. 제법 비장함을 품고서 출사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늘 꿈꾸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