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어떤 순간은 너무도 완벽해서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해 기다려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합니다.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거센 바람을 마주했을 때, 나는 이곳에 오르기 위해 살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인도에서 『데미안』을 읽었을 때는 나는 이 책을 지금 읽기 위해 여태 미뤄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요. 흘러가는 길 위에서 만나고 스쳤던 많은 사람 또한 그런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내게 꼭 필요할 때 바람처럼 나타나선 필요한 것보다 더 큰마음을 주고 사라졌어요. 꼭 누군가 준비해 놓은 것만 같은 우연하고도 아름다운 만남을 여럿 겪으며 이 기묘하고 근사한 우연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흔히 쓰이는 수동적인 의미의 운명은 아니고요,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우연이 겹쳐 만든 경이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죠. 아름다움은 적합성입니다. 그리고 그걸 만드는 건 타이밍, 누가 뭐래도 타이밍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