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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wpw Aug 25. 2020

택배 노동자에 '쉼'을 허하라

빠른 배송 이면에 있는 과로사의 위험

[본 글은 경향신문, 지금 여기 코너에 기고한 글의 원본입니다. 해당 기고문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3026924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자 언택트 산업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IT, 이커머스, 게임업계 등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산업들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을 고객으로 맞이했다. 사람들은 ‘뉴 노멀’이라는 표현을 하며 언택트 시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언택트 시대에 불편함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IT산업의 공이 크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생필품을 사고 배달을 시키는 과정을 문제없이 빠르게 처리하는 기술력의 힘은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진짜 주인공이 있다면 그것은 택배서비스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택배서비스는 기본이 익일배송이다. 택배비는 2천원에서 3천원 전후에 저렴하게 형성되어 있다. 아주 작은 물건부터 가전제품이나 생수병까지 문 앞에 가져다주는 택배 덕택에 집 밖에 나서지 않아도 필요한 모든 것들을 편리하게 구할 수 있다. 이러한 싸고 좋은 서비스의 이면에는 택배기사들의 고통이 스며들어 있다.


상반기 택배회사들은 언택트 시대로 인한 물량폭증에 의해 큰 이익을 보았다. CJ를 비롯한 대형 운송사들은 영업이익만 20%이상 증가했다. 이 말은 그만큼 택배기사들이 많은 숫자의 택배를 소화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평균적인 배송량이 30%이상 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택배가 하루이틀 내에 잘 도착했다는 것은 일하는 시간을 늘렸거나 더 힘들게 일했어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택배기사들은 배송 건당 약 7~8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2020년 상반기에 CJ대한통운 기준 택배기사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약 400건 이상을 배송한다고 한다. 배송을 위해 분류해서 차에 실는 ‘까대기’ 노동까지 포함하면 이들의 하루 노동시간은 거의 14시간에 육박하기도 한다. 오전 6시에 나와서 오후 7시, 8시까지 일하는 살인적인 노동환경을 감당하는 셈이다.


이러한 탓에 상반기에만 과로로 사망했다고 추정되는 택배기사만 셋이다. 가혹한 노동환경탓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병원에도 갈 시간이 없어서 죽었다는 기사를 보면 마음이 참담하다. 택배기사는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해 휴가도, 야근수당도 없다. 주 40시간, 최대 52시간의 노동과도 무관하다. 설령 어디가 아파서 쉬게 되면 대체배송을 위해 배송수수료의 약 1.5배가 넘는 1200~1300원의 건당 배상금액을 지불해야한다. 이쯤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골병이 들지 않고는 배길수가 없어보인다.


이런 끔찍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택배기사들은 끊임없이 국회와 본사에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배송 수수료의 인상이 아니라 노동자로 인정받아 적절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수수료도 나오지 않는 까대기 노동,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현실, 물량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받는 대리점에서의 압박과 눈총등은 이들을 인간다운 삶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배달의 활성화로 인해 배달기사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이들도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지만 적어도 택배업계만큼 높은 수수료와 부당한 무료노동을 요구당하진 않는다. 게다가 배달료는 대부분 택배요금보다 비싸다. 노동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에 택배요금은 20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들에게 지불하는 노동의 가치가 과연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온 언택트 시대는 앞으로도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인다. 가을에는 명절까지 있다보니 택배기사들은 벌써부터 쏟아질 물량에 불안함을 비추고 있다. 많은 물량을 소화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버는 구조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숨을 잃어가며 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주에 100시간이 넘는 일을 하고 휴가도 하루 없는 이들이 월 400, 500만원을 버는 것은 돈을 잘 버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는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을 통해 택배기사들의 삶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야당의 반대와 산업계의 이해관계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싸고 좋은 택배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고객 입장에서, 나는 택배기사들이 더 안전하고 사람다운 환경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조금 더 높은 요금을 지불하고, 하루 이틀 더 늦게 물건을 받게 되더라도 내가 이용하는 서비스가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을 겪고 싶지는 않다. 이 시대의 진짜 주인공들은 그들의 노동에 충분한 존중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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