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등에 불 밝히고

by 이봄

모기가 극성을 떨면 여름이었다. 귓가를 맴돌며 앵앵거리는 통에 불면의 밤을 보내야만 했다. 마당 복판에다 모깃불을 지폈다. 해지기 전이면 으레 생쑥을 한 아름 베어다가 마당 구석에 두었다가 저녁 밥상이 차려질 때쯤이면 마른 나뭇가지 불쏘시개로 깔고 불을 붙였다. 마르지 않은 생쑥이 타면서 연기를 뿜어냈다. 매캐한 연기에 쫓겨난다고 했고 쑥 타는 냄새가 좋아 연기를 좇아간다고도 했다. 뭐가 됐든 극성스러운 모기만 쫓아낼 수 있다면 눈물 콧물 흘려도 상관이 없었다. 저녁이면 그래서 조그만 산골마을은 모깃불 하얀 연기로 자욱했다. 밥 짓는 연기보다도 모깃불 연기가 더 심할 정도였다. 그렇게 모깃불을 지펴도 잠깐의 방심을 틈타 어김없이 달려들었다. 문이란 문은 모두 걸어 잠그고 살 수도 없는 여름은 모기가 극성을 떨었다. 오죽하면 싱싱한 푸를 배 터지게 먹으면서도 살이 오르지 않기는 소들도 마찬가지였다. 긴 꼬리를 채찍처럼 휘젓다 보면 날은 훤하게 밝았고 어디 하나 멀쩡한 곳 없이 모기에게 물어뜯긴 소는 퀭한 몰골로 음매음매 울었다. 외양간이며 집 주변을 빙빙 돌아가며 빠짐없이 소독약을 뿌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날이 훤할 때는 모기란 녀석들도 잠에 곯아떨어져서 견딜만했지만, 해가 저물고 스멀스멀 어둠이 고개를 들면 모기들의 세상이었다. 눈치를 보지도 않았고, 너무도 뻔뻔하고 대담하게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살이 드러난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하지 않았다. 팔뚝이며 종아리를 가리지 않았고, 벌겋게 눈을 뜨고 있음에도 손등에 내려앉아 주둥이를 꽂았다. 염치도 없었고 눈치도 없었다. 간이 배 밖으로 삐져나왔는지 도무지 겁도 없었다. 배가 고파서 더는 참을 수가 없으니 해볼 테면 해봐라 하는 식이었다. 강짜를 부려도 정도껏 부려야 목숨을 부지하는 것인데 도를 넘은 강짜는 화를 불렀다. 어찌나 피를 빨았던지 통통하게 몸집을 불린 모기는 멀리 날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두어 발자국 떨어진 벽에 매달리거나 기둥에 앉았다. 침을 바르고 손톱으로 물린 부위를 꾹꾹 눌러도 봤지만 한 번 물린 곳은 가려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벅벅 소리 나게 긁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잔뜩 독기 오른 눈으로 방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이대로는 잠을 청할 수도 없었고, 이대로 살려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미처 소화되지 않은 피는 굳지 않아 붉었다. 손바닥을 파리채처럼 활짝 펴고서 힘껏 내리치면 유혈이 낭자했다. 바람벽에 붙어있던 모기는 선명하고도 강열한 최후를 벽화처럼 남겼다. 적당하다 라는 말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말이다. 선을 넘지 않는 적당함이 있어야 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기다림을 알아야 했다. 오늘만 날이 아닌 것처럼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거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었다. 손만 뻗으면 잡힐 거리에 앉아 요행을 바란 모기는 살아남지 못했다. 모기는 죽어 알을 남겨야만 했는데 붉은 피 꽃처럼 피워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밥상을 물리면 모기장을 펼치고 이부자리를 폈다. 천장에 매달린 등불도 껐다. 여닫이 문이 달린 텔레비전의 불빛에 기대 시시껄렁한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갈무리했다. 농사일로 고단한 어른들은 비스듬히 모로 누웠다가 이내 코를 골았다. 맞바람이 치게 열어둔 방문을 비집고 산바람이 불었다. 한낮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무더위를 식히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모기장 속으로 파고든 꼬맹이들은 허연 배를 들어내고서 웃고 떠들었다. 변변한 선풍기 하나가 없었지만 여름밤은 시원했다. 열대야라는 말이 있는지도 몰랐다. 당연한 것들과 어울렁 더울렁 기대 살았다. 햇살 따가운 낮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고,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우물물 한 바가지 뒤집어쓰는 것으로 더위를 쫓아냈다. 모기가 달려들고 오금에 땀띠가 돋는 것은 여름이라 그런 거였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발장난을 치고 있으면 담장을 넘어온 반딧불이가 황닥불에서 떨어져 나온 불티처럼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다. 깜빡깜빡 일정한 간격으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면서 장독대를 돌아 대청마루를 통해 뒤란으로 빠져나갔다. 처음엔 서너 마리 마당을 날아다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손으로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고왔다. 꼬리 끝에 팥알만 한 불빛 하나를 매달고 반딧불이가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었다. 버드나무 우거진 개울을 따라 한 무리가 날았고, 갈참나무 빽빽한 뒷산을 옮겨가며 날았다. 이따금씩 불어 가는 산바람에 몸을 싣고 마을을 맴돌기도 했다. 때로는 혀를 날름거리는 불꽃처럼 길게 이어져 밤하늘에 솟구치다가 이내 우수수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숨죽여 지켜보고 있으면 어둠의 장막에 한바탕 춤사위로 뛰노는 것만 같았다.

몸뚱이에 온통 먹칠을 한 반딧불이는 밤이라야 예쁜 녀석이었다. 머리와 가슴을 나누는 목덜미에 빨간 줄이 하나 덧칠해져 있을 뿐, 예쁜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고 길쭉한 녀석은 머리와 몸뚱이를 구분 짓지 않고 온통 먹물을 뒤집어썼다. 나비 같은 화려함도 없었고 무당벌레처럼 귀엽지도 않았다. 볼품없는 벌레였다. 낮에는 가뜩이나 납작한 몸뚱이를 납작 엎드려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축축한 풀숲에 몸을 숨기고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가 어둠이 내리면 비로소 하늘에 날아올라 별이 되었다. 인적 끊긴 신작로를 따라 바람이 불면 별들은 우수수 쏟아졌다. 바람에 몰려다니는 아이들처럼 수다스러웠고,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여름밤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달 없는 밤이면 하늘 가득 별이 떴고 노래를 흥얼거리듯 반딧불이가 몰려다녔다. 덩달아 소년은 반딧불이를 좇아다니기에 바빴다. 커다란 호박 꽃송이 하나 질끈 잘라 손에 들고서 신작로를 뛰었다. 잡힐 듯 말 듯 반딧불이가 날면 마치 춤이라도 추듯 손을 뻗어 허공을 휘저으며 뛰어다녔다. 하나 둘 셋.... 별을 움켜잡아 호박꽃 속에 가두면 노란 호박꽃은 깜빡거리며 별처럼 피었다. 뛰고 또 뛰었다. 반딧불이의 비행은 생각보다 빨라서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다. 살금살금 우당탕, 한바탕 난리굿을 쳐야만 겨우 한두 마리 손에 움켜잡았다.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철퍼덕 길가에 주저앉으면 환하게 불을 밝힌 꽃등 하나가 손에 들려있었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겨우 진정시키며 발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던 소년은 한껏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서 꽃등을 머리 위로 높이 추켜올렸다. 드디어 내가 이만큼이나 반딧불이를 잡았다고 세상에 공표라도 하듯 가슴을 내밀었다. 꽃등을 쥔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연기도 없고 타닥거리는 소리도 없었지만, 소년의 눈에는 불꽃 일렁이는 횃불 같았다. 연신 허공을 휘젓고 밤길을 내달렸던 시간이 머리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정말 예쁘죠. 방금 잡아온 반딧불이예요"

숨을 헐떡이면서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손에 쥐고 있는 호박꽃을 내밀어 보였다. 밭이며 길가에 반딧불이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며 반딧불이를 쫓아다닌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옥수수수염에 앉아있던 녀석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가며 잡았고, 머리 위로 날아가던 녀석은 개구리가 뛰어오르듯 냅다 하늘을 향해 발돋움을 해서 잡았다고 했다. 담장 너머 어둠 속에선 풀벌레가 자지러지게 울고, 평상에 걸터앉은 소년은 그에 질세라 쉬지도 않고 재잘거렸다. 연신 이야기를 쏟아낼 때에도 그의 손에 들려있던 꽃등은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반짝였다. 별이 반짝이던 여름밤이다. 소년의 가슴에서 반딧불이가 떼 지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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