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지 Jun 10. 2019

#005


 혼자 재즈바에 갔던 날이 떠오릅니다.      


 태국에서 지내던 때의 일인데요. 그 무렵 저는 숙소에서 맞은편 침대를 쓰던 사람과 죽이 잘 맞아서 매일 탱고 리듬에 몸을 싣는 기분으로 뜨거운 도시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아침이면 같은 빵집에 가서 직원과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늘 먹던 걸로!’를 외쳤고요, 요금이 반절인 에어컨 없는 버스를 타고(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손이 벌겋게 데워졌습니다) 도시의 온갖 전시관이며 미술관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느 날은 복권을 사기도 했고요, 메뉴판도 없는 작은 가게에 들어가 어눌하게 주문을 하고 처음 보는 음식을 받기도 했어요. 공원을 산책하다 사람들과 춤을 추기도 하고요, 강 건너에는 자주 가는 사원도 있었습니다. 밤에는 자주 재즈바나 블루스 바에 갔어요. 요일별로 라인업을 줄줄 꿰고 있었죠. 땀으로 번들번들한 얼굴도, 벗겨지는 피부도 날아오를 것 같은 마음에 흠집 하나 못 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후루룩 지나갔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떠나야 하는 날이 온 거죠. 좋은 마음으로 보내줘야 하는데 저는 미련이 많아서요, 한사코 마다하는 걸 배웅하고 돌아왔는데 엄청나게 허전하더라고요. 맞은편 침대는 곧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습니다만, 그게 같을 수가 있나요. 눈을 뜨면 네가 있던 날들이 끝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죠. 며칠을 방황하다가 ‘그래, 네 몫까지 즐겁게 지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함께 가던 블루스 바에 갔습니다. 평소엔 맥주나 마셨는데요, 그날은      


 마셔본 적도 없는 블러디 메리를 시켰어요. 뭐, 그런 기분이었던 겁니다.     


 맵고 짜고 쓴 칵테일이 혀에 닿자 심경이 복잡해졌습니다. 아, 그런 기분이었던 겁니다.          



작가의 이전글 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