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IT혁신도, 경영혁신도, 새로운 모델도, 결국 ‘현실’에서 나온다. 현실 사회, 오프라인 사회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면, 그리고 인간 사회, 즉 인간과 인류, 사회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확장될 수 없다.
페이스북을 만든 것은 20세 어린 소년이지만, 그것을 전세계로 확장시키는 것은 거대 금융 자본과 실리콘밸리의 시스템이 다 해낸 것이다. 우리나라는 싸이월드가 있었지만 세계로 뻗어나가는 법, 즉 유통하는 법을 알지 못했고, 나가서 처절하게 실패했다. 세계 흐름, 맥락,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세계에서 성공할 수 없다.
대우 김우중 회장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선진국 또는 거대 다국적 기업보다도 훨씬 더 높고 깊은 수준의 ‘신흥국 시장에 대한 이해와 통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선진국이 쉽게 들어가려 하지 않고, 위기를 감수하려 하지 않는 것을 김 회장은 정면돌파하여 자신의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 좋은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
한국의 성공 요인, 유일한 미래의 길은 ‘인류 사회’, 즉 Global, World에 있다. 우리나라는 그 어떤 나라보다 해외 경험 청년 및 젊은이들이 많이 있고, 그 어떤 민족보다 역동적이다. 세계를 누비며 인류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역사적 동기가 있고, 또 오랜 역사의 ‘정’ 문화와 이웃사랑 문화는 현대적 환경에 의해 다소 퇴색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강력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SBS 세상의 이런 일이>의 한 출연자의 딱한 사연을 보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5만명 후원 총 10억의 금액이 모였다는 것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현상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결국 세계로 나가 세계’애(愛)’를 펼쳐야 하는 나라다. 홍익이념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민족의 정체성은 그것이 어떤 종교적 정체성을 띠는가를 떠나,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인류애적 비전을 담고 있다. 이미 수천년의 우리 대한민국 DNA는 세상, 세계를 향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어려움은 ‘우리 무대가 사라진 것’에서 기인한다. 우리 무대는 세계여야 하는데, 국제 정세, 국내 상황 등이 갈수록 위축되어 한국인들의 활동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한때 인구 대비 최고 유학생 비율을 나타냈던 한국 젊은이들은,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해 리턴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한류 문화 콘텐츠가 세계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지만, 과연 이것이 진정한 한류이며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문화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지울 수 없다. 오래 전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일본, 미국 등의 문화적 파장이 그다지 오랜 시간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 자국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류에 대한 국수주의적 시각도 한류에 대한 객관적 평가의 기회를 앗아간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해외 진출’, '세계가 우리 무대’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해법은 다양한 방식으로 갈린다. 제조업 중심의 국가정책의 회귀를 통해 일자리 창출을 해야 한다는 입장, 또는 서비스 산업의 고도화를 통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 창업 활성화를 통해 산업 전반의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는 입장 등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한국이 갖고 있는 산업구조가 그 어떤 나라보다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제조업만 하더라도 이미 4차 혁명에 정착한 독일, 일본 등에 열세를 보이고 있고, 서비스산업은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서비스 산업은 국내용일 수밖에 없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IT를 포함한 첨단산업은 거대 투자자본과 시스템, 우수 인재의 역사를 가진 미국 실리콘밸리 하나를 당해내기도 벅차다. 그 어떤 분야에서도 뚜렷한 두각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다. 밑에서는 중국, 인도네시아가 치고 올라오고 있고, 위에서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이 누르는 샌드위치 현상에 놓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온갖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100%의 기회로 만들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한 기업인의 주장처럼, 오히려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전 세계가 나눠 갖고 있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 대한 경험과 실력은 종합적 사회구조 개편을 이뤄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세계 여러 후진국들이 글로벌 자본 및 기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의존 구조를 낮춰줄 수 있는 힘이 있다.
또한 적당한 경제발전 수준을 가진 한국이 후진국과 선진국을 이어줄 수 있는 중간고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꼭 경제, 경영학점 관점의 수익적 측면이 아니라 하더라도, 당장 에이즈 질병 치료에 관한 선진국들의 노력 사례들에 그 답이 숨어있다. 선진국은 후진국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알 가능성이 낮다. 오랜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해 온 선진국의 사회 환경이 후진국 환경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차단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글로벌 자선 단체들이 해외를 향하고 있지만, 이들이 후진국에 해 줄 수 있는 것은 응급처방 수준에 급급한 해결책이 다수다. 물 공급이 부족하면 물을 제공하고, 약이 없으면 약을 제공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65년 전 한국 전쟁을 거쳐 한반도 전체가 폐허가 된 경험이 있다. 지금의 웬만한 아프리카 국가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세계 13위 수준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즉 그 누구보다 후진국의 상황에 대해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한국은 잠자는 용이지, 과거의 찬란한 아시아 4마리의 용이 아니다. 한국은 단 한번도 깨어난 적이 없다. 이제 깨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깨어야 한다. 시야와 마음을 세계로 열어야 한다. 그것이 단순 나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생존전략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진정 해야 할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경쟁, 전쟁, 논쟁이 아니다. 진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면 우리는 경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일을 할 뿐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을 찾는 것이다. 중국, 일본과 비교해 동아시아 정치경제학적 열세를 논할 필요도 없고, 미국, 독일 등과 비교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산업의 첨단화를 외칠 필요도 없다. 지금은 경쟁하지 않는 우리의 길이 있음을 깨달아야 할 때다. 반드시 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거울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자꾸 우리보다 잘난 존재들을 따라가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비교, 분석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목적은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할 일을 이루는 것이며, 비교분석은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방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목적은 ‘세계에 나가 우리의 일’을 하는 것이며, 그것은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세계 미래 사회 건설을 위해 우리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는 일이다. ‘인류가 진정 필요로 하는 일’을 했을 때, 돈, 명예, 국가 이미지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먹고 살고자 하면 겨우 입에 풀칠만 할 것이며, 진정 우리의 일을 하고자 하면 진정 잘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