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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Apr 18. 2019

주마간산 평화누리 ①

3길-전류리 포구에서 애기봉 아래까지 내가 본 것

<평화누리길>이라고 있다. 제주 올레 이후에 전국적으로 만들어진 트레킹 코스의 하나다. 경기도 김포 대명항 1길부터 시작해서 경기도 연천 12길로 끝난다. 길이므로 당연히 연결되어 있다. 며칠에 걸쳐 종주한 이들의 이야기도 많더라. 그렇게 일일이 밟고 지나지 못했다. 순서도 지맘대로다. 해서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많겠으나, 주마간산으로나마 그럭저럭 본 것도 없지 않다.   

   

전류리부터, ‘한강철책길’을 걷다.  

“전류리 포구는 한강하구에 위치한 포구로 김포에서부터 북방어로 한계선까지의 구간에서 고기잡이가 가능한 김포 한강의 최북단 어장이다. 서해에서 자라다가 한강 하구와 임진강으로 올라오는 황복이 잡힌다. 북한 개풍군과 마주 보고 있는 군사지역이다.”

평화누리 1길이 시작되는 경기도 김포 전류리 포구 안내판을 한 번 읽어보고, 길을 따라간다. 철책이 오른쪽으로 있다. 강 너머 파주 쪽에는 이처럼 철책을 따라 걸을 수 없다. 하지만 자동차로 자유로를 타고 달릴 수 있다. 자유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이쪽 김포 쪽을 바라보곤 했는데, 지금은 반대 길을 간다. 이 길은 기본적으로 도보, 트레킹용이다. 하지만 걷는 길이라고 더 잘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이중으로 된 철책이 시야를 많이 가리기 때문에. 이 철책을 걷어내기만 하면 건너편 파주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울 터.     


이것은 새가 아녀, 그냥 짐승 - 철새를 보다.

한 4km 정도, 특별한 풍경은 없다. 나쁘지 않지만, 덥거나 추운날 걷는다면 약간의 군인정신이 필요할 수 있겠다. 끝까지 가면 후평리인데 조류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앞으로 펼쳐진 논이 시원하다. 겨울철, 때가 잘 맞으면 이곳에서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다. 기러기떼나 희귀한 재두루미 같은 새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조류 보호 차원에서 논에서 먹이를 주고 새들을 불러들인다. 캐나다기러기처럼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철새(미조, 사실 길을 잃고 발견된 새다)도 볼 수 있기도 해, 전문가들도 종종 찾는 곳이란다. 새를 관찰하는 일은 나름 재미있다. 하지만 흥미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관찰하기에는 여러 의미의 여유가 필요하다.

전망대 앞에 수 백 마리 새가 없다면 왼쪽 아래로 눈길을 돌리자. 큰 새장이 보인다. 한국조류보호협회 김포시지회가 관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다치거나 불편한 새들을 치료하고, 먹이고 보호해서 방사하는 등의 일을 한다. 독수리, 참수리, 흰꼬리수리 같은 맹금류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참수리처럼 크고 멋진 새를 보면 ‘이것은 새가 아니라 그냥 짐승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냥 사람이 아니다. 새를 많이 사랑하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연등을 밝혀라 초파일이 다가온다.

옆으로 빠진 김에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평화누리길에서는 좀 벗어났지만, 작은 저수지가 있다. 한강으로 접어들기 전에 막아놓은 수문 때문에 저수지처럼 고인 물길이다. 내륙 안쪽의 실핏줄처럼 가는 물길이 모여모여 이곳으로 접어든 것이겠지. 이 물길을 막았다, 내보냈다 하는 수문과 갇힌 물의 반사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이곳에서도 다양한 새를 볼 수 있다. 새들은 ‘혼인색’으로 더욱 뚜렷하다. 흔한 흰뺨검둥오리마저도 더 깔끔하다. 논병아리는 대가리 부분이 붉은빛을 뗘 겨울에 알았던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쇠오리도 보이고, 물까치가 떼로 저수지 위를 나른다.  

다시 평화누리길을 따라간다. 계속 10km 정도 가면 1코스가 끝나는 애기봉이다. 좀 전의 철책 길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의 길이 이어진다. 얼마쯤 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절이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석탑. 길을 따라 알록달록한 연등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부처님오신날이 머지않았다. 주로 고인을 모시는 그런 곳으로 특화(?)된 절인 듯한데, 밤에는 이 연등을 따라 혼령들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트레킹 하기에 좋은 길이다. 주위의 집들이 멋지다.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포 산다’며 자랑하는 연예인을 보았는데, 아마 이런 곳에 사는 사람 아닐까. ‘마근포로’를 지나 ‘4H’ 로고를 봤다. 명석한 머리(Head, 智育), 충성스러운 마음(Heart, 德育), 부지런한 손(Hands, 勞育) 및 건강한 몸(Health, 體育)을 의미한다는 그 4H. 새마을운동과 함께 어릴 적 교과서와 시험문제에도 나왔던 듯한데, 이 4H 단체가 아직 엄연히 존재한 사실을 인터넷으로 확인했다.

 

향나무를 심은 그 마음 - 가금로, 박신의 향나무

전류리 포구 출발점에서부터 15.6km인 이곳 ‘가금로’에는 볼만한 것이 있다. 650년을 산 향나무다. 조선 초기 영의정이었던 박신이 심었다고 한다. 이 아래서 공부하면 심성이 약하거나 어질지 못해도 공부에 정진할 수 있고, 행동이 불미한 이도 배움에 정진할 수 있다고, 안내판은 소개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향나무를 심은 박신의 묘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다. 슬픈 것은 그의 묘가 그 옆에 있는 어떤 문중의 사당(?)과 비교해 너무 초라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건국과 함께 원종공신이 되었다. 세종 때 통진에 13년이나 유배되었다. 유배지 통진과 강화 사이를 왕래하는 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성동나루를 만들었다고 한다.

박신은 자신이 심고 가꾼 이 향나무 아래서 책을 보고 상념에 잠기기도 했을 터다. 사람은 땅에 묻히고 초라한 묘지만 남았지만, 향나무는 거대한 고목이 되어 살아있다. 어쩌면 그 둘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같은 향나무라도 회오리를 돌며 하늘을 찌르는 인천식물원 연필향나무와 아주 달라 보인다. 왜 하필 향나무였을까. 느티나무도 있고, 팽나무도 있었을 텐데. 틀림없이 그의 특별한 취향과 뜻이 있었을 것이라는 어떤 근거 없는 사실을 믿고 싶다. 큰 향나무 아래는 10여 가지가 넘는 봄풀들이 자라고 있다. 수 백 년 세월을 살아온 그 아래 매년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봄풀의 생명이란 어떤 의미일까. 향나무 밑동에 깃들어 꽃 피운 제비꽃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애기’와 평양감사 그리고 박정희 - 애기봉 이야기

길은 곧 애기봉 입구에 접어든다. 이제까지 온 가금리에서 조강리로 넘어가는 경계이기도 하다. 그전에 잠깐 보이는 느티나무 두 그루도 예사롭지 않다. 450년을 살았으니. 느티나무를 지나가다 보니 이정표는 애기봉을 가리킨다. 애기봉을 오르는 산길이 시작된다. 봉우리 위쪽에는 해병대 위병이 있다. 이곳 전체가 사실은 군사지역이다. 꼭대기에서 보면 북한 송악산이 보이고, 꼭대기에 불을 밝히면 평양에서도 이곳이 보였단다. 적당히 올라가 보니 산 중턱 같은데도, 넓은 터가 나타나 시원하다. 벤치도 있다. 이제까지 이 글을 읽으며 이곳 산 중턱까지 올라오셨다면, 마지막으로 아래와 같은 애기봉 이야기를 들려드림.

‘애기’는 기생이다. 작은 애기봉이란 뜻이 아니다. 애기는 평양감사와 깊은 관계다. 서로가 몸과 마음을 다 허락한. 1636년 병자호란으로 평양감사는 애기와 함께 피난길에 오른다. 하지만 애기만 조강(한강이 임진강과 합쳐 김포 강화로 빠지는 부분을 조강이라 한 듯)을 건너고 평양감사는 청에 잡혔다. 애기는 그를 잊지 못하고 매일 이곳에 와서 기다렸다. 당신의 예상대로 결국 재회하지 못하고, 애기는 이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간절히 원하면 죽어서도 이루어지리라 하고, 사람은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이 ‘애기봉’이 된 것은 그보다 한참 후 일이다. 1966년 박정희는 이곳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 듣고 강을 두고 왕래할 수 없는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며, 이곳을 애기봉이라고 명명하고 그의 특기 중 하나인 붓글씨 휘호를 썻다고 한다. 원래 이곳은 군사적 요지로 그냥 하나의 고지 '154고지'였던 곳. 지금의 김포시는 이곳을 관광자원으로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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