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 Sep 28. 2023

44. 저소득층의 정의

09/28/2023

     저소득층 의료보험 혜택 대상자에 대한 재심사 결과가 우편으로 발송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변동은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이 생기긴 한다. 저소득층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면 오바마케어로 저렴한 보험에 가입해도 월 $500 정도의 지출은 감수해야 할 듯하고 거기에 더해 지금 받고 있는 공과금-저소득층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되면 전기요금, 가스요금, 인터넷요금에서 30% 정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할인 혜택도 중단될 테니 말이다.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은퇴 생활자가 된 건 코로나가 한참이던 2020년 하반기였다. 아직 퇴직연금(401K)이나 소셜 시큐리티 연금(한국의 국민연금 같은)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려면 멀었기 때문에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태였다. 퇴사 직후엔 미국의 실업급여에 대해 잘 몰라 신청하지 않고 있다가 3개월 정도 후에 지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신청해 받게 되었다. 코로나 특수(?)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과 금액이 늘어나 근 1년가량을 월$2,400 정도 받았다. 생각도 못한 소득이긴 했다.

은퇴 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의료보험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국민건강보험이 아닌 민간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행히 오바마 행정부 때 Covered California, 흔히 말하는 오바마 케어가 생겨 저소득층에게 비교적 저렴하게 의료보험 가입을 도와주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것일 뿐, 매달 의료보험으로 아이와 나 2인 가족의 의료보험료 $300은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그나마도 코로나 특수 혜택으로 할인받은 금액이었으니 아마 더 올라갈 수 있는 비용이다. 작년 말 의료보험 재가입 시기에 소득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주식배당 외에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소득이 없었고 주식거래를 활발하게 하던 상황도 아니라 소득이라고 할 것이 그다지 없었다. 주식에 수익이 나고 있는 상황이라도 수익실현을 하지 않으면 소득이 아닌 거고 거기에 더해 고정적으로 매달 들어오는 소득이 아니다 보니 저소득층으로 무료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저소득층이라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처음엔 마냥 좋진 않았던 거 같다. 자존심이 상했달까, 창피한 느낌이 들었달까,.. 그랬던 거 같다. 그리고 한 때 한국에서 논란이 되었던 학교 무료급식 문제가 떠올랐던 거 같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만 무료급식을 제공하게 될 경우 아이들이 느낄 감정적인 상처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마음인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저소득층에 대한 시선이란 게 내가 느끼는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후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을 찾아보면서 마음이 자연스레 정리되었다.


미국에서 저소득층에 제공하는 혜택들은 말 그대로 저소득층에게 제공된다. 매달 수입이 들어오는가가 중요할 뿐,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지, 주식투자나 예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고급승용차를 가지고 있는지 등은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소득이 없다면, 저소득층이 되는 거다.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혜택도 다양해서 무료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면 병원비뿐 아니라 투약이 필요한 경우 약국에서 구입하는 약도 무료다. 거기에 공과금 할인, 식료품 구입 비용도 추가로 신청해 받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주거비(렌트비) 지원도 신청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저소득층 아파트 입주를 신청하거나 시장가 대비 훨씬 저렴한 주택도 구입이 가능하다. 현재 내가 신청해 받고 있는 혜택은 의료보험과 공과금 할인 정도지만 다른 부분의 혜택도 신청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에 이주해 살면서 복지 혜택이 전혀 없다고, 이게 무슨 선진국이고 강대국이냐고 투덜거렸었다. 은퇴 후 내 생각엔 조금 변화가 생겼다. 복지선진국으로 언급되는 북유럽국가나 유럽의 일부 국가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소득이 없는, 저소득층 국민에 제공되는 혜택은 한국에 비하면 많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 많다기보다는 혜택을 받기 수월한 시스템이다. 심사의 기준이 까다롭지 않고 보다 넓게, 많은 사람이 쉽게 접근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물론 악용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복지 사각지대가 없도록 폭넓게 제공되는 듯하다. 자산 여부보다는 월소득 자체에 기준을 두는 것도 한국과 큰 차이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뉴스에서 여당 의원이 실업급여에 대해 시럽급여라 언급하며 심사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발언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한국 복지 정책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저소득층의 혜택을 받는다는 게 부끄러움으로 느껴졌던 것도 한국에서 자라며 경험했던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거다.


요즘 사회/문화 관련 팟 캐스트를 듣고 관련 책을 접하는 기회도 늘어가고 있다. 그만큼 예전엔 바쁘다는 이유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일들에도 여러 생각들이 자라나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직접 경험하는 일들까지 생기다 보니 사회문제란 게 결국은 개인에게 다가오는 문제구나 실감하는 요즘이다. 지갑은 가벼워 졌지만 생각의 무게는 늘어가는(좋은 쪽으로) 나를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43. 여전히 주식투자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