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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Jun 14. 2019

정원

#007



어제는 친구와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공원 입구가 깊숙이 있어서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들어갔어요. 오랜만에 노을을 보고 싶었는데 늑장 부리며 언덕을 오르는 사이에 해가 다 졌어요. 그래도 초여름의 초록과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는 아쉬운 대로 납작한 바위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구름 뒤로 사라지는 해의 뒤꽁무니를 지켜봤어요. 어스름 해가 넘은 후에는 공원 안의 작은 정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입구에서 친구가 허리를 굽히더니 노랗고 포실포실한 작은 꽃봉오리 하나를 건넸습니다. 캐모마일이라고 했어요. 코앞에 가져가니 정말로 향긋한 캐모마일 향이 났습니다. 한참 손끝에 들고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건 조금 신기한 화단이었어요. 보통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이 종류별로 심겨있었거든요. 토끼풀도 크게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익숙한 얼굴을 보며 처음 듣는 이름을 읊조렸어요. 다음 화단에서는 쇠채아재비를 불려다 실패했는데, 그걸 본 친구가 민들레를 하나 꺾어다 주었습니다.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홀씨를 날렸습니다. 내년 봄에도 그 정원에는 민들레가 많이 필 겁니다. 홀씨가 싹을 틔울 내년 봄을 생각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집니다. 정원에서 나와 숲길을 걷다가는 뽕나무를 발견했어요. 까만 오디가 주렁주렁 열렸더라고요. 우린 또 발을 멈추고 나무 아래를 빙빙 돌며 말랑말랑 잘 익은 오디를 땄어요. 커다란 나무 아래를 한 바퀴 돌고 났을 땐 손에 온통 까만 오디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주 까맣고 달큰했어요.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접시꽃 향기를 맡고 헤어졌습니다. 집에 오는 길은 온갖 향기로 가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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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난 친구 이름이 정원이에요. 외국에서 만나 '가든'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보통 가든이라고 부릅니다. 가든과 정원을 걷다, 같은 소리를 했더니 웃더라고요. 근사한 하루였습니다. 어쨌든, 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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