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창작자의 저작권이 지키는 것
"시 하나 써줘."
ChatGPT에게 던진 짧은 요청에, 몇 초 만에 운율도 맞춘 작품이 화면에 나타났다. 놀랍도록 자연스럽고,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했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키보드를 두드려 쓰는 이 글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AI가 글을 쓰는 시대다. 소설도, 시도, 심지어 학술논문까지 인공지능이 써낸다. 속도는 인간을 압도하고, 완성도도 상당하다. 이런 시대에 인간 창작자의 저작권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저 키보드를 두드리는 타자일 뿐이다. 하지만 AI와 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걸 안다. AI는 데이터를 조합하지만, 나는 새벽 3시의 그리움을 안다.
어젯밤, 잠 못 이루며 써낸 글 한 편이 있다. 깊은 밤 고민에 잠겨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 순간, 내 안에서 문장들이 흘러나왔다. AI도 비슷한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글 뒤에 있는 맥락은 결코 따라 할 수 없다. 밤잠을 설치게 만든 걱정, 문득 떠오른 어린 시절 기억, 키보드를 두드리며 조금씩 정리되어 가는 마음의 실타래들.
AI는 글을 쓸 수 있지만, 글쓰기를 경험할 수는 없다.
얼마 전, 내가 쓴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이라는 문장을 ChatGPT에게 입력해 봤다. 비슷한 문장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어떤 것도 내가 그 문장을 쓸 때의 맥락은 담지 못했다. 깊은 밤 절망 속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 그 순간의 떨림을 AI는 알지 못한다.
창작은 단순히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창작자가 겪는 모든 순간들, 고민하고 망설이고 다시 써내는 그 여정 자체가 창작이다. 새벽에 문득 떠오른 문장을 메모장에 적어두고, 며칠 뒤 그 문장을 다시 보며 미소 짓는 순간. 독자의 댓글 하나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
얼마 전 한 독자가 내 글 구절을 아름다운 캘리그래피로 만들어 사진을 보내주셨다.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이라는 문장이 붓글씨로 다시 태어나 부채 위에 피어 있었다.
부채를 든 손이 작게 떨렸다. 모니터 속 활자에 불과했던 내 문장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온기를 가진 실물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저작권은 창작물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의 씨앗이 되게 하는 것임을. 내 글에서 영감을 받아 또 다른 창작물이 탄생하는 순간, 저작권은 창작의 생태계를 이어가는 다리가 되고 있었다.
법적으로도 명확하다. AI가 생성한 콘텐츠 자체는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창의적으로 개입하여 수정하고 편집한다면, 그것은 편집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인간 창작자의 저작권이 갖는 고유한 영역이 있다.
저작권이 본질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텍스트 자체가 아니다. 그 글 안에 담긴 창작자의 경험과 감정,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는 마음'을 보호하는 것이다.
AI 시대일수록 인간 창작자의 저작권은 더욱 소중해진다. 기계가 만든 완벽한 텍스트와 인간이 마음을 담아 쓴 불완전한 글 사이의 경계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다.
요즘 AI 글쓰기 도구들을 보면 놀랍다. 때로는 내가 쓴 글보다 더 매끄럽고 논리적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더욱 확신하게 된다.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유는 완벽한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새벽 3시에 문득 떠오른 그리움, 비 내리는 날의 쓸쓸함,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느끼는 감동. 이런 것들을 글로 옮겨 담는 순간, 그 글에는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생명'이 깃든다.
저작권은 바로 그 생명을 보호한다. 기계가 만든 완성도 높은 텍스트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살아있는 마음이 만든 창작물임을 증명하고 지켜주는 것이다.
AI 시대는 인간 창작자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시대다. 저작권은 그 경계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라, 새로운 창작 생태계를 이어가는 다리가 되고 있다.
나는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린다. AI보다 느리고, 때로는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을 담아 쓴다. 그 마음이 담긴 글에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저작권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인공지능이 글을 쓰는 시대에, 인간이 글을 쓰는 이유는 더욱 명확해진다.
기계는 완벽한 정보를 전달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마음을 전한다. 저작권은 그 마음을 지키는 약속이자, 창작의 미래를 여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