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8월 24일

by 천우주

꿈자리가 영 좋지 않아 설잠을 깼다.

자기 전 약하게 틀어 놓았던 에어컨 때문인지 코도 막히고 머리도 지끈거렸다.

바깥은 어느새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보니 제법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에어컨은 껐지만 두통이 영 가실 기미를 안 보인다.

귀뚜라미들은 이런 나의 작은 고통 따위는 모르는지 즐겁게 울어대고 있다.


'업보'란 말이 있다.

자신이 한 일들과 그에 따른 결과를 뜻하는 말이다.

행동이 결과를 낳고 결과는 다시 다른 행동의 원인이 되어 순환하며 습관을 낳기도 한다.

반복되어 쌓인 습관은 거의 일정한 패턴의 결과를 가져온다.

이 패턴이 어떤 다른 결과와 만나게 되면, 이른바 때가 맞아떨어지게 될 때 그 결과의 파장은 더욱 커지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과 얽혀있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지인, 서로 아는 사람, 나만 아는 사람, 나를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나아가 근처의 나무, 풀, 달, 해, 구름, 귀뚜라미 까지도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나와 얽혀있다.

이것들은 때론 크게 때론 미미하게 나와 연관되고 사라진다.


내가 자다 깨서 두통에 불쾌해하는 것도 나의 업보이고 뒤숭숭한 꿈을 꾼 것도 나의 업보이다.

나는 며칠간 체력적으로 평소보다 무리를 했고 거의 2주간 제대로 잠을 자지 않았으며 더위가 한창일 때 그 속에서 땀도 뻘뻘 흘렸었다.

어쩌면 감기 바이러스를 가진 누군가와 접촉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애써 외면해오던 일이 요즘 들어 불쑥불쑥 떠오르기도 했다.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진 모르지만, 내가 두통에 코막힘에 설잠을 깬 건 그럴만하니 그런 것이다.


여름이 서서히 지나고 있다.

하늘의 색깔이 조금 달라지고 구름의 움직임도 또 조금 달라졌다.

며칠 전 산책길에 보았던 구름은 마치 그림 같았다.

구름의 언저리는 마치 붓이 이제 막 훑고 지나간 듯 자국이 선명했고 색깔은 경이로웠다.

아무렇게나 흩어지고 흘러가는 구름이 그렇게나 아름다워도 될 일인가?

그 이유를 잠깐 생각해보니 자연스러움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자연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필시 그 자연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여름도 자연스레 물러나고 있다.

여름의 업보는 가을을 불러오고 다시 내년을 기약하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이번 여름 어떤 업을 쌓았을까?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내 습관과 의지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저마다 조금씩 쌓은 것 같다.

어떤 것이든 뭐 어떠랴.

내가 쌓은 것들이니 결국은 내가 돌려받아야지.


차작 차작 내리는 빗소리가 두통을 조금은 누그러트린다.

이제 다시 자야겠다.

여기서 더 깨어있다간 지각과 피곤이라는 업보를 아침에 받을거니깐.

(이미 피곤의 업보는 예약 상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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