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브런치북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를 쓴 최양현입니다.우선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를 읽고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신 소중한 독자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독자분들의 격려와 지지가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브런치북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현재 동명의 공연으로 기획되어 제작 중에 있습니다. 한창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으며, 7월 14일,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첫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공연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의 포스터
육필원고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왕 공연 소식을 전하는 김에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고 공연까지 나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합니다. 브런치북 1화에도 상세하게 설명을 했지만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저의 외할아버지가 직접 쓰신 회고 형식의 육필원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1923년에 태어나 태평양전쟁 당시 스무살의 나이로 일본군 소속 포로감시원이 되어 전쟁에 참전하셨습니다. 포로감시원은 말 그대로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업무를 맡은 군무원입니다. 1941년 말, 일본군이 미국 진주만을 폭격한 이후 동남아시아를 파죽지세로 점령하면서 미군, 영국군, 호주군, 네덜란드 군 등 연합군 포로들이 다수 발생했습니다. 덩달아 이들을 관리, 감시할 인력인 포로감시원 수요가 급증했고 1942년 일본군은 조선의 청년들을 대거 뽑아 동남아시아로 보냈습니다. 20대의 푸르디푸른 청춘들 중에 저의 외할아버지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한 후 외할아버지는 포로감시원에서 전범용의자 신세로 전락했고 수용소에 구금되어 전범재판을 위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후 고향을 떠난 지 무려 5년이 지난 1947년이 되어서야 갓 해방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귀국 후에는 틈틈이 당시의 상황을 원고지에 기록하셨습니다. 글은 외국을 처음 여행하는 젊은이의 설렘 같은 느낌으로 출발합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에 도착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됩니다. 글의 내용은 참혹하고 추악한 전쟁현장에 대한 목격담과 수용소에 구금된 후 죽음에 대한 공포, 포로들을 적절하게 대우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로 메워집니다.
외할아버지가 포로감시원 시절을 기록한 육필원고
외할아버지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남긴 여러 유품 중에서 이 원고가 제 품으로 왔습니다. 제가 국문과를 다녔기 때문에 외손주 놈을 통해서 이 글이 언젠가 세상에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10년이 지난 2012년 무렵에나 이 글을 비로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일독을 할 땐, 흘려쓴 필기에 일본어, 한자, 말레이어 등이 뒤섞여 독해 자체도 힘들었습니다. 배경지식도 일천해 정확한 내용 파악조차 어려웠습니다. 그 후 내용을 제대로 이해보겠다고 마음먹고 관련 논문들도 들추어보고 일본어도 직접 배웠습니다. 구글링을 하거나 국가기록원을 드나들며 다양한 자료들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건너가 조선인 포로감시원문제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인 우츠미 아이코 교수님을 직접 찾아 뵙고 내용을 여쭈어보기도 했습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 전범 문제 전문가인 우츠미 아이코 교수님과 도쿄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된 버전
그렇게 또 1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긴 시간들이 축적되자 비로소 저는 포로감시원이란 직업과 당시의 세계정세에 대한 윤곽을 파악했습니다. 덩덜아 외할아버지 원고의 내용도 온전히 이해했습니다. 그 후 저는 일단 브런치북 계정에 이 글을 천천히 올려보기로 했습니다. 글이 올라가자마자 반응을 보인 이들은 저의 가족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의 아들인 외삼촌을 비롯한 혈육분들이 글을 좋아해주고 반가워했습니다. 제 글을 매개로 오랜만에 가족들이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외손자인 저는 뿌듯함을 느겼습니다. 몇 달 후 브런치와 밀리의 서재가 공동으로 주최한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공모전을 발견하고 이 글을 응모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글을 보고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이 글이 덜컥 공모에 선정이 되면서 밀리의 서재를 통해 <조선인 포로감시원>이라는 제목의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전자책에서 종이책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로
책을 읽어본 주변 분들이 감사하게도 격려를 해주셨고 그 중 몇 분은 종이책으로도 출간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조언을 받은 후 저는 몇 군데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예전에 즐겨보았던 KBS역사스페셜을 책으로 출판한 효형출판에서 고맙게도 출간기회를 주었습니다. 2022년 봄, 드디어 종이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로 바뀌었고 내용들이 새로이 보강되었습니다. 책은 KBS, 동아일보, 한겨례신문 등 다양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기사화가 되었습니다. 출간 당시의 저는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하거나 북토크를 하는 등 책 홍보를 위해 분주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책은 잠시나마 역사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책나눔위원회 추천도서와 세종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독자분의 반응은 가족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당사자를 미화하지 않고 그의 처지와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평가였습니다. 책을 집필하면서 지금의 시각에서 보기에 불편한 부분들도 가감없이 담고자 했습니다. 역사는 모든 것들이 서로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상태로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은 것이 아닐까요? 역사를 이분법으로 명확하게 분류해서 판단해버리는 순간 되려 당시를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단순히 외할아버지를 대변하는 시선이 아닌 외할아버지가 쓴 글을 솔직하게 보여드린 것이 오히려 더 좋은 평가를 받은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이책으로 출간된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라이브필름 퍼포먼스 공연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외할아버지의 육필원고는 책 출간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올해 극단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에서 공연으로 기획을 한 것입니다. 이태린 연출가가 이끄는 이 극단은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로 대학로 공연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창작집단입니다. 공연은 단순히 연극 형식이 아닌 연극과 영화가 융합된 <라이브필름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형식의 작품으로 제작됩니다. 공연은 독창적인 형식을 인정받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과 기술융합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경사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최영우 역은 올해 연극분야 국내 최고 권위의 상인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김세환 배우가 맡아 열연할 예정입니다. 배우의 갸름한 얼굴선이 꼭 제 외할아버지를 닮은 듯해 외모가 아주 맘에 듭니다. 공연은 스무살 청년 최영우가 인도네시아에 도착해 포로감시원으로 근무하는 상황과 종전 후 전범용의자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군, 연합군, 포로감시원의 역학관계, 당시 전범재판의 과정 등과 역사의 난폭한 파고 속에 휩쓸려 들어간 한 최영우라는 청년의 모습이 공연 속에서 자세하게 묘사될 예정입니다.
주인공 최영우 역을 맡은 김세환 배우
이 땅의 모든 1923년생 최영우 들에게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1923년생은 조국이 세계 속에서 이렇게나 우뚝솟아 발전한 것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세대입니다. 이들이 눈을 감은 후 현재의 한국은 G8에 합류하는 것이 거론될 만큼 부강하고 큰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조국에서 살던 젊은이들은 오늘날의 젊은이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이들은 빛이 보이지 않는 깊은 터널과도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에서 태어나 설움 많은 2등 시민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해방 후에는 6.25 전쟁을 겪으면서 또다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폐허가 되어버린 조국에서 가족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셨던 분들이 바로 1920~30년대 생입니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에 나오는 한 청년의 안타까운 인생사는 단지 저의 외할아버지의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부모님, 조부모님 모두가 겪었던 공통의 시간일 것입니다.
공연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고단한 삶을 산 이 땅의 모든 최영우 님을 위로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연은 7월 14~16일 단 3일간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